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먹은 홍어가 흑산홍어다. 한마디로 운이 좋았다. 전라남도와의 산학협력을 위해 출장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목포시장에서 저온 숙성된 흑산 홍어를 포장해왔다. 저온 숙성시킨 흑산홍어의 의미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게 얼마나 귀한 음식인지!! 전날 술을 많이 마셔 속이 쓰렸는데 포장하는 와중에 홍어 코를 권하신다. 겉으로 보기에 징그럽고 물컹하게 생겨 먹을 마음이 전혀 나지 않았지만 권유에 못 이겨 세 점을 하나씩 씹어먹었다.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홍어의 코는 마음속에서 밀어내는 선입견과는 달리 씹을수록 은은하게 퍼져나갔다. 그렇지만 그게 홍어의 맛을 느끼면서 먹기보다는 권해주신 분의 성의를 생각해서 먹는 척했다. 그런데 한참 부글부글 거리던 위장이 신기하게도 편안해졌다. 서울로 오는 KTX 열차 안에서 편하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일주일 내내 냉장고에 넣어두고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선배님 초대로 장어를 먹으러 가는 길에 빈손으로 가기 뭐해 목포에서 포장해온 홍어 반 박스를 가지고 갔다. 손님들이 10여분 오셨다. 대개 한시를 익힌 어르신들이라 음식에도 조예가 깊었는데 내가 가져온 흑산홍어를 내려놓자 장어는 뒤로 밀려버렸다. 이 분들이 홍어를 드시는 모습을 보자 왠지 나도 호기심에 한 점 먹었다. 목포에서 코를 먹었을 때와는 다른 은은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났다. 시큼한 기운은 살짝 나고 씹을수록 입안 가득 퍼지는 심해를 돌아다닌 홍어의 힘찬 기운이 묻어있는 홍어의 살맛, 씹을수록 은은하게 고소한 맛은 먹을수록 깊어갔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이 밀려온다고 생각할 때쯤 이미 가져온 홍어는 모두 드셨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버님께 전화를 드렸다. 홍어 좋아하시냐고, 그랬더니 좋아하신다고 하셔서 바로 그다음 주에 나머지 절반의 포장된 흑산홍어를 들고 내려갔다. 부자지간에 귀한 음식을 두고 막걸리를 주고받았던 그 추억이 아주 아득하다. 술을 드시면 어떤 이유에서인지 안주를 별로 드시지 않는 아버님께 좋은 선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세상에 강술을 좋아하겠는가? 자식 셋 대학 보내기 위해 아끼신 게 아닌가 하는 죄스러움이 밀려온다. 어떤 음식이건 그 음식에는 우리들의 기억이 자리 잡고 있다. 기억과 음식을 더해 지금의 음식을 먹는 일은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돌아가신 아버님을 떠올리면 아버님과 같이 먹었던 음식을 생각하게 된다. 잠시 잠깐 힘든 노동으로 살아온 세월을 옆으로 치우시고 즐겁게 드셨던 그 모습이 선하다.
바다의 바닥에 사는 홍어의 먹이는 꽃게, 돔, 광어, 우럭, 멸치, 조기다. 헐!! 좋은 것만 먹는구나. 몸속의 삼투압을 조절하기 위한 요소를 함유하고 있는데 홍어를 삭히는 과정에서 암모니아를 생성시켜 특유의 맛과 냄새를 낸다고 한다. 고기가 부패하는 것이 아니라 세균이 부패하기 때문에 먹어도 탈이 없다고 한다. 관절염, 류머티즘, 기관지에 효과가 있으며, 특히 감기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효능으로는 상식으로 알고 있는 바, 강한 알칼리성이라 산성화 된 몸의 균형을 잡는 데에 좋다고 한다.
오늘은 오랜만에 연락 온 기업을 운영하는 대표에게서 전화가 왔다. 홍어를 잘하는 곳을 알고 나니 내 생각이 나서 연락했다고 한다.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흑산홍어를 서울에서 마주 대할 수 있다니 점심도 먹기 전에 설레었다. 내가 처음 먹어본 흑산홍어는 저온 숙성된 음식이다. 많이 삭혀서 입천장이 벗겨질 만큼의 홍어는 본래의 흑산홍어 요리가 아니라는 얘기를 들었다. 가게에 들어서자, 경매에서 받아온 진품 흑산홍어 인증표시가 달린 요리하기 전의 홍어를 볼 수 있었다.
홍어 한 점에 묵은 김치와 돼지고기를 얹어놓으면 삼합이 완성된다. 김치는 돼지고기와 홍어를 감싼다. 돼지고기는 홍어의 시큼한 맛을 중화시켜준다. 최종적으로는 홍어만이 입안에 남는다. 홍어 삼합에는 막걸리가 제격이다. 홍어탕은 홍어회보다 더 진한 시큼한 맛이 난다. 삭힌 냄새 가득한 홍어탕 국물은 보약처럼 몸안으로 흡수되었다. 그리고 고소한 홍어애를 먹을 수 있다. 여전히 내게 날 것의 홍어애는 숙제다. 완전히 몰입해서 먹을 수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비대면 시대가 지속되며 한쪽으로는 매출이 줄고 다른 한쪽으로는 매출이 늘고 있어 겨우 균형을 마치고 있다는 말에 사업하는 사람들이 겪는 지금의 어려움이 빨리 걷히길 바라면서 막걸리와 홍어에 깊게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