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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te Liebe Feb 06. 2020

[중년의 사랑] Fast & Furious 4

3. Anyone who knows what love is. 

난 남의 연애 얘기를 별로 재미있게 들어본 기억이 없다. 연애 이야기의 절정은 항상 뜨거운 연애가 끝난 후에 온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이별 후의 이야기는 회의와 갈등, 헤어진 후에 발견한 부실하기 짝이 없고 허약한 자아, 상실과 분노, 온갖 상념들과 그래도 지켜야하는 살아내겠다는 스피릿까지 온갖 감정들이 들끓는 마녀의 냄비이다. 마녀의 냄비에서 잘 끓여낸 스프에 상대방의 찌질한 과거사들을 들춰내서 우리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관계의 이면들이라는 가니쉬까지 올리면 훌륭한 만찬의 메인 코스로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에 반해 평범한 연애담은  -  당신이 기억상실증에 걸렸거나, 첫사랑의 남자가 우리 집 건너편에 엄청나게 큰 집을 짓고 매일밤 파티를 하지 않는 한은? - 대체로 그다지 위대할 것 없이 비슷하게 흘러간다.  상대방은 얼마나 완벽한 사람인지,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이 행복이 끝날까봐 불안해라.. 블라블라블라...  보통의 사랑 얘기가 지루하고 뻔하게 느껴지는 건 미망에 빠져있는 연인들은 말할 가치가 있는 것들과 아닌 것들을 가려내는데 적합한 종족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날 밤, 잠들기 전에 그가 해준 재미있는 얘기, 잠이 스르륵 올려다가도 그 얘기를 생각하면서 다시 피식거리다가 잠이 달아나버렸던 그 얘기는 다른 사람에게도 정말 재미있을까? 그 사람이 나에게 보여준 다정함은 일일히 읊을 가치가 있는 것일까?  나는 송강호의 장남만큼의 계획도 없이 다소 들뜨고 흥분한 상태로 이 글을 시작했고, 이제 한 10명 쯤이 읽어주고 있는 상태가 되니, 진지하게 '작가'로서 책임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 무슨 얘기를 하면 좋지? 


두번째 만난 날,  어두운 술집의 바테이블자리에 나란히 앉아서 잠시 하던 대화가 끊겼을때, 그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뗐다. 


"When I return..." 


" 네?" 


" When I return,

It will be with another man’s clothes,

Another man’s name.

My coming will be unexpected.

If you look at me unbelieving, and say, “You are not He”,

I will show you signs, and you will believe me.

I will tell you about the lemon tree in your garden.

The corner window that lets in the moonlight

And then signs of the body, signs of love.

And as we climb, trembling, to our old room,

Between one embrace and the next,

Between lovers’ calls, I will tell you about the journey, all the night long.

And in all the nights to come,

Between one embrace and the next,

Between lovers’ calls, the whole human adventure.

The story that never ends." 


내가 돌아올때 

나는 다른 사람의 옷을 걸치고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예상하지 못한 때에 갑작스럽게 돌아와서 

당신은 나를 보고 " 당신은 그 사람이 아니에요." 라고 말하며 믿지 못하겠지요. 

그러면 나는 당신에게 징표들을 보여주고, 당신도 결국 나를 믿겠죠. 

나는 당신 정원의 레몬트리들과

달빛이 스며들던 구석창에 대해 말하겠어요. 

몸의 증거와 사랑의 징표들과

우리가 함께 전율하며 오르던 우리의 낡은 방에 대해서도..  


한번의 포옹과 이어지는 포옹

사랑의 이야기들 사이에 나는 밤새도록 당신에게 내 지난 여행 얘기들을 들려줄께요. 

그리고 다시 그 모든 밤들이 찾아오면 

한번의 포옹과 또 이어지는 포옹 사이에,

사랑의 이야기들 사이사이에 한 인간의 모험과 

결코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해주겠어요. (해석은 내가 발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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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딧세우스는 바다신의 미움을 사서 전쟁이 끝난 후에도 아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다. 한 영리한 영웅의 위대한 여정을 그려낸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는, 실은 트로이 전쟁을 마친 병사가 겪는 PTSD이다. 전쟁을 마친 병사가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는데는 20년이라는 끔찍히도 긴 시간이 필요했다.   


