요즘 눈이 점점 침침해지고 시력도 떨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눈 앞이 흐릿하게 보일때면 눈이 계속 나빠져 책을 못 읽게 되면 어떡하지 싶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이 눈이 안 보이게 된다는 설정이 나오는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자들의 도시』를 읽다보면 그 두려움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소설은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던 남자가 갑자기 눈이 멀게 되면서 시작한다. 이 후 도시에 원인불명의 백색 실명이 전염병처럼 퍼지게 된다. 이 남자를 치료하던 안과의사도 눈이 멀게 되고, 의사의 아내는 남편 곁에 있기 위해 실명을 가장하고 함께 정신병동에 격리된다. 온 도시의 실명은 문명의 붕괴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야만적인 동물의 수준으로 떨어지고 아비규환의 세상이 도래한다. 인간의 야만적인 폭력성에 대한 고발이 중반부까지 진행이 되고, 이와 동시에 결말로 향해갈수록 인간에 대한 신뢰와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에 대한 연대의식이 드러난다.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눈이 먼다는 것은 인간다운 가치를 상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질서, 혼란, 도덕성의 추락 등을 의미하며 사람들은 인간으로서 지닌 모든 것들을 잃게 된다. 정신병동에 수용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은 끔찍하고 암울하다. 배설물은 복도와 병동안에 넘쳐나고, 식량다툼은 끊이지 않는다. 군인은 대열을 이탈한 무고한 사람들을 쏘아죽이고, 3병동을 장악한 깡패는 권총을 무기로 폭력과 강간을 행한다.
안과의사의 아내는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사람이다. 병동안에서 눈이 보인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도운다.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안과 의사의 아내’는 인간이 인간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어떤 면을 지녀야 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녀와 함께 탈출한 사람들은 서로 연대의식을 보인다. 함께 먹을 것을 나누고, 서로를 챙기고 돕는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이름이 없다. 첫 번째로 눈먼 남자, 안과 의사, 의사의 아내, 검은 안대를 한 노인 등으로 불리운다. 이들에게 이름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이름이 아니다. 오히려 목소리가 그 사람을 더 잘 드러낸다.
백색 실명 상태에 빠진 채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권력과 폭력에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는 개인들을 상징한다.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았던 의사의 아내는 눈이 보이기 시작하는 사람들을 지켜본다. 볼 수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의사의 아내와 함께 한 사람들은 서로 돕고 챙김으로서 생존을 이어나갔다. 세상은 오물과 쓰레기로 뒤덮여있지만 서로 의지하고 도우면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소설의 결말에서 안과의사의 아내와 함께 있던 사람들은 다시 눈이 보이게 된다. 소설의 초반에서 사람들이 갑자기 눈이 멀기 시작했듯이 결말에서도 어떠한 사전 징후없이 눈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눈을 보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눈 먼 상황을 잘 극복하고 서로 협력하여 도운 사람들만이 다시 눈을 뜨게 된 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의사의 아내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모든 것이 하얗게 보인다. 내 차례구나 라고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의사의 아내가 눈이 머는 것일까? 작가는 분명하게 이를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사람들이 하나 둘 눈 뜨기 시작지만 세상은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 그 쪽에 희망을 걸고 싶은 요즘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