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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매
Jun 16. 2024
불안이 나를 지배한다면
영화 인사이드 아웃 2 리뷰
나는 좋은 사람이야.
9년 만에 새로운 감정들과 돌아온 인사이드 아웃 2.
13살이 된 라일리를 형성하고 있는 자아는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 규정짓는다.
좋은 친구여야 하고, 부모님에게도 좋은 모습만 보여줘야 한다.
이 자아는 실제로 친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라일리가 모범적인 학생으로 거듭나게 도와준다.
동시에 수치스러운 경험, 실수는 다 기억의 저편으로 던져 버린다.
나는 '좋은 사람'이어야 하니까.
다 커버린 우리는 안다.
나쁜 기억을 그저 기억의 저편으로 던져 버리는 건 임시방편일 뿐이라는 걸.
나중에 그림자가
되어 우리를 괴롭힐 거라는 걸.
그렇지만,
그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그게 최선인 줄 알았을 거다.
그러다, 올 것이 온다.
피할 수 없는 사춘기가 찾아온다.
불안, 당황, 따분, 부럽.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감정들이 솟구친다.
라일리의 자아를 불안이가 리드하기 시작한다.
난 부족해.
사실 나는 사춘기를 겪은 적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를 보니 나 역시 사춘기를 제대로 겪었다.
어른들에게 대드는 것만이
증상이 아니었구나...
사춘기가 되면, 잘하고 싶은 마음에 불안하다. 남들 앞에서 우스워보일까 당황스럽다. 반복되는 일상이 따분하고 재미없다. 멋져 보이는 것을 부러워한다.
스스로를 보는 시선
은
내부에서 외부로 옮겨간다.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속이기도 한다. 무리에 속하고 싶으면서 동시에 특별해지고 싶다.
아, 이런. 어쩌면 난 아직도 사춘기를 지나지 않은 걸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기존의 감정들은 저 멀리 던져진 채 불안이는 독주한다.
불안이는 상상력을 동원해 최악의 상황을 그린다. 그것을 막기 위해 바쁘게 움직인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불안을 안고 산다.
나도 마치 '불행을 예방하기 위해 사는 사람'처럼 지낼 때가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출근하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지만 스스로를 밀어붙인다.
늘 성과를 내고 인정받아야 할 것만 같다. 쉬는 날조차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마음이 무겁다.
관련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한 적이 있었다.
그때 들었던 조언은 이거다.
불안한 감정이 운전대를 잡게 하지 말라고.
물론 불안의 순기능도 있다.
더 노력하게 하고, 미리 준비하게 하고, 더 나은 결과를 얻게 했을지 모른다.
실제로
그런 것들이 모여 더 많은 것들을 성취하게 도와줬을 것이다.
입시라는 압박을 견디며
공부를 열심히 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기 위해 부지런히 생활하고.
그게 쌓이고 쌓여 어린 날의 자신을 리드하는 감정이 불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 기반을 갖춘 어른이 된 지금은 조금 편해질 필요가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 불안함이 운전석을 잡고 폭주할 때가 있는 거다.
그러니 불안이
주도해서 운전대를 잡게 하지 말아야 한다.
그저 조수석에 앉혀서 약간의 도움만 받으면 된다.
이 말을 들을 당시에는 비유가 어렴풋이 와닿을 뿐이었다.
그리고 불안이가 폭주하는
하는 장면에서 '이거구나' 하고 깨달았다.
이 영화는 귀여운 감정 캐릭터들을 이용해서 재밌게 표현하고 있지만,
실은 놀라우리만큼 우리 심리에 대해 꿰뚫고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피트 닥터 감독은 인사이드 아웃 본편 관련 인터뷰에서 심리학자, 뇌과학자, 정신과 의사들의 조언을 받았다고 한다.
결국 불안이는 스스로도 컨트롤이 안 돼서 어쩔 줄 몰라서 눈물을 보인다.
모든 감정들이 서로를 감싸 안아줄 때 비로소 안정을 되찾는다.
그리고 라일리의 자아에는 여러 생각이 자리 잡는다.
"난 좋은 사람이야."라는 착해야 한다는 생각만 하지 않는다.
"난 부족해."라는 스스로를 질책하는 생각만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좋은 사람이지만, 때로는 못되기도 하다.
나는 잘하지만, 때로는 부족하다.
무조건 나쁜 감정은 없다.
결국 불안이도 라일리의 행복을 바랐다. 모든 감정은 결국 행복을 바란다. 방법이 서툴 뿐이다.
아마 불안이는 실수하고 싶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영화 속 대사처럼
'살면서 실수는 할 수밖에 없다'
이를 인정하면 조금은 편해진다.
스스로를 컨트롤하지 못할 때면, 불안이를 리클라이너에 앉히고 따뜻한 차를 건네주자.
기쁨아, 라일리가 널 부르고 있어.
때로는 슬픔
, 불안
, 버럭이
감정을 컨트롤하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라일리는 기쁨이를 부른다.
우리의 인생의 본질도 결국은 기쁨이 아닐까.
힘들고 지치고 우울한 나날도 있겠지만, 언제든 기쁨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믿고 싶게 하는 게 바로 디즈니
,
픽사의 매력이다.
+
"이 영화를 우리 아이들에게 바친다. 우리는 너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엔딩크레딧의 문구를 보고
어른인 내가 위로를 받는다
.
그저 귀여운 캐릭터를 보고 까르르 웃는 어린아이들에게도
영화의 뜻을 어렴풋이 이해하는 어린이들에게도,
사춘기를 겪고 있는 청소년들에게도,
이미 어른이 된 우리에게도 필요한 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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