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어린이날 늘 비가 오기를 바랐던 어린이, 생일에 생일파티 같은 건 티비 속에서나 나오는 것이었다. 평소에도 먹던 미역국 마저도 생일에는 없었다. 생일 축하대신 어린이는 매년 같은 말을 들었다.
"그까짓 거 매년 돌아오는 생일 뭐가 대단한데", "내가 배 아파서 낳았으니 내가 선물을 받아야지"
생일이란 기억은 그런 것이었다. 기대하지 말아야 하는데 자꾸만 부모라 기대했다 실망하는 것. 어린이가 갖게 된 부모의 모습이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학교에서 휴가에 관한 글짓기를 해야 해 곤란해진 나는 거짓말로 휴가를 다녀왔다. 지금의 나라면 특별한 경험이 없어도, 방학 때 동네에서 본 것들이 나 동네 친구들과 집옆 빈터에서 놀았던 거라도 아무렇지 않게 즐거운 추억으로 써냈을지도 모르지만.. 그땐 나만 여름에 어울리는 바다, 계곡, 수영장 같은 근처에도 가지 않고, 아무것도 한 게 없어 아무런 여름의 기억이 없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러워 안 가본 놀이공원을 갔다 온 것처럼 지어내 썼다. 다행히 우리 반엔 아무도 그곳에 가본 사람이 없었다. 몇 학년이었는지 정확하진 않지만 그날의 거짓말은 날 더 쓸쓸한 어린이로 남겨두었다.
그들이 밖에서 하고 온 새로운 여행, 외식 같은 경험을 이야기하면, 나는 늘 왜 나는 데려가지 않느냐 투덜댔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그 대답은 매번 똑같은 말로 돌아왔다.
“니들은 앞으로 먹고 살 날이 창창한데 뭐가 걱정이냐 나중에 하면 되지” 그래서 그때 다짐했었다. 나는 절대 아무것도 그들과 나누지 않을 거라고.
그러나 과거의 기억은 나만 하고 있는 것인지 모친은 성인이 된 다른 집 딸들은 엄마 모시고 여행도 가고 한다는 이야기를 할 때, 나는 당신들이 부부동반 여행을 다녀와 자녀들에게 자랑하고 애들 데리고 다니면 피곤하다는 말을 번번이 해주었고, 우리 집은 한 번도 가족휴가를 함께한 적이 없다, 바닷가라는 걸 성인이 되어 친구들과 처음 가보았다는 구질구질한 옛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냥 내 입을 다물게 할 뿐이었다.
마음속에선 '갑자기? 왜? 내가?'라는 말이 맴돌았지만..
이런 작은 기기억들은 꽤나 긴 시간 동안 나를 쫓아와 지금도 지워지지 않았다. 물론 이런 생각을 늘 하며 살지 않는다. 잊고 지내다 '무슨 날' 특별함을 기념하는, 다정함을 주고받는 그런 날이 오면 한 번씩 곱씹어진다.
무슨 날이 싫다. 특별히 좋아야 할 것만 같은 날, 행복해야 하는 날, 가족의 소중함을 느낀다고들 하는 날. 그런 날이 오면 자꾸만 입이 쓰다.
여전히 머릿속은 덜 자랐지만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아 몸과 마음은 나이를 먹어버렸다.
자, 이제 남은 건 어버이날이라는 의무의 시간이다.
번듯하거나 어른스러운 사람이 되지는 못했지만, 언제 들어갔는지 모르는 유교사상 때문인지 효도의 부채감과, 불효의 죄책감은 남아있다.
자식을 낳았으면 그 자식도 한참 컸을 나이의 나에겐 늙은 부모가 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무슨 날만 되면 왜 그 옛날 감정을 구구절절 끄집어내는 걸까? 그런 내가 참 싫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여전히 쿨하지 못한 내가 여기 있다.
별다른 감정의 연결고리가 없는 부모와 갑자기 나눠야 할 다정함을 찾기가 어려워 부담스럽고, 스스로 내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묻고, 변명을 찾는다. 그래서 과거의 그들을 떠올려 나의 회피를 합리화하하고, 하기 싫음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애쓰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내가 별 대단한 걸 하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척 지나가거나, 모르고 지나가기도 부지기수이면서
부채감만은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명절마다 집에 가는 것에 대해 부담이 와 신체화증상이 나타나 의사 선생님에게 말했을 땐, 내가 아무것도 안 해서 마음이 더 불편해진다면, 행동을 하면 마음이 편해지는지? 내 마음 먼저 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어떤 해엔 집에 가기도, 어떤 해엔 안 가기도 하고 때마다 내가 마음 가는 대로 행동했다.
올해는 늙은 부친이 틀니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친모는 그의 아들이 틀니비용을 내준다는 말까지 듣고 나니 목돈이 없을 그들의 상황을 알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모르는 척하는 건 더 어려워 집에 내려가 부친에게 틀니비용을 마련해 드리고 돌아왔다. 목돈을 꺼내기까지 어렵고 무거운 마음이었지만 손에 전해주고 돌아올 때의 마음은 가벼워졌다.
할 수 있는 걸 하자, 할 수 있으면 하자.
할 수 없으면 못하는 거고
그땐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스스로 말을 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자꾸만 여기저기서 소리내니 신경이 쓰인다.
그 소리가 신경 쓰이지 않으면 좋겠지만 자꾸만 내 마음을 건드리니, 가정이 없는 사람은 뭔가 다른 5월을 만들어 두어야겠다.
어버이날 듣기좋은 노래나 오랜만에 듣자
불효자는 놉니다 by 씨없는수박 김대중(본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