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로나무 Feb 09. 2024

아버님 7주기에 부쳐 #5

- 아버님의 흔적이 남아있는 사진들

맨 오른쪽 선명하지 않지만 20대의 젊음을 간직한 시선과 당시에 유행하는 헤어 스타일, 아마도 포마드 기름을 바르시지 않으셨을까 추측된다. 아버님은 당신이 찍은 사진들에 대해 별로 말씀을 안 하셨다.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수다를 떠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당당한 체격은 이때부터 형성되신 것 같다. 아버님은 평생 60킬로 초반대의 몸무게를 유지하셨다.

광주에서 군생활을 하셨던 아버님은 힘들었던 시절을 자주 회고하셨다. 악독한 상사를 만나 고생했던 기억이 그 지역에 대한 반감으로까지 확대되었다. 그 상사가 제대하던 날 혼내주셨던 기억을 얘기하실 때는 시원한 미소도 잊지 않으셨다.

어머님과 아버님으로 인해 나와 동생들이 세상에 태어났다. 두 분의 인연의 끈은 우리에게는 생명줄이다. 모든 생명이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세상의 빛을 본다. 그것만으로도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한다. 하지만, 어디 그런 근본적인 것을 늘 생각하고 사는가? 20대 후반 어머님과 30대 초반의 아버님의 젊은 날의 모습 !! 잘 어울리신다. 경북 예천 고향사진관이란 기억이 선명하신 어머님, 오래 오래 사세요.

앞 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아버님이 앉아 계신다. 이렇게 광산과 인연을 맺은 것이 아버님의 삶의 기반이 되었다. 우리의 삶은 아버님의 삶의 기반 위에 존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형성된 도급제로 인해 수많은 굴곡과 인권 유린과 노동 착취의 역사적 흔적들이 이제는 사라졌다. 대한석탄공사에서 실시하는 정기 훈련에 참가하셨던 걸로 추측된다.

희미한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이 해수욕장 사진. 어머님은 셋째를 임신하신 상태였다. 바닷물이 밀려들어올 때면 내가 막 울었다. 어머님이 물에 쓸려간다고. 바다를 처음 보니 겁이 나서 그랬을 것이다. 지금도 그때 내가 처음 본 수평선의 기억이 선명하다. 한껏 멋을 내신 아버님의 손이 내 어깨에 올려진 그 느낌을 사진이 있어서 느낄 수 있다. 기억에는 없지만 사진이 있으니....

삼 남매를 키우면서 단란한 가정을 이루던 광산 노동자 시절, 우리 가족이 갈 수 있는 관광지는 인근의 통리 미인폭포다. 팍팍한 일상의 삶에서 놓여나 잠시나마 단란하고 편안한 모습

둘째 동생은 아버님을 많이 닮았다. 생김새만 닮은 것이 아니라, 아버님의 성품 특히 부지런함은 완전 판박이다. 광산노동자 생활을 청산하시고 두부공장 제조일을 하신 뒤에 고랭지 배추일을 다니셨는데, 삼 형제 중 유일하게 아버님과 새벽에 배추 지게를 지고 같이 다녔다. 게으른 나를 대신해서 고생을 함께한 동생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막내 동생은 어머님을 많이 닮았다. 어머님과 가장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아버님은 77년 광산노동자 생활을 청산하고 두부제조업을 시작하셨다. 가끔 시간 나실 때 수많은 광산노동자들이 사고로 잠들어 계신, 산업전사위령탑을 들르셨다.  

부산 부전시장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계신 막내 외삼촌과 외숙모 결혼 당시의 모습. 아버님과 막내 외삼촌과는 거의 친형제와 같은 관계를 유지했다. 막내 외삼촌은 늘 아버님을 "새 형님"이라고 하며 깍듯하게 대했고,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장례를 치르면서 누구보다 많이 슬퍼하셨다.

막냇동생과 아버님, 어머님께서 외갓집이 있던 안동으로 여행을 가시면서 찍은 사진이다. 아마도 기분 좋게 한잔 하셨을 것이다. 어머님과 아버님이 같이 환하게 미소 짓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대학에 입학한 후, 아버님과 어머님을 모시고 태백산 입구로 소풍을 다녀왔다.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으셨던 어머님도 이날만큼은 밝은 모습이다.

아버님은 젊은 시절부터 미남 소리를 많이 들으셨다. 연세가 들어서도 그 품격 있는 모습을 잘 유지하셨다. 이때에도 어머님은 우울증으로 인한 병색이 얼굴에 남아있다. 지금은 오히려 이때보다 건강한 모습으로 잘 지내고 계신다. 아버님이 술을 많이 드셔서 좋은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아버님에 대한 고마움을 자주 표현하신다.

막냇동생 고등학교 졸업식과 나의 대학 졸업식. 37년 전이지만, 지금 여기 계신 것처럼 생생하다. 시간은 가고 추억은 남는데 그 추억을 되새기는 일을 사진이 하고 있다. 가끔 아버님이 꿈속에서 뵈는데, 아주 밝은 모습을 보여주신다. 아마도 내가 그토록 아버님의 밝은 모습을 많이 원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7년이 지났지만, 아버님이 살아오신 삶의 흔적은 여전히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신다. 살아계실 적 삶의 흔적들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은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아버님의 삶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보는 일은 앞으로 지속될 것이다. 무한한 감사의 인사와 함께!!






 

매거진의 이전글 혼술의 즐거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