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의 진수를 여행
비교하지 않는 자유와 비교할 수 없는 행복
1. 깊고 깊은 평양냉면이라는 강물
깊고 고요히 흐르는 강이 있다. 그 강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팍팍한 삶을 위로하고 항상 자신의 전부를 내주었다. 사람들은 시시 때때로 와서 그 강의 깊은 맛을 보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잠시 세상사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었다. 그 강이 처음부터 깊었던 것은 아니지만 세월이 흐르고 수많은 식재료들을 만지고 다듬으면서 점점 깊어져 갔다. 사람들이 그 강에 대해 내리는 찬사는 날로 더해갔고 그럴수록 그 강은 넓고 깊어졌다. 어느덧 나도 그 강물에 도달해서 10여 년 전 그 강물의 맛을 보았다. 처음에는 무슨 맛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몇 번을 다니면서 그 강물의 맛을 알게 되고 깊이를 조금씩 조금씩 느끼게 되었다. 어느덧 나에게 강물의 맛은 수심 1m 깊이까지는 도달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오늘 나는 3m 깊이까지 내려갔다. 좀 더 넓고 깊은 세계는 내가 알던 얕은 세계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 물론 다른 강물 줄기들이 있는데 굳이 왜 아까운 시간과 노력을 들여 비교할 필요가 있는가? 그 강은 그 강대로 아름답게 흘러가며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준다. 이 강물은 이 강물대로 흐르며 사람들의 갈증과 시장기를 거둬들인다.
깊게 심호흡을 해서 최상의 신체적 상태를 만든 다음 두 손으로 그릇을 받쳐 들고 한 모금 강물과 같은 국물을 마신다. 강물은 간간하고 은은하게 입안에서 시작해 온몸으로 퍼진다. 한번 더 들이킨다. 아까와 같은 동심원의 파장으로 역시 온몸 구석구석 강물 맛의 감동을 전달한다. 몸 전체가 국물 맛을 느낀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이 가게 주인과 그 주인의 어버이와 그 어버이의 어버이에게 감사한 마음이 듦과 동시에 부모님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낳아주고 길러주셔서 이런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해 주신 그 공이 있었기에 지금의 이런 행복한 순간이 있다는 아주 평범하지만 뼛속 깊이 느껴지는 의미심장한 사실 말이다.
사이드 메뉴로 주문한 비빔냉면은 그 깊이를 알 수가 없어서 한 젓가락 먹고는 다시 물냉면에 집중한다. 국수 한 젓가락, 국물 한 모금 넘길 때마다 매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온다. 국수면발에 편육과 배추김치와 무김치, 그리고 소스를 살짝 얹어 먹는다. 이렇게 맛을 낼 수 있는 융합은 아주 쉬운 융합이다. 세상에 융합기술과 융합학과 융합공정이 어려운 이유는 이렇게 쉽게 맛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편육은 돼지고기 내가 거의 없고 깔끔하고 담백하게 국수와 어울린다.
국수는 편육 사이사이로 스며들어 마치 편육과 국수 면발이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맛을 느끼게 해 준다. 배추김치와 무김치는 각자의 존재감을 최소화시켜 냉면에 집중하도록 한다. 사람인자는 하나는 서있고 하나는 받쳐주는 것으로 구성된다. 그렇게 사람인자가 완성된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서로를 받쳐주어야 일이 되고 빛이 난다. 무 김치와 배추김치는 냉면과 편육을 받쳐주고 있다. 그 위에 살짝 얹은 소스는 그 냉면과 편육과 김치들의 맛을 반계단 정도 끌어올리고 있다.
마침내 바닥을 드러낸 냉면그릇을 보며 아쉬움을 삼킨다. 마침내 바닥을 드러낼 것을 알고 먹는데 그래도 바닥이 드러난 냉면그릇을 보며 진한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면수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다. 그 면수는 메밀이 자라던 대지의 공기와 토양의 온기를 그대로 들고 온 것처럼 몸을 아늑하게 해 준다. 잠시 빈그릇을 바라보며 채워지는 것과 비어있는 것 사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본다. 삶이란 이렇게 채우고 비우고 하는 과정을 통해 사소하지만 의미 있는 가치를 발견하는 장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본다.
가을 하늘은 더없이 파랗고 구름은 헬싱키나 스톡홀름 혹은 융프라우와 리기산에서 보았던 그 구름들이 지금 한국의 가을 하늘에 밀려온다. 마치 만화 속 주인공이 된 느낌이다. 작년만 하더라도 찌든 미세먼지의 농도 수치를 보고 하루하루 혈압이 오르내렸던 나날들이었는데 올해는 정말 하늘이 주는 선물을 매일매일 꼬박꼬박 받아 든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사함이 내게 밀려온다. 그리고 이 가게가 나에게 선사한 포만감과 만족감에 나는 그만 행복이란 단어를 떠올리고야 말았다.
