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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리나 Jan 30. 2022

하인리히 뵐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

 

1974년에 발표된 소설이지만 여전히 황색언론과 과잉보도의 문제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에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답답해져 온다. 작가인 하인리히 뵐은 소외받고 억압받는 약자의 편에 선 작품을 써왔는데 197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여 주목을 받았다. 이 소설은 <차이퉁>(차이퉁은 독일어로 신문이라는 뜻인데, 이 소설에서는 특정한 일간지의 이름으로 나온다) 이라는 황색 언론에 의해 처참하게 유린당한 카타리나 블룸이라는 한 여성의 명예에 관한 보고서이다. 카타리나 블룸이 어쩌다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었는지 조사하며 닷새간 그녀의 행적을 재구성하여 이를 보고하는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는데 소설을 읽다보면 정말 그녀가 왜 일간지 기자인 퇴트게스를 죽였는지 이해가 될 정도였다. 소설의 문체는 그녀가 살인에 이르게 된 과정을 전혀 감정을 이입하지 않은 채 관찰자적 입장에서 매우 건조하게 서술하는데 이런 이유로 언론의 황색 저널리즘의 실체를 더 객관적으로 느끼게 만든다.





 1974년 2월 24일 일요일에 한 일간지 기자가 살해당하게 된다. 그를 죽인 사람은 27세의 가정부 일을 하고 있는 여인 카타리나 블룸이다. 그녀는 경찰에게 그를 총으로 쏘아 죽였다고 자백한다. 이 소설은 2월 20일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그녀의 5일간의 행적을 재구성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카타리나 블룸은 20일 한 파티장에서 괴텐이라는 남자를 만나 함께 밤을 보냈다. 괴텐은 새벽에 집을 떠났고, 이튿날 경찰이 그녀의 집에 들이닥쳐 가택 수색을 벌인 후 그녀는 경찰에 연행되었다. 괴텐은 은행강도에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카타리나 블룸은 신문에 괴텐의 정부이며, 그와 훔친 돈을 나누어쓴 사이일지도 모른다는 내용으로 보도가 된다. 언론은 범죄자의 탈출을 도운 정부로 부풀려 추측성 기사를 쏟아낸다. 그녀를 고용했던 주인들과 아파트 주민들의 증언을 왜곡하여 '성실하고 깔끔한 성격의 소유자'를 '무섭도록 계산적이고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로 보도한다.


 그녀의 사생활은 낱낱이 까발려져서 이미 사망한 아버지에 대한 정치적 이념 기사까지 쏟아지고 수술을 한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에 기자가 침투하여 그녀의 과거를 캐낸다. 사건의 충격으로 인해 어머니가 사망하자 <차이퉁>지에는 "카타리나 블룸의 입증가능한 첫번째 희생자는 바로 그녀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의 행실에 대한 충격으로 살아남지 못했다. 어머니는 죽어가고 있는데 그 딸은 강도이자 살인자인 한 남자와 다정하게 춤추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너무 기이한 일이고, 그녀가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전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것은 거의 극도의 변태에 가깝다."라는 정말 천인공노할 기사를 싣는다. 이쯤되면 정말 누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도저히 회복 불가능해보인다. 오늘날에도 너무나 익숙한 광경인데 이를 냉철하고 차갑게 써내려간 하인리히 뵐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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