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일본(7) - 22/08/2023, 뜨거운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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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로 배를 채운 우리는 버스를 타고 <후쿠오카 타워> 앞에 내렸다. 개인적으로 전망대를 좋아하진 않는데, 타워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보다 타워 자체를 바라보는 게 더 멋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뜻이 통한 우리는 후쿠오카 타워 앞에서 사진 몇 장을 남긴 후 바로 <모모치 해변>으로 향했다.
<모모치 해변>은 다양한 사람들이 찾는 곳이었다.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먹는 직장인들, 라이프가드, 산책하는 주민, 그리고 해수욕을 즐기는 관광객. 일본의 습도에 지친 우리는 이곳에서 물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사실 나는 숙소를 나설 때부터 마음을 먹고 있었다. 수건 한 장과 체육복 바지까지 챙긴 나는 든든한 마음으로 야외 캐비닛으로 향했다.
그런데 살짝 고민되는 것이 있었다. 상의를 챙기지 않은 것이다. 해변에 일본인 관광객의 절반 정도, 그리고 외국인(아마 아랍계가 많았던 것 같은데) 관광객은 모두가 상의를 벗고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한국인 관광객들도 보였지만 물에 들어간 사람은 없었고 근처에서 사진을 찍거나 발만 담그는 정도였다.
나도 한국에서 수영할 때는 거진 상의를 입고 했었다. 아주 어릴 때를 제외하고는 바닷가든 워터파크든 큰 티셔츠나 래시가드를 입고 수영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신기해하는 것 중 하나가 래시가드를 입고 수영하는 것(남자, 여자 할 것 없이)이라고 한 유튜브 영상이 내 반골기질을 자극했다.
"야, 우리 그냥 벗자."
나도 친구도 상의를 챙기지 않아 허리까지만 물에 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모처럼 해변 도시에 여행을 와서 어정쩡하게 하체만 담그는 것이 무슨 재미인가. 결국 우리는 상의까지 벗어 캐비닛에 넣었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싹 다 타버렸다.
흥분한 나머지 몸에는 썬크림을 바르지 않았고 숙소에 돌아와 보니 어깨와 가슴이 빨갛게 익어 있었다. 따가움을 참지 못한 나는 결국 마스크팩을 사 몸에 ‘척’ 하니 붙여야만 했다. 붉게 익은 내 몸이 우리가 즐겼던 자유의 흔적이었다. 의도치 않게 수영에 태닝까지 즐긴 우리는 <타코미아>와 <블루씰>에서 <모모치 해변>의 운치를 마저 만끽했다.
우리의 마지막 행선지는 <마리노아시티>였다. 간단히 쇼핑도 하고 더위도 피할 겸 다음 행선지를 <마리노아시티>로 정했는데 문제는 우리 체력이 바닥났다는 것이었다. 조금 더 편하게 이동하기 위해 택시를 잡기로 했다. 그때 친구가 말했다.
'카카오 한 번 불러볼까?'
카카오? 카택 말하는 거야? 그러고 보니 인천공항에서 ‘파리에서도 카카오택시를 부를 수 있다’는 광고를 보긴 했는데 과연 될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괜히 기다렸다고 실패하면 어쩌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카카오택시를 불렀다. 그런데 세상에, 택시가 잡혔다! 심지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불을 발견한 원시인마냥 '됐다! 됐다!'를 외친 우리는 한 손에 쥔 블루씰 아이스크림을 허겁지겁 먹어치우고 쓰레기통을 찾았다. 망설이지 않고 시도한 덕분에 우리는 뜨거운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얼마 후, 우리는 <마리노아시티>에 도착했다. 기사님이 주신 사탕을 입에 문 우리는 아울렛을 천천히 돌아보기 시작했다. 정처 없이 걷던 우리가 가장 먼저 발견한 곳은 다름 아닌 오락실 겸 빠칭코. 가족 단위 손님도 많이 보였는데, 참 낯선 풍경이었다.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가 기계 두 개를 쓰면서 메달(실제 동전이 아닌 동전처럼 생긴 게임용 코인)을 쓸어 모으거나 부모와 어린아이가 같이 사행성 게임(?)을 즐기는 모습은 한국에서는 쉽게 보지 못 한 광경이었다.
오락실 중앙에 있는 게임을 하고 싶었지만 일본어 설명을 이해할 수 없어 패스했다. 메달을 왕창 넣으면 기계 안에 쌓이게 되고, 핀볼에 나오는 것처럼 생긴 막대가 더 많은 메달을 쓸어 모으는 방식의 게임이었는데 동전을 어디서 메달로 바꿀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인형 뽑기나 몇 번 해보기로 하고 동전교환기를 찾았다. 그때 내 눈길을 끈 것은 바로 '빨간 다라이'였다. 주변을 보니 짤랑짤랑 소리를 내며 달리는 아이들이 여럿 보였다. 알고 보니 동전이나 메달이 너무 많아 손으로 들고 다닐 수 없을 때 그것들을 넣어 다니는 용도였다. 한국 오락실에서는 많이 써봤자 5천 원 정도 바꿔서 쓰는데 여기서는 동전통까지 들고 다니는 걸 보고 일본이 오락에 진심이라는 걸 느꼈다.
우리는 가볍게 2천 엔만 바꿔 보기로 했다. 나는 인형이나 피규어를 뽑을 심산으로 이 기계 저 기계를 옮겨 다녔지만 결과는 탕진이었다. 아마 인종차별을 당했어도 이만큼 배신감과 실망감을 느끼진 않았을 것이다. 2천 엔이면 한국돈으로 거의 2만 원. 한국에서 2만 원을 오락실에 쓴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는데... 용감한 바보가 된 우리는 동전을 탕진하고 밖에 나와 발견한 가챠샵에서 가챠나 뽑기로 했다. 적어도 가챠는 꽝은 없으니까.
웃통을 벗고 바다 수영을 하는 일, 성공할지 못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카카오 택시를 부르는 일, 오락실 뽑기에서 2만 원을 쓰는 일은 하나 같이 한국에서는 하지 못한 일이었다. 어쩌면 굳이 하지 않았던 일들이기도 하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 래시가드를 입었을 것이고, 굳이 뜨거운 길 위에서 시간 낭비가 될 수 있는 실험을 하지 않았을 것이며, 실패가 뻔히 보이는 게임을 하는 바보짓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용감한 바보가 되는 것은 여행자의 특권이다. 일상에서는 하지 않을 크고 작은 무모한 짓을 감행하는 것. 여행 둘째 날 오후는 그런 특권을 맘껏 누린 바보 같지만 자유로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