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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윤 Mar 13. 2024

강아지야 너는 무슨 생각해?

몰라서 더 알고 싶은 강아지의 마음

벌써 세 번째 방문이다. 오늘은 들어가자마자 바닥 놓인 물이 담긴 그릇을 살펴봤다. 먼지가 떠다니는지, 거의 다 마셔서 채워줘야 하는지 확인하고 필요하면 헌 물을 버리고 새 물로 갈아주었다.


물 교체 작업을 지난번에 해봤다고 익숙하게 하는 내가 은은하게 뿌듯했다. 눈치껏 잘 적응했구만. 고작 물 교체지만 처음에는 하나도 모르고 멀뚱멀뚱하게 있었으니까 이 정도도 잘했다 잘했어.




실외배변을 하는 가을이는 밖으로 나오자마자 시원하게 볼일을 봤다. 치우기 위해 가만히 지켜보면서 이 많은 양을 참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어떻게 가지게 된 습관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소변과 대변 모두 깔끔하게 처리한 뒤 본격적인 산책을 위해 다시 출발.


하자마자 산책하는 다른 동네 강아지를 보더니 가을이의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가면서 같이 쫓아가고 싶어 했다. 왜 거기로 가고 싶어 하시는 거죠..? 가려는 가을이와 버티려는 나 사이에 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이전에 복길이를 대할 때 줄이 조일까 걱정되어 '어휴 강아지님 가고 싶은 대로 가시죠(굽신) 스타일로 움직였는데 그러면 안 된다는 걸 배웠기에..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면서 조금씩 원래 코스대로 움직이게 유도해 주었다.




동네 강아지가 시야에서 어느 정도 사라지고 나도 제자리에서 바위처럼 움직이지 않자 가을이가 마음을 바꿨는지 총총거리며 코스대로 걷기 시작했다.


변수가 사라져 마음이 편해지려는 찰나 가을이가 뒤를 돌아봤다. 나를 보는 건가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자신이 지나 온 방향을 쳐다보며 자세를 고쳐 앉고는 꼼짝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인간인 내 생각으로는 나온 김에 바깥 냄새도 맡고 기분 전환도 하고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왜 멀뚱히 있는지.. 알 수 없는 가을이의 마음.


줄을 산책길 쪽으로 당겨도 움직이지 않고 오히려 온 방향으로 당겼다. 의아해하며 산책 가자고 어르고 달래보았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싫다는데 어떻게 하나. 가을이가 보는 방향을 향해 걸으니 그제야 땅에 붙인 엉덩이를 떼고 걸었다.


쉼터에서 나온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되돌아 가는데 멀리서 쉼터 친구들인 방울이와 벤이 오는 걸 보더니, 가을이가 잽싸게 돌아서 다시 씩씩하게 산책길로 앞장섰다. 친구와 함께 가기를 기다렸나보다.




무겁게 바닥에 붙은 엉덩이를 보다가 씰룩거리며 앞장서는 가벼운 엉덩이를 보니 어찌나 귀여운지! 그림자 마저 웃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방울이와 산책하시는 분께 방금 전 상황을 말씀드리니, 가을이가 친구들이랑 같이 가는 게 익숙하고 좋아서 그랬던 것 같다고 설명해 주셨다.


친구랑 같이 있으면 안정감을 느끼는 건가. 그들이 느끼는 유대감. 새롭고 신기하다.


가을이는 방울이랑 앞서거니 뒷서거니 열심히 걸었다. 아까 돌아가려는 태세는 어디가고 계속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걷다가 산자락 어느 경계선에 다다랐다. 신나게 내려가면 힘들게 다시 올라와야 하는 계단.




가야 하나. 가도 되나. 망설이는데 가을이와 방울이가 계단에 나란히 서서 어떤 신호를 기다리듯 멈춰섰다.


나는 어디까지 가도 되는지 몰라서 방울이 짝꿍님의 신호를 기다렸다. 그 분이 가면 가고 되돌아 가면 되돌아 가려고.


강아지들도 고민하고 있는 걸 아는지 더 이상 줄을 당기지 않았다. 그 순간 그들은 사진처럼 풍경을 감상하듯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순간이 너무나 신기해서 기억에 오래 남는다. 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걸 이 친구들도 듣고 있는 걸까? 더 가자고 낑낑대며 당기거나 움직이지 않다니.


"가자!" 하고 말을 뱉으니 알아들었다는 듯 신나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마치 말을 알아 듣는 듯한 느낌. 교감하는 것 같은 느낌. 이 순간의 감정은 오랜 시간 기억될 것 같다.




돌아가자고 뒤로 당겼으면 그대로 따라왔을까? 버팅겼을까?

대화하는 걸 어떤 마음으로 듣고 있었을까?


궁금하다 나는 모르는 강아지의 마음.


가을아, 방울아, 너네는 무슨 생각하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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