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회의원회관의 가을 풍경
전철역에서 내려 여의도 의원회관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친절한 표지판을 기대한건 아니지만, 폐문앞에 무뚝뚝하게 출입카드가 없는 사람은 다른 입구로 가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걷기에 좋은 날씨여서 멀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의원회관 세미나실은 어수선했다. 모든 프로그램과 일정이 국회의원의 동선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정작 얘기를 듣고자 부른 사람들은 그 뒷전으로 밀려있었다. 애초부터 생산적인 토론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저으기 실망스러운 풍경이었다. 그런데 이런 실망스런 기분을 주변 경치가 바꿔놓았다. 가을의 절정을 이루는 식생들이 국회의사당과 의원회관 사이의 공간을 채워넣고 있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동안 아늑한 느낌마저 들었다.
@2. 만리동의 라멘집
대전으로 출장을 가기전 일행들과 점심식사 장소로 향했다. 라멘집이라고 해서 딱히 기대를 하지 않았다. 장소가 만리동이라고 했다. 만리동이라면 뭔가 맛집이 있는 곳일거라는 기대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사람들이 잔뜩 대기하고 있었고 먼저 도착한 동료 일행이 번호를 번갈아 받아 기다리고 있었다. 금동전기라는 옛 간판을 그대로 두고 양철 스레트 지붕도 그대로 둔 상태로 가게를 디자인했다. 가게 안과 밖전체가 예전 건물의 형태와 모습을 그대로 둔채 인테리어를 했다.
기다리는 줄이 길어 식욕을 자극하고, 옛스런 모습과 현재의 인테리어의 조화가 식욕을 돋운다. 30분정도 기다려 주문순서가 되었다. 유즈시오(소금) 라멘을 주문했다. 다시 밖에서 잠시 대기했다. 주문한 번호로 한번 호명을 받고서 입장했다. 가게안의 고즈넉한 분위기속에서 그동안 일본에서 먹었던 라멘들의 잔상이 떠올랐다.
@3. 라멘의 추억
도쿄의 돈코츠 라멘 : 짜고 껄쭉한 라멘에 ‘아쯔이 미즈’라는 단어로 뜨거운 물을 얻어 계속 부어 먹었는데 도대체 뭘 먹었는지 잘 몰랐다. 라멘의 존재를 모르고 먹는 바람에 그 맛을 놓쳐버렸다.
벳부역 앞에서 먹었던 미소라멘 : 껄쭉한 돈코츠 라멘을 날려버렸다. 깔끔하고 개운한 미소된장맛에 흠뻑 빠졌다. 라멘이 맛있는 음식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후쿠오카 이치란 라멘 : 자동판매기에서 주문하고, 독서실처럼 분리된 공간으로 각자 이동, 돈코츠 라멘의 깊은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프랜차이즈 라멘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라멘과 생맥주가 잘 어울린다는 것도 이 때 알게 되었다.
우레시노에서 라멘 장인을 만나다 : 올해 초 가족들과 우레시노 골목에서 먹었던 라멘은 단순, 담백, 소박한 이미지안에 오랜 세월의 깊은 내공을 국물로 떠서 먹었다. 특히 주인장의 웃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4. 깔끔하고 개운한 소금맛 라멘
라멘 한 그릇의 얼굴이 가진 아우라를 잠시 들여다보고 가게를 돌아보고 다시 주방을 쳐다본 순간, 비행기로 일본에 날아간 느낌이 들었다. 국물을 한 국자(이게 모양은 국자 모양이고 면적은 숟가락과 비슷한 용량을 담을 수 있는 수준이라) 먹었다. 깔끔하고 개운한 국물의 깊이를 가늠하기 쉽지 않았다.
누군가 내공을 쌓아 마련한 국물을 평가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고, 더구나 그것을 비교하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된다. 맛은 그저 맛으로 음미하면 그만이다. 가게를 안내해준 동료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벽에 씌여진 안내판에 국물을 리필할 수 있다는 내용을 보고 안심하고 국물먹는 속도를 좀더 높였다. 최근 면에 대한 욕심은 줄이고 국물에 대한 애착은 늘리고 있던 차였다.
반 쪽의 계란은 그냥 삶아서 반으로 자른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서 잠시 어떤 곳에 담가 숙성시킨 듯한 맛이다. 재료 하나 하나에 정성을 들인 모습이 그릇안에 비친다. 두 점의 수육은 두툼하고 먹음직 스러운 색깔이다. 이베리코 돼지고기를 사용한다고 했다. 촉촉히 젖은 육즙과 루꼴라, 면과 별도로 담아먹을 수 있도록 준비한 부추김치가 한 덩어리로 어울려 입안 가득히 만족감을 선사한다. 딸랑 한장 나온 김은 아무래도 먹는데 이바지 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라면의 모양새를 갖추도록 장식적인 느낌이 강하다. 당연히 주인장의 의도에 긍정의 한 표를 던진다.
일본에서 라멘에 죽순이 들어갔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드물지 않았을까 ? 죽순은 숨을 죽여 부드럽고 면과 잘 어울린다. 예상했던 대로 국물이 바닥을 드러내는 순간 동료께서 국물 리필을 주문해주셨다. 국물안에 육군과 해군의 흔적이 있엇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궁금하지 않다. 맛있으면 그만이지.
오전에 근력운동을 하여 필요한 시점에 에너지를 공급받는 차원을 넘어서서 잠시 일본을 다녀온 느낌이다. 이 정도라면 굳이 일본을 가지 않더라도 괜찮겠다 싶었다. 음식의 양은 충분해서 아쉬움이 전혀들지 않았다. 옛스런 풍경의 인테리어가 내내 잔상으로 남았다. 주말에는 한 시간을 각오해야 한다고 하니, 차라리 주말 오후 3시 이후 어중간한 시간을 택해 이 가게를 한번 더 방문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