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장에서 즉흥 음식 연극을 맛보다

by 새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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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소중한 음식 자산을 타인에게 알려준다는 것은 아름다운 공유이자 기부다. 그렇게 해서 획득한 자산을 평생 즐길 수 있다면 그만큼의 가치가 만들어지고 가치를 즐기게 된 공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세상을 좀 더 따뜻하고 아름답게 바꿔놓을 것이다. 음식 자산은 타인으로부터 얻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스스로 기회비용을 들이거나 모험심을 발휘해가며 획득한다. 가게 주인과의 깊은 유대관계는 음식을 질적으로 한 단계 끌어올린다. 수준 높은 음식을 먹음으로써 수백 개의 미각 수용체가 활성화되고 이로 인해 장내 미생물과 장내 세포 간의 관계는 더 탄력이 생겨 장생 태계의 질서가 더 단단해진다. 이뿐인가? 이 과정에서 뇌는 득템 했음을 알아차리고 즉각 엔도르핀을 발생시키며, 뇌와 장의 건강함은 내 몸 전체의 면역력 증강으로 이어진다. 배려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해 자산 기부자와 자산 획득자에게는 각기 옥시토신이 분비될 것이고 이는 다시 각자의 신체 활력과 건강에 기여할 것이다.


상호가 심상치 않다. 앵두는 장미목 장미과 벚나무 속 나무로 순우리말로는 '아스라지'라고 한다. 앵두꽃은 벚꽃놀이 시즌에 핀다. 꽃말은 수줍음이고 꽃말은 오직 한 사랑이라고 하는데 뭐 처음 발견한 사람이 감정이입 한 대가로 추수해갔다고 생각하면 되지 그 이상은 아닌 거 같다. 기록에 의하면 세종대왕의 세자였던 문종이 항상 후원에다가 앵두나무를 심고 가꾸며 앵두가 익을 5-6월에 직접 따서 세종에게 올렸다고 한다. 이 가게가 위치한 서촌이 궁과 가깝고 세종대왕에 관한 얘기를 하시는 가게 주인의 말씀에 나는 엉뚱하게도 음식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높였다. 손을 씻으려 화장실 문을 연 순간 거울에 붙여놓은 문구에 한순간 멍해졌다. "인생 눈감으면 딱! 끝이다. -즐겁게-" 군더더기 하나 없는 선명하고 분명한 메시지에 각 글자와 부호들이 있어야 할 위치에 있었다. 이 메시지는 음식을 먹는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식전 헤이즐넛 커피 알갱이가 담긴 따뜻한 물을 내주셨는데 그 향기가 후각과 미각을 동시에 자극한다. 바로 옆자리에서는 스님 여덟 분이 모이셨는데 자신들의 머리가 가게 안을 빛나게 한다는 농담을 하셔서 정신적으로도 완전 무장해제되었다. 이제 먹는 일만 남았다. 커다란 옹기그릇에 배추 한 포기가 형형색색의 눈부신 자태를 드러낸다. 한 점 찢어먹는 그 순간, 어느 고을에서 자럈을지 모르는 그 배추가 소금에 몸을 담그기 전의 그 싱싱함을 떠올리게 하는 아삭함과 시원함, 미세한 매콤함과 역시 미세한 달콤함이 복합적으로 입안으로 퍼진다. 보는 즐거움과 먹는 즐거움을 동시에 선사하는 김치를 오랜만에 맛본다. 김치는 저녁 먹는 동안 다른 음식들이 잘 찾아올 수 있도록 불을 밝히는 등대 역할을 했다.


머리고기에 두부와 김치를 올리고 잘 익은 갈치젓을 올려 먹었다. 갈치 젖은 비리지 않고 은은하게 머리고기와 두부 사이로 스며들었다. 김치는 압도적이어서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가지 튀김은 튀김반 익힘반의 절묘한 배합이다. 겉은 약간 바삭하고 안은 완전히 촉촉해서 가지의 식감이 살아있다. 족발은 오랜 시간을 들여 익혔을 때만 얻을 수 있는 은은한 빛깔을 보인다.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 식감과 맛을 짐작할 수 있다. 역시 김치와 아주 잘 어울렸다. 쫀득한 껍질과 구수한 속살은 천천히 씹을수록 분명한 맛으로 나를 행복하게 했다.


