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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동업자  H

상상 속 사이드 프로젝트를 현실로 옮기는 힘.



‘태화방앗간의 원동력은 어디서 오느냐’고 누군가 물었다.

나는 아주 진지하게 ‘한약 한 재와 동업자’라고 대답했다. 더 정확히는 ‘한약 한 재와 동업자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라고.

?? : 흰 천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재작년 겨울, 나는 체력 대신 정신력을 갉아먹으며 버티고 있었다.

급기야 친구 졸업 전시회를 축하해주러 갔다가 픽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 운동 부족, 과로, 스트레스 같은 흔한 이유였다. 엄마가 잘 아는 한의원에서 녹용이 들어간 한약을 한 재 지었다. 생색은 엄마가 냈는데, 돈은 내가 냈기 때문에 매일 꼬박꼬박 먹었다. 그랬더니 신기할 정도로 활력이 생겼다. 비슷한 시기에 달리기를 시작했고, 체력은 빠르게 본래 모습을 찾아갔다.


여분의 체력이 생기자, 뭔진 몰라도 재밌는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 기울이면 내 주변에선 드릉, 드릉하는 소리가 났을 것이다. 항상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나는, 하고 싶은 게 정확히 무엇인지 구체화되기도 전에 H에게 연락부터 했다. 무언가를 해 보자고, 무엇이든 해 보자고. 그렇게 태화방앗간이 시작됐다.


동업자 H는 나와 비슷한 듯 아주 다른 사람이었다.

우리는 같은 학교를 1년 차이로 다녔으나, 회사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미디어학부 출신답게, 공대생인 나보다 훨씬 적은 시간을 들이고도 훨씬 세련된 인스타그램 게시글을 만들 줄 알았다. 그는 맥북과 아이패드, 아이폰, 애플 워치를 모두 갖춘 애플 생태계의 일등 시민으로서, 에어드롭으로 사진과 영상을 빠르게 공유하며 뭐든 척척 만들어내곤 했다.


나는 그의 템플릿을 은밀히 따라 하였으나, 특유의 ‘꾸안꾸’ 느낌을 구사하는 데는 번번이 실패했다. 카카오톡 나와의 채팅방으로 갤럭시 노트 9와 아이패드 사이를 불편하게 오가며  완성한 나의 게시글은, 마치 오버사이즈 맨투맨에 멋들어지게 볼캡을 눌러쓴 3학년 옆에 뻘쭘하게 선 새내기 같았다.


나도 다음 폰은 아이폰 산다.


사실 그의 진가는 모임을 진행할 때 더 잘 드러났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준비한 내용을 끝까지 끌고 가는, 아주 뚝심 있는 진행자였다. 참여자들의 반응에 쫄아버린 내가 준비한 내용의 일부를 잘라내면, H는 나에게 질문을 던져서라도 모두 말하게 했다. 건너뛴 내용을 차근차근 설명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어수선한 분위기가 진정되고 참여자들도 다시 모임에 집중하곤 했다.


H는 글을 쓸 때도 일상적인 언어로 하나의 에피소드를 속도감 있게 끌고 가는 글을 썼다. 바람 소리가 나는 글이었다. 농담을 섞고, 비유를 하고, 펀치라인을 만들길 좋아하는 나와는 아주 다른 맛이 났다. 모임을 기획할 때도 그랬다. 뻔한 것과 대중적인 것 사이의 줄다리기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뜬구름 잡기를 좋아하는 내가 이리저리 뛰는 동안, H는 내가 잡은 뜬구름에 하얀 실을 묶어 지면에 연결하는 역할을 곧잘 했다.


'... H는 내가 잡은 뜬구름에 하얀 실을 묶어 지면에 연결하는 역할을 곧잘 했다.'


슬프게도, 올해부터는 혼자 태화방앗간을 운영하게 되었다.

개인 사정으로 H가 태화방앗간을 떠나게 된 것이다. 그동안 같이 해왔던 일들을 이제는 혼자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주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이유로 사이드 프로젝트에 대한 책을 보면, 유독 동업자에 대한 의견이 갈린다. 마음 맞는 사람을 찾으라는 사람도 있고, 시작은 혼자서 하라는 사람도 있다.


확실히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프로젝트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마다 쏟을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전에 계획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시작 단계의 프로젝트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계속 생기게 마련이고, 때에 따라 누군가는 좀 더 많은 시간과 마음을 쓸 수밖에 없다. 태화방앗간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날에는 내가 7, H가 3만큼 일했고, 다른 날에는 내가 3, H가 7을 일했다.


그럼에도 나는 동업자를 찾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H 덕분에 10보다 작은 용기로도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지속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혼자 시작했다면, 끙끙대며 겨우 8을 만들고는 지쳐 나동그라졌을 것이다. 여분의 체력과 의지는 이내 풍화되어 사라지고, 상상 속 프로젝트를 현실로 옮기는 것은 좀 더 훗날의 일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지금의 태화방앗간은 녹용이 들어간 한약 재와, 동업자 H가 나누어준 힘으로 굴러온 것이다.

 

끝으로, 작년 한 해 동안 태화방앗간을 함께 해준 동업자 H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Shout Out To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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