2. 냉면 국물의 깊은 맛을 길어올리다
점심을 먹으러 나서는 순간, 우선 메뉴를 선택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복잡하다. 메뉴를 확신 있게 얘기하는 사람이 드물다. 대개는 아무거 나를 외친다. 각각의 선택지를 맞춰보며 합의를 도출한다. 어떤 때는 정하지 않고 무작정 나설 때도 있지만, 이렇게 선택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잠시 잠깐이지만 그 메뉴에 대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오늘은 평양냉면으로 합의를 보았다. 머릿속에 선택지가 여럿 있는데 오랜만에 이 가게를 선택했다. 내가 이전에 먹었을 때는 어떤 맛이었는지를 떠올려본다. 그리고 그 사이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궁금함은 설렘으로 변한다. 같은 음식을 만들어 팔지만 매번 식재료는 다르다. 다른 식재료를 어떻게 같은 맛으로 완성해내는지도 궁금하다. 그리고 그 사이 가게의 외양과 맛의 깊이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도 궁금해진다.
제육은 자유분방한 모양이며 빛깔이 아주 좋았지만 가격에 비해 양이 너무 아쉬웠다. 배추김치와 무김치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깔끔한 맛이 난다. 제육과 냉면의 보조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할 수 있을 만한 그런 맛이었다. 우선, 제육에 배추김치와 무김치 그리고 이 가게만의 독특한 양념을 얹어 한 점 먹는다. 양념은 날카롭지 않고 음식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그런 맛이었다. 역시 기대했던 대로 거의 잡내가 없는 제육과 입안에서 잘 어우러진다. 접시만두는 만두의 기본 요건인 촉촉함을 완전히 만족시키는 수준의 식감으로 내게 다가왔다.
메인 메뉴인 냉면이 등장한다. 이 시점에서는 항상 숙연해진다. 이 음식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잠깐 동안 떠 올린 뒤 그릇을 손으로 받치고 육수를 한 모금 먹는다. 일상적인 이 의식 속에서 음식을 만드는 행위와 음식을 먹는 행위 간의 관계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경건함마저 느낀다. 냉면 맛으로 깊게 들어가기 전 이 의식을 통해 냉면 전체의 분위기와 내 몸간 조정하는 자세를 갖춘다. 육수 맛은 군더더기가 전혀 없이 깔끔하고 시원하며, 향긋한 고기 내음도 함께 넘어간다. 평양냉면 육수는 맛을 보는 사람의 느낌과 그동안의 경험, 미각 수용체의 활성 정도에 따라 변화무쌍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어떻게 이런 맛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다만 나는 먹는 자로서의 행복한 지금 이 순간만 느끼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궁금해진다. 어떻게 이런 음식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점점 깊이 냉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가끔은 평양냉면을 먹다가 점점 냉면 육수 속으로 내 몸이 깊이 들어가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한다. 육수가 내 몸에 흡수되면서 몸안으로 퍼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젖어든 몸에 고소한 메밀을 맛보고 삼킨다. 육수와 메밀면은 몸속에서 다시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할 것이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맛보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온 몸을 돌아 소화가 되었을 때에 비로소 완료되는 것이다. 길고 긴 여행이고, 내가 알 수 없는 수많은 작용들이 있을 것임을 다만 짐작할 뿐이다. 먹고 난 뒤의 아쉬움이 빨리 찾아올까 봐 냉면 육수를 추가했다. 육수 국물의 은은함은 그릇을 비우기 전까지 지속된다. 마지막 남은 고춧가루와 육수 메밀 파편들을 한꺼번에 깔끔하게 마시고 나자 마치 내가 할 일을 다한 것처럼 성취감이 밀려온다. 음식을 만든 분의 의도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해석을 해냈다는 그런 성취감을 느낀다.
