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카페에 친구 S, A, J가 놀러 온 이야기>
1. 멀리 사는 친구 S가 모처럼 서울에 왔다고 연락이 왔다.
내가 생각나서 혹시 카페로 찾아가도 되냐고 했다. 나는 당황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를 보고 싶은 동시에 내 모습을 보이기가 싫었다.
일단 열심히 핑곗거리를 생각해야겠다.
그러나 S의 위치가 카페 근처라는 얘기에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얼른 화장실로가 머리를 다시 묶고 틴트를 발랐다.
큰 차이 없는 똑같이 꾀죄죄한 모습이지만, 나는 밝게 웃으며 친구를 맞이했다.
그 시간은 보통 마감 설거지를 바쁘게 해야 해서 계속 분홍 고무장갑을 끼고 있어야 하는 시간이다.
그런데도 고무장갑을 끼지 않고 꾸역꾸역 예쁜 척 일을 했다.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림 작업을 했을 때 항상 응원해 주던 친구였는데,
지금의 내 모습을(밑바닥을) 들킨 것 같은 모습이기 때문일까.
2. 외국에서 친구 A가 한국으로 놀러 왔다.
나는 요즘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림작업으로만 먹고살기가 힘들어 돈을 벌고 있다고도 말했다.
어느 날, 그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내일 내가 일하는 카페에 놀러 가고 싶다고. 당황했다.
일단 나는 내가 아직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매니저님에게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친구는 그냥 멀리서 손님처럼 지켜보겠다고 걱정 말라고 너스레 웃었다.
나는 2차로 당황하여, 우리 카페는 회사 안에 있어서 외부인이 오면 눈에 튈 거라고 말했다.
친구는 일하는 내 모습이 꽤 보고 싶었나 보다.
외부인은 절대 안 되는 곳이냐고 또 물어보았다.
결국 적당한 솔직함이 필요했다. 나도 네가 너무 보고 싶은데, 네가 일터에 오면 내가 불편할 것 같다고.
나중에 밖에서 따로 만나자고.
그냥 솔직하게 말하면 될걸. 나도 참 나다.
3. 오늘은 친구 J가 깜짝으로 카페에 왔다.
점심을 열심히 먹고 총총 카페로 돌아왔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를 이 시간에 하는 친구가 아닌데, 조금 의아했다.
그리고 카톡이 왔다. 유니폼이 잘 어울린다고.
????
저 멀리 테이블에 친구가 앉아있던 것이다.
너무 당황해서 나는 그대로 뒷 문으로 도망쳐버렸다.
급하게 물로 가글을 하고, 틴트를 바르고 머리를 정리했다.
그리고 나 아는 척하지 말고 사람 없는 통로 쪽으로 오라고 카톡을 보냈다.
나와 직원들 먹으라고 사온 도넛을 건네받은 나는 반가움과 동시에 당혹감이 몰려왔다.
친구를 꼭 껴안아주고 그냥 바로 보내버렸다.
친구 J는 나의 애정하는 친구이자 오래된 연인이다.
내 모든 상황과 환경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 나의 가장 날 것 그대로의 모습도 잘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펑퍼짐한 유니폼에 화장기 없이 질끈 머리를 묶고 안경을 쓴 지금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내 마음속에 그어둔 선 안의 모습이었다.
그 후 J에게 카톡이 왔다.
“내가 부끄러워?ㅠ”
아니, 무슨 말이 그래…
물론 J의 장난 섞인 말이었겠지만 나에겐 그 말이 마음에 비수로 꽂혔다.
사실은 나 스스로가 부끄러워서 그래.
내 지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가 않아서 그래.
나는 오늘 화장도 안 해서 꾸질꾸질한 모습이 부끄러워서 그랬다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J가 사준 도넛을 멍하니 먹으면서 생각했다.
오늘 연차 냈다 그랬지…
여기까지 오느라 꽤 걸렸을 텐데.
내가 좋아하는 도넛도 사 왔네. 고마워라…
J가 좋아하는 음료 하나 만들어줄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 카페 그 음료 참 맛있는데…
도넛은 참 맛있었다.
그런데도 계속 목이 멕혔다.
지금 이런 내 모습이 더 부끄러운 것 같다.
*그림에 적은 글은 즉흥적으로 적었기에, 브런치에 다시 정리해서 옮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