위의 시(?)는 오딧세우스와 페넬로페의 재회를 담은 글로, 실은 시가 아니고 영화의 대사이다. 테오 앙겔로폴로스의 영화 <율리시즈의 시선>의 마지막 독백인데... 이 영화는 발칸반도의 전쟁과 역사와 신화와 영웅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담아낸, 아니 사실 매번 중간에 잠들어버려서 정확히 무슨 내용의 영화인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꽤 달게 잠들기 때문에, 좋은 영화겠거니 짐작만 할 뿐....제목이나 소재, 감독의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디아스포라와 귀향, 전쟁후의 영웅등등의  얘기들을 아름다운 시각언어로 표현한 영화겠거니하는 생각이 들긴 하고, 아, 하비 카이텔! 그 배우가 나오는 건 직접 확인했으니 주연배우의 이름만큼은 확실하다. 


 율리시즈는 오딧세우스의 라틴어 이름이다. 승전보를 들은 후부터 곧 돌아올거 같던 남편을 기다리는 일도 20년이 지나가고, 몰려오는 약혼자들을 일일이 내치기도 지쳐가던 아내 앞에, 알아볼 수 없는 행색과 이름으로 자신을 숨긴 그가 나타난다. 그의 아내인 페넬로페는 초라한 행색의 걸인에게 자기 방의 침대를 옮겨야 겠다고 말하고. 그 걸인은 그녀의 청을 거절하면서, 그 침대는 커다란 나무를 통째로 잘라서 만든 침대이기 때문에 뿌리가 깊이 박혀있어 옮길 수 없다고 말한다. 아내는 눈 앞의 남자가 함께 나무를 잘라 침대를 만든남편이라는 걸 마침내 알아보고 둘은 눈물의 재회를 한다.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이 남자에게 했던 질문중에 하나는 "어느 도시에 가면 제일 마음이 편해요? 어디에 오면 집에 왔다. 하고 안도감이 들어요? 어디가 고향이라고 생각해요?" 였다. 이 남자는 졸업후 바로 취직해서 몇년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했던걸 제외하면, 줄곧 떠다니는 사람이었다. 그의 삶의 얘기를 듣다보니, 서울과 뉴욕과 파리와 베를린 중 어느 도시를 '집'이라고 불러도 이상할게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연극과 예술이라는 칼립소에 자발적으로 묶여있던 감금자였고, 그가 사랑한 예술은 그를 끊임없이 떠다니게 했다. 


약간 술을 마신 그는 오딧세우스의 이야기를 속삭였다.  그가 나즈막하게 읊는 시를 들으며 나는 내가 20년 동안 그를 기다리면서 숱한 구혼자들을 물리칠 핑계로 수의를 짰다 풀었다한 페넬로페라고 생각했다. 생전 처음 본 사람을 평생동안 기다려왔다는 기분이 들면 그건 내가 소울 메이트를 찾았다는 확실한 사인일까?  그 기분이 함께 들었다면 그건 정말 기적과도 같은 행운일까? 그는 오딧세우스의 이야기를 함으로서 그도 내가 느끼는 걸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운명을 헤치고 돌아온 그를 레몬트리를 잘라만든 침대에 들이지 못할 이유는 별로 없지 않을까? fast and furious. 


모든 떠도는 사람들은 집을 그리워하고 있다. 설령 스스로가 집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가야하는지 모르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오딧세우스와 빌보 배긴스를 비롯한 모든 떠도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은 마침내 모든 일을 겪고 돌아온 집이다. 


이날 이 시를 들은 후에, 나는 오딧세이아를 '우리'얘기라고 느끼게 되었다.  내 남자친구가 키클롭스의 외눈을 찌른 적이 있다거나 하기 때문은 당연히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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