음식의 세계를 상호 비교하고 평가하는 일은 내겐 익숙하지 않다. 음식을 만들어내는 가게는 각기 다른 내력을 거쳐 탄생했다. 내력이 다르니 음식을 만드는 철학도 다르다. 그리고 인생관과 세계관도 다를 것이다. 그분들이 그 가게에서 식재료와 호흡하고 음식을 완성하고 고객과 소통하면서 그동안 쌓아온 내공을 나는 알 길이 없다. 아무리 많이 경험하더라도 그 가게의 음식들을 서로 비교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평양냉면이라는 멋진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대상으로 한 별표와 점수 매기는 유치한 문화는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개별적 영역이다. 보편적인 잣대를 대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2010년 워싱턴 교외의 선배님 댁에서 홈스테이를 할 때, 샌프란시스코보다 워싱턴이 멋지다는 말에 그 선배님은 샌프란시스코는 샌프란시스코대로의 매력이 있고 워싱턴은 워싱턴대로의 매력이 있다고 나를 가르치셨다. 그 이후 일상생활 속에서 비교하는 마음을 줄이려 노력했다. 사람은 한순간에 바뀌지 않는다. 그 깨달음을 잊지 않고 매일매일 실천해야 비로소 변화된다. 비교하는 마음을 거둬들이는 순간 세상은 좀 더 아름답게 내게 다가왔다. 사람들에 대한 비교를 조금씩 거둬들이면서 각자가 가진 매력과 장점을 좀 더 깊고 넓게 발견할 수 있었다. 말이 많은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쓸데없는 비교에 골몰하고 이를 타인들에게 전파하려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이 사람 간 균열을 만들어낸다. 나는 그렇게 살지 않으련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멋진 말을 남겼다. "말할 없는 것에 대해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매일 밤 그의 말은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별들처럼 나의 일상을 장식한다.
그리고 이렇게 고마운 분들이 만든 음식을 내 방식대로 맛보고 즐기는 자유를 누리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늘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대 속에서 각자의 위치에서 가게를 든든하게 지키고 그 가게를 개인의 자산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사회적 자산으로 만들어오신 그 노력과 정성과 열정에 감사하는 방법은 맛있게 나만의 방식대로 먹는 것이다. 맛에 있어서 권위 있는 해석이나 권위 있는 의견이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도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맛을 느꼈다. 비교하지 않는 자유를 누리며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을 획득하기 위한 한 끼니 여행은 매일 지속된다.
3. 심심하고 시원한 육수의 향기와 구수하고 부드러운 메밀의 감촉에 취하다
누가 뭐라 해도 내게 여름은 평양냉면의 계절이자 막국수의 계절이다. 언제부터인가 내 미각은 이 둘을 다른 음식이 아닌 같은 음식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평양냉면과 막국수를 먹을 때마다 기울기가 약간씩 기울기는 하지만, 그건 먹을 때만 그렇고 이 둘을 생각하면 그냥 즐겁다.
사이드 메뉴인 만두와 편육을 먹기 전 따뜻한 면수를 마시면서 이 순간부터 모든 일은 잊고 오직 음식에 집중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음식을 통한 힐링의 첫걸음이기 때문에 오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후에 뭘 해야 할지는 일단 접어둔다.
냉면이 나오기 전 촉촉한 만두를 우선 먹기 전에 간장을 한 술 떠서 골고루 적시고 숟가락으로 4 등분한다. 2등분은 한 입에 넣기 어렵다. 그렇게 나누는 과정조차 즐겁다. 숟가락에 와 닿는 만두피와 만두소의 질감조차 촉촉하기 때문이다. 만두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시장기를 잠재울 수 있다. 그리고 하나 더 먹으면 냉면의 식감이 떨어질 수 있으므로 자제한다.
편육은 우선 접시 밑에 깔고 그 위에 무김치와 배추김치를 하나씩 올려놓는다. 새우젓의 새우 두 마리를 얹고 그 위에 마늘 한 조각과 된장을 올려놓으면 먹을 준비가 완료된다. 그리고 젓가락으로 한 번에 입에 넣는 것이 포인트. 새우젓은 돼지고기 소화에 탁월하다. 배추김치의 연한 맛과 무김치의 시원한 맛이 편육에 버무려지는 순간을 즐긴다. 이 역시 시장기를 잠시 잠재우되 많이 먹지 않는다. 메인은 오직 냉면이기 때문이다. 사이드 메뉴는 사이드 메뉴로서의 역할에 족하다고 생각한다.
드디어 냉면이 나오고 언제나처럼 의식을 거행한다. 두 손으로 그릇을 받쳐 들고 오직 한 모금의 육수를 마신다. 그리고 그 심심하고 약간의 간이 되어 있는 육수의 맛이라는 표현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한 맛을 감상한다. 첫맛에 감동과 힐링을 동시에 경험한다. 그리고 한 모금 더하고는 내려놓고 면위에 편육과 배추, 무 김치, 새우젓, 마늘, 된장을 차례로 올려놓고 한 입 머금는다. 음식을 먹는 건지 음식이 나를 먹는 건지 잘 모를 정도의 황홀한 느낌이 최대한 오래가도록 천천히 먹는다. 그래도 빠르다. 마지막 의식은 역시 그릇을 손으로 받쳐 약간의 육수와 면 조각 들을 한 번에 마신다. 더 이상 여기 머물 미련이 남지 않을 완벽한 마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