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이시영 Apr 17. 2023

망한 면접에서 만난 친구 이야기

그리고 꽤나 멋진 대화를 했다.

그날의 면접을 기억하며




며칠 전 만난 친구의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이 친구는 지난달의 한 면접에서 만난 친구이다. 


지난달, 모 예술재단 인턴을 지원했었다.

운 좋게도 1차 서류를 합격하고, 2차 면접을 보러 동대문 근처로 향했다.

이제껏 회사 면접이라고는 제대로 해본 적 없는 나였고

면접복장은 어색하기만 했다. 

면접은 총 15분, 세 명의 면접관과 세 명의 지원자.

그리고 나는 면접관분들 앞에 예쁘게 바나나똥을 만들고 나와버렸다.

(망해버렸다는 말이다!)


면접이 끝나고 나오자마자, 나도 모르게 바로 옆에 있던 분께 말을 걸었다.

너무 말씀 잘하시는 거 아니냐고, 어쩜 그렇게 안 떨고 잘하시냐고.

스스로 망했다고 생각했기에 마음을 내려놓고 그분께 한참 칭찬을 해버렸다.

다행히 그분도 웃으면서 좋게 내 말을 받아주셨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까 나와 면접을 본 두 분이 서 계셨다.

눈이 마주친 셋은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수다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한 분의 제안으로 우리는 카페로 가서 2차 수다를 떨게 되었다.

얼떨결에 카카오톡, 인스타 친구도 맺게 되었다. 

누군가 한 명이 붙는다면 맛있는 것을 사주기로 약속도 하고 헤어졌다.

솔직히 내 부끄러운 엉망진창 면접을 목격한 사람들이기에 다시 만날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



몇 주가 지난 후, 

놀랍게도 내가 먼저 말을 걸었던 분, A에게서 연락이 왔다.

시간 되면 밥 한번 먹자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화가 굉장히 잘 통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반가운 마음에 그 주에 바로 약속을 잡고 우리는 근황 토크를 시작했다. 

우리는 결국 최종면접에서 떨어졌다!

그렇지만 우리는 몇 주 동안 다른 대안을 찾아왔다.

A는 집에서 걸어서도, 따릉이를 타고서도 갈 수 있는 거리의 문화재단에 합격하였다.

나는 집에서 가깝고, 원하는 시간대의 카페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서로 대화가 잘 통하는 친구를 얻게 되었다.

각자 준비한 것, 혹은 경험해 왔던 것을 원하면 언제든 공유할 준비가 되어있는 의리도 생겼다(?).


A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경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서로가 서로의 경험에 감탄하고 재미있어했다. 

그러나 이후 취업, 자기소개서, 면접이라는 현실적인 단어가 등장했을 때 대화의 공백이 생겼다.


나는 말했다.

경험이 경력으로 되기엔 참 어려운 것 같다고.

내가 해왔던 다양한 경험들이 보잘것없이 느껴진다고.

그 시간에 경력을 쌓기 위해 하나를 제대로 공부했어야 하나 후회도 된다고.


친구가 말했다.

경험이 경력이 되기엔 어려울 수 있다고.

그렇지만 나 스스로에게서 언젠가 뽑아먹을 게 있을 거라고 했다.


'뽑아먹는다?'

잘난 사람들한테서 좋은 점만 뽑아먹는다, 그런 뉘앙스의 말인데.

나한테서 뽑아먹을 게 있다니.

표현이 웃겼다. 그리고 기분이 꽤 좋아졌다. 

그려. 경력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나는 꽤 멋진 경험을 가지고 있어.



------



우리는 대화를 하면서 계속 '아다리가 맞다'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예쁜 말은 아니지만, 우리 상황에 이상하게 어울렸다.

제일 원하는 선택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기에.


둘 다 전공과는 다른 일을 하게 되었지만

친구는 선택한 길을 더 깊이 가보기로 결정했고,

나는 더 다양한 경험을 도전해 보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선택한 길에 대해 최선을 다해볼 것이다. 



------


*번외 드로잉


친구랑 2차로 우연히 간 카페는 참 이상하고 재밌는 곳이었다.

메뉴에 칵테일이 있었고 우리는 마티니와 블랙러시안을 주문했다.

2층에 올라가 앉으니 갑자기 구석에 있던 화물용 엘리베이터에서 삐--- 하고 큰 소리가 울렸다.

우리 음료가 준비됐다는 뜻이었다.

약간 당황해하며 조심스럽게 문을 여니 우리가 주문한 메뉴가 있었다.

이런 딜리버리 서비스도 황당하고 웃겼는데,

마티니엔 올리브가 없었고, 안주는 새우깡이 한가득이었다.

참 웃기고 재밌는 하루다.




사실 사장님이 미리 올리브 없다고 당당히 말씀해 주시긴 하셨음!








*그림에 적은 글은 즉흥적으로 적었기에, 브런치에 다시 정리해서 옮깁니다.














작가의 이전글 벽 뒤에 숨어버린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