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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시영 Apr 12. 2023

벽 뒤에 숨어버린 나

나는 지금의 내가 부끄러운 건가?

나는 지금 부끄러운 걸까?




이렇게 구직이 오래 걸릴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구직이 오래 걸린 만큼, 다행히 내가 원했던 스케줄과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최저시급이라는 씁쓸하고도 귀여운 시작도 함께지만.


미술이라는 전공을 살려야만 한다는 강박 때문에 

졸업 후 미술기관의 꽁무니를 열심히 쫓아다닌 것 같다. 

'미술이 앞으로의 내 길이 맞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을 시점에, 나는 그만 쫓아다니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했던 일을 다시 해보자고 결심했다. 그것이 커피 일이었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면서, 틈틈이 작업을 해보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사내카페의 알바, 좀 있어 보이게 말해서 '바리스타'로 일하게 되었다.

스무 살 때부터 꾸준히 카페 일을 해왔고 즐겁게 일한 경험 때문인지 마음이 모처럼 편안했다.

오랜만에 커피 일이라 많이 헷갈렸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나보다 나이가 적은 직원분들이 나를 불편해하실까 봐 오히려 상큼한 척 노력도 해보았다. 

그렇게 메모장에 하나하나 적어가면서 레시피를 외우고, 카페 룰을 익혀나갔다.


조금 익숙해져서 흥이 올라왔을 무렵,

내 눈을 의심할만한 손님이 들어왔다. 고등학교 때 친구를 너무 닮은 손님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 잠시 벗고 있었던 마스크를 다시 썼다.

그리고 멀찍이 그 손님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내가 아는 친구 같았다. 

갑자기 피가 차갑게 식는 느낌이 들었다.

직원분께 잠시 화장실에 간다며, 뒤쪽 벽에 한참을 숨어있었다.

다행히 그 손님은 직접 커피주문을 하지 않았고, 카페에 오래 머물지도 않았다.

그걸 확인한 나는, 한숨을 푹 쉬며 다시 카운터로 돌아왔다.


그리고 생각을 했다.

나는 왜 숨었을까? 

그 친구였으면 왜?

그 친구는 나랑 사이가 안 좋은 것도 아닌데, 오히려 좋은 관계인데.

지금의 내가 부끄러운 건가?

왜 나는 지금의 내가 부끄러운 건가?


퇴근길, 내 머릿속엔 의문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생각이 잠시 멈추었다.

그 생각은 갑작스러운 결론으로 흘러갔다.

내일부터는 안경을 써야지, 모자를 써도 되는지 물어봐야겠다, 마스크는 되도록 벗지 말아야겠다.


집에 돌아와 다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왜 숨었을까?

펑퍼짐한 유니폼이 마음에 안 들어서?

화장기 없는 내 모습이 초라해서?

그리고 더 솔직해지기로 했다.

이 나이에 알바하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전업작가로 살지 못하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정착하지 못하고 안정적이지 못한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작가가 되고 싶다는 목표가 정말 간절했다면,

지금 알바하는 내 모습이 부끄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고 싶은 작업을 위해 돈을 버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커피 일이 정말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다면, 그것도 부끄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하나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나였기에 그런 내 모습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렇구나.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이 부끄럽구나.


벽 뒤에 숨어있었을 때와 같이 마음이 쿵쿵거렸다.

오늘 밤은 조금 많이 쿵쿵거릴 것 같다.


내일은 안경을 쓰고 출근해야지.


마음이 쿵쿵







*그림에 적은 글은 즉흥적으로 적었기에, 브런치에 다시 정리해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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