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 아저씨가 되어가다

후쿠오카, 일본(8) - 22/08/2023, 저녁부터 밤

by JUNE HOLIDAY


본문과 소제목에 제가 다녀온 장소들의 구글맵 링크를 연결해 두었습니다. 조금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하시는 분들은 링크를 클릭해 주세요.


무시무시하게 뜨거운 차완무시, 까만 것은 표고버섯이다
<후지켄 스시>의 기본 세트, 왼쪽 위는 구긴 휴지가 아니라 생강이다


후지켄 스시


다시 <하카타역>으로 돌아온 우리는 저녁과 야식까지 두 끼를 남겨둔 상황이었다. '1일 7끼, 1일 1초밥'을 자신 있게 목표로 삼은 우리였지만 둘째 날 저녁까지 생선이라고는 게살 고로케 밖에 먹지 못했다. <쿠라스시> 같은 유명 회전초밥집은 대기가 확실시되는 상황. 우리는 <한큐백화점>의 지하 푸드코트에서 초밥집을 찾아보기로 했다.


백화점 지하에서 우리는 <후지켄 스시>라는 작은 초밥집을 찾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메뉴판을 스캔, 세트 메뉴가 눈에 띄었다. 우리는 세트 두 개와, 같이 나눠 먹을 6피스짜리 참치 초밥을 주문했다. 정확한 가격은 기억나지 않지만 백화점 식당인 것을 감안하면 적당했던 것 같다. 물론 맛도 훌륭한 편이었다. 특히 제대로 된 차완무시는 처음 먹어봤는데 놀라울 만큼 맛있었고, 또 놀라울 만큼 뜨거웠다. 그릇 바닥으로 갈수록 건더기도 꽤 많아 씹는 재미도 있었다.


우리나라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먹는 초밥은 퀄리티가 복불복인 경우가 많은데 이곳의 초밥은 일정 수준 이상은 충족하는 맛이었다.


나무로 된 티켓 자판기가 새삼 신기하다
커피인가 커피우유인가, 굉장히 달다


야오지 하카타 호텔의 '八百治の湯'


땀과 바닷물에 찌든 우리는 (물론 해수욕 후에 물로 샤워는 했지만) 숙소에 들어가기 전 피로를 풀기 위해 근처 온천을 찾기로 했다. 우리는 숙소 근처에서 <야오지 하카타 호텔>이라는 온천 호텔을 찾을 수 있었다. 찜질방은 없었지만 목욕과 온천을 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 가격 역시 저렴한 편이었다. 도착해 보니 한국의 50대 이상 단체 관광객이 많이 찾는 호텔인 것 같았다. 하긴 어른들에게는 온천 호텔만큼 좋은 선택지도 없을 것이다. 20대인 우리도 너무나 간절하게 온천을 찾았으니.


신발을 캐비닛에 넣은 다음 티켓 자판기에서 '대인(大人)' 티켓을 사고 카운터에 주면 목욕탕 키를 받는 시스템이었다. 수건은 몇 백 엔을 추가해 빌려야 했다. 굉장히 (내가 느끼기에) 클래식한 디자인의 티켓 자판기가 인상적이었는데, 전기가 통한다는 것이 신기할 만큼 예스럽게 생겼다. 마치 예전에 ‘무한도전’에서 커피 자판기에 들어가 커피를 타주듯 버튼을 누르면 안에서 사람이 표를 뽑아줄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탕 내부 사진은 당연히 찍을 수 없었지만 한국의 목욕탕과 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한국처럼 목욕탕 입구에 수건을 쌓아놓는 것이 아니라서 카운터에서 빌린 수건 두 개 중 작은 것을 목욕탕 안으로 들고 들어갔어야 했다. 작은 수건으로 입구에서 대충 물기를 닦은 다음, 캐비닛으로 가 큰 수건으로 마무리하는 듯했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맨몸으로 들어간 터라 목욕탕에서 나올 때 최대한 몸을 말린 후 캐비닛으로 후다닥 달려가 수건을 챙겨 왔다. 그러나 아무리 빨리 내 자리로 달려 가도 물이 흐를 수밖에 없었는데, 젖은 수건으로 내가 남긴 물기 흔적을 닦음으로써 최소한의 매너는 챙겼다.


미니 고구마 소주, 미니로 사길 잘했다
신라면과 가라아게와 달콤한 김치


세미 아저씨가 되어가다


목욕을 마친 우리는 어제에 이어 또 한 번 <써니마트>로 향했다. 어제 방문한 뒤에 빈약한 음식 종류에 실망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다행히 이곳에도 신라면김치는 있었다. 여행 온 지 겨우 이틀째 밤인데 우리는 얼큰한 음식을 먹고 싶어 했다. 평소에는 진라면(물론 매운맛)을 즐겨 먹지만 나는 고민도 하지 않은 채 라면 코너에서 신라면 두 봉지를 골라 들었다.


숙소에 와 뒷정리를 하고 우린 야식을 준비했다. 매콤한 신라면 국물을 들이켜니 뭔가 살 것 같았다. 이틀 동안 먹은 음식 모두 입맛에 맞았고 심지어 평소에 각종 향신료가 든 음식도 즐겨 먹는 나였지만, 외국에서 본능적으로 신라면을 찾는 내 모습이 순간 '아저씨'가 되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뭐, 한국 사람이 신라면 찾는다고 아저씨인가. 아니, 아저씨가 되어간다고 한들 어떠한가. 신라면 두 봉지 덕분에 우리는 속 편하게 이틀째 밤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십 대 중반의 두 청년이 뜨거운 탕에 몸을 풀고 신라면을 찾는다는 이유로 아저씨가 된다는 말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만난 우리가 점점 아저씨의 나이에 가까워져 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굳이 지금 이 시기를 명명하자면 '세미 아저씨가 되어가는 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시기를 거쳐 세미 아저씨가 되고 그다음 아저씨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세미 아저씨가 되기 전 '청년'으로서 친구와 가는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 순간을 더 즐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또한 그와 동시에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면 친구와 마지막 여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금 서글퍼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