싱싱한 낙지가 한아름 담긴 그릇을 잠시 보여주시고는 얼른 데쳐 내놓으셨다. 잘 데친 낙지는 부드러워서 씹는 즐거움과 심해를 누비고 다닌 낙지 살 속의 바다내음을 같이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가게의 특징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인원과 1인당 가격만 말하고 예약을 하면 사장님이 그날 바로 장을 봐온다. 이미 우리가 예약한 상태에서 스님들 예약이 들어왔다고 양해를 부탁했다고 하신다. 그러니, 우리가 먹는 메뉴와 옆 테이블에서 먹는 메뉴가 같다. 뭐가 나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마치 즉흥연기를 구경하듯이 음식이 하나씩 나온다. 우리가 먹는 메뉴는 다섯 가지다. 최고 아홉 가지까지 준비해줄 수 있다고 하신다. 아침과 점심을 거르고 저녁으로 아홉 가지를 반드시 먹으리라고 다짐했다. 스님들께서 한 마리를 우리 테이블로 주신다. 맛있는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참 아름다운 광경이다.


막걸리를 주로 마시게 된 지 14년, 송명섭 막걸리를 알게 된지는 5년 정도 되었다. 이 막걸리에 대한 기억은 어두운 골목길과 같다. 어렴풋하게 알코올 도수가 진하다는 인상만 받았었다. 옹기그릇에 살얼음이 꽉 차게 나왔다. 얼음을 뒤로 밀어내며 핝잔씩 마시는데 일단 진한 느낌이 전혀 없고, 막걸리 본래의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었다. 누룩 내음이 잔잔하게 바닥에 깔려있다. 이제야 비로소 이 막걸리를 제대로 만났다는 느낌이다. 역시 막걸리는 제대로 된 음식과 만나야 한다. 그래야 음식도 빛이 나고, 막걸리도 맛있다. 문득 선반을 보니 보기 드문 주전자가 대여섯 개 있고 멋진 빛깔의 빛바랜 막걸리잔이 보인다. 막걸리잔은 절대 안 된다고 하셔서 주전자에만 막걸리를 부어 마신다.


배가 불러 막걸리와 김치만 먹고 있는데 옹기그릇에 갓 지은 밥을 내주셨다. 갓 지은 밥 냄새는 배부름과 상관없이 나를 자극한다. 자극의 가장 깊은 중심에는 나를 완전히 감싸안는 아늑하고 넉넉한 품이 자리 잡고 있다. 입안에서 밥알들이 김과 김치 뒤엉키며 멋진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다른 분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을까? 놀랍게도 사장님의 예언대로 밥이 담긴 옹기그릇은 비었다.


커피와 커피를 우려내고 있는 그릇이 모두 심상치 않다. 커피는 진하지 않고 부드러워 진한 커피에 민감한 나를 안심시켰다. 히말라야 트랙킹 중에 불을 피워 올려 넣고 마시는 커피와 같은 느낌이다. 질병을 이겨낸 힘과 여행을 다녔던 힘, 그리고 좋은 작품을 보는 심미안을 갖고 계신 사장님의 얘기에 모두들 귀를 기울인다. 아쉬움에 한잔 더 먹으며 테이블에 나뭇잎과 같이 흩어놓은 안주를 먹으며, 음식을 먹으며 느낄 수 있는 품격과 품위를 생각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다는 생각에 마음도 푸근하다. 마이클 잭슨의 빌리진에 맞춰 살짝 허락도 받지 않고 사장님이 아끼는 걸로 보이는 모자를 쓰고 어깨를 으쓱거리는 오버액션을 하게 되었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니 후유증을 앓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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