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te Liebe Jan 05. 2021

<굿모닝 인디애나 - 더 프롬>

넷플릭스 대신/같이 봐드립니다.


저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팬이 아닙니다. 어느 곡을 떼서 어느 작품에 갖다 붙여도 큰 차이가 날것 같지 않은 고만고만한 뮤지컬 넘버들이 좀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편이구요. 뮤지컬식 발성, 뮤지컬식 농담, 뮤지컬식 안무 , 뮤지컬식 교훈이 과연 세상 (과 넷플릭스에) 더 필요한가.. 하는 의문을 항상 갖고 있는 편이죠. 하지만 아무리 뮤지컬을 혐오하는 냉혈한이라도 메릴 스트립과 제임스 코돈에 니콜 키드만까지 한 영화에 나와서 춤추고 노래하는 걸 외면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더 프롬>을 보았습니다.  


           프롬나잇의 불빛보다 반짝이는 스타들을 데리고..


엘리노어(레즈비언이자 롤모델이었던 퍼스트레이디!) 루즈벨트를 주인공으로 하는 뮤지컬에 출연 중인 두 주인공은 초연 후 이어진 혹평으로 어질어질 합니다. 주인공들은 좋았던 옛날을 그리워하는 올드보이들입니다. 이들에게 좋았던 시절이란 - 개인적으로는 토니상 2개를 받았던 명실상부한 스타였던 시절일테고, 사회적으로는 자신들이 가진 면들을 드러내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사회에 기여할 수 있었던 시절이겠죠. - 퀴어아이와 윌앤 그레이스의 시대라고 하면 될까요? 그때, 사회적 가시성을 획득하는 것 자체, 게이 커뮤니티의 구성원으로서 예쁜것을 사고, 예쁘게 입고, 알록달록한 취향의 뮤지컬을 응원하고, 집을 예쁘게 꾸미고, 사랑하는 것 자체로 진보적 의제를 점유할수 있던 때가 있었잖아요?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요. 동성혼 합법화 시대를 맞아 방황하는 진보적 게이 운동가처럼, 영화의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을만한 (옛날 방식의) 좋은 일을 하기위해서 인디애나까지 가야하는 상황입니다.

이제 세상은 더이상 이들을 살살 다뤄주지 않습니다. - 솔직히 아무리 그래도 뉴욕타임즈가 그렇게 쌍욕 수준의 리뷰를 쓸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작품은 시대에 적응못하는 인물들이 좋았던 시간을 다시 찾기 위해 떠나는 시간 여행물입니다. 물론 그 시간 여행은 진짜 시간여행이 아니라 뉴욕에서 인디애나로 가는 여행일 뿐이지만요.


시간여행물이라는건 사실 제가 지어낸 농담이긴 한데, 브로드웨이를 떠난 제작진들은 이상하게도, 인디애나의 에피소드들을 매우 전형적인 시간여행물의 감각으로 풀어냅니다. 그렇게 느끼게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작품이 시간 여행물의 원칙 - 시간 여행자들은 도착한 시공간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없음, 을 따르고 있기 때문일거에요. 인디애나에 도착한 스타들은 귀여운 고등학교 레즈비언 로맨스의 곁을 빙빙 떠돌면서,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대신에 자기 자신의 성장을 고민합니다. 메릴 스트립은 인디애나애서 만난 인물과 로맨스를 발전시킬 여지를 얻긴 했지만,  역시 간간히 보는 즐거움을 주는 조연 역할 이상을 하지는 못해요.

90년대식 설교, 90년대식 갈등, 90년대식 PTA. 제가 초반 20분 정도 매우 즐겁게 봤던 어떤 아이러니들 - 고전적인 뮤지컬 넘버를, 매우 고전적인 뮤지컬 영화 스타일로 연출하면서, 자기 비하적이고 냉소적인 농담을 섞어넣는 세련된 코미디는 뉴욕을 떠나는 순간 다 증발해버리고, 영화는 갑자기 뻔한 하이스쿨 뮤지컬 로맨스가 되버려요. 물론, 라이언 머피는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뮤지컬을 만드는 걸 잘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우리는 메릴 스트립이 나오는 영화 얘기를 하고 있쟈나요? 어떤 감독도 메릴스트립을 가지면 이거보단 잘해야한다구요.  

제가 메릴 스트립이나, 니콜 키드만이나 제임스 코돈 같은 대 스타들이 낭비된 것만큼이나 아깝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이 작품이 진보적 의제를 상실한 것처럼 보이는 게이 커뮤니티, 아니 좋았던 과거로 가고 싶어하는 우리 세대 전체의 혼란과 성장에 대한 흥미로운 성찰을 보여줄수도 있었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라이언 머피식 뮤지컬과 함께, 우중충한 느낌 없이요.  사실 앞의 20분 동안은 그런 얘기일거라는 기대에 살짝 흥분하기도 했지요. :-(


제작진이 그 가능성을 다 버리고 택한 길은 모든 문제들과 시간이 박제된 인디애나의 한 고등학교로 떠나는 뻔한 시간 여행물에서 뻔한 설교를 늘어놓는 복고풍 게이 학원물인데, 흐음  글리로는 모자랐나봐요? 약간 비아냥대고 싶어지는군요!

저는 불평이 많은 늙은이 영화팬으로서, 옛날 - 그러니까 영화감독들이 어떤 예술적 지향과 감동에 대한 목표를 좀 더 가졌던 시절,  감독들이 '제작 미팅'에 가서 넷플릭스의 구매부서로부터 한 20cm 두께쯤 되는 마켓 분석 보고서를 받아들고,  "감독님의 작품은 피치 퍼펙트와 글리와 키싱 부스를 좋아하는 62%의 시청자층을 타겟으로 하는 뮤지컬 영화로..."  같은 이야기를 듣지 않고 영화를 만들수 있던 시절 ( 아니, 솔직히 그런 보고서가 있는지는 제가 알수 없습니다만 ...) 을 '좋았던 때'로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감독들이, 다른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관객들에게 뭔가 생각할거리를 던지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던 시절이요.


정말 조금만 더 야심을 가져줄수는 없는 걸까요? 라이언 머피는 넷플릭스와 짝이 잘맞는 감독입이다. 많은 작품을 하고 있기도 하구요. 저는 라이언 머피가 뭔가 재미있는 것을 만들줄 아는 감독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최근의 심심하고 무난한 작품들에 대한 상당한 아쉬움이 있군요.


그리고, 하나만 더, 메릴 스트립 얘기를 안할 수는 없는데, 저는 사실 여사님의 굉장한 팬이고,  진짜 배트맨을 시켜도 잘할거라고 믿기는 하지만...  


메릴 스트립이 나오는 망한 영화의 공통적인 특징은 배우 자체가 작품에 몰입하는 에너지가 너무나 굉장해서 망한 연출의 망한 포인트를 너무 웅변적이고 과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자신없으면 쓰지마라는 느낌? 그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개인적으로는 그 점이 매우 보기에 즐겁긴 했지요 . 아하하  





.  .  

매거진의 이전글 이태리의 50가지 그림자... 365day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