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이라는 오아시스

후쿠오카&나가사키, 일본(9) - 23/08/2023, 오전부터 점심까지

by JUNE HOLIDAY


본문과 소제목에 제가 다녀온 장소들의 구글맵 링크를 연결해 두었습니다. 조금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하시는 분들은 링크를 클릭해 주세요.


나가사키로 떠나는 09:46 큐슈호


한국인들은 후쿠오카 여행을 떠날 때 3박 4일 일정을 가장 많이 선호하는 것 같다. 후쿠오카시만 둘러보는 것이 아쉬운 사람들은 유후인이나 벳푸 같은 온천 도시를 찾기도 한다. 요즘은 기타큐슈와 그 바로 위인 시모노세키도 인기 여행지가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기타큐슈는 우리의 여행지 후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타큐슈의 해저 터널보다는 나가사키의 짬뽕이 우리에게 더 자극적이었다. 여행 3일째, 우리는 나가사키에 도착했다.


<나가사키역> 마침 공사 중이라 길 찾기가 더 어려웠다
이 날 비 예보가 있었지만 그 어느 날보다 건조하고 뜨거웠다


나가사키로 떠나기 전 날, 우리는 나가사키에 비가 온다는 예보를 보고 잘 됐다고 생각했다. 이틀 동안 더위에 지친 우리는 비가 오면 조금 습하더라도 살만 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가사키의 날씨는 5일 동안의 여행 중에 가장 뜨겁고 건조한 날씨였다.


나가사키의 명물 ‘트램’
나가사키의 버스는 번호가 없다


날씨뿐만 아니라 이곳의 대중교통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 나가사키의 명물은 짬뽕, 카스테라 외에도 '트램'이 있다. 버스보다 트램을 타는 것이 주요 관광지를 찾는데 용이하다는 블로그를 보고 우리는 나가사키역에 내리자마자 바로 트램 패스권을 샀다.


하지만 우리가 찾는 음식점은 트램으로 찾아가기에 무리가 있었고 결국 버스를 타기로 결정했다. 뜨거운 날씨, 낯설고 새로운 도시에서 우리는 제대로 된 버스를 타야 했지만 고비가 찾아왔다. 버스에 번호가 없는 것이었다. 번호 대신 大, 中, 山 등으로 시작하는 버스 이름이 있었다. (이 역시 사실 정확하지 않다) 우리는 구글맵에서 겨우 우리가 타야 할 버스를 찾았지만 정류장 시간표엔 그런 버스는 없었다.


결국 우리는 버스가 곧 도착한다는 구글맵의 말만 믿고 지도에 나온 것과 다른 이름의 버스에 몸을 실었다. 긴장된 마음으로 구글맵의 현재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나가사키 시내의 도로를 달리던 중, 우리 위치를 표시하는 화살표가 경로를 이탈했고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짬뽕집까지 걸어가야 했다.


나가사키 짬뽕을 찾아서 떠나는 길
우연히 발견한 낡은 집, <미라쿠엔>은 조금 더 가야 한다
오후 2시 10분 전, 곧이어 고시엔 결승전이 TV에서 방송되었다


미라쿠엔


<미라쿠엔>은 전날 우리가 봐둔 짬뽕집 두 군데 중 하나였다. <원폭자료관>을 가게 되면 <順天(주텐)>이라는 짬뽕집을 가기로 했고 <오우라천주당> 근처만 보게 되면 <미라쿠엔>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두 군데 모두 기대되는 집이었다. 두 곳 모두 친구가 찾아냈는데, 개인적으로 친구의 의외의 맛집 찾기 실력에 놀랐다.


우리는 더운 날씨 탓에 <원폭자료관>은 찾지 않기로 했고 자연스럽게 <미라쿠엔>이 나가사키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잘못된 버스에서 내려 그 목적지를 향해 걷고 또 걸었다.


결국 이걸 먹으려고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0엔짜리 오니기리


20분 여를 걸은 끝에 우리는 미라쿠엔에 도착했다. 메뉴는 오직 셋(아마도). 짬뽕, 볶음짬뽕, 그리고 오니기리. 자리에 앉은 나는 얼음물 반 잔을 입에 털어 넣고 짬뽕 두 그릇을 주문했다.


<미라쿠엔>의 짬뽕을 먹음으로써 우리의 나가사키 여행은 ‘성공’으로 결론지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만큼 이곳의 짬뽕맛은 훌륭했다. 국물은 깊고 진했으며 양배추 건더기 역시 적당하게 익어 씹는 맛과 단맛 모두 좋았다. 아마 내가 후쿠오카 여행기를 쓰면서 이만큼 맛 표현을 구체적으로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만큼 나가사키의 태양을 뚫고 맛본 짬뽕 맛은 감동적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면발이 조금 더 쫄깃했다면 금상첨화였을 것 같긴 하지만 국물과 건더기 맛이 약간 부족할 면발을 채워주고도 남았다.




<오우라 천주당>, 아쉽게도 엄마를 위한 묵주는 살 수 없었다


연로하신 사장님이 반겨주신 <킷사나무산테하치반칸>



喫茶南山手八番館(킷사 나무산테 하치반칸)


만족스러운 점심 식사를 마친 우리는 <오우라 천주당>으로 향했다. 식당 사장님께 여쭤보니 충분히 걸어서 갈 수 있을 만한 거리였다. 짬뽕이라는 오아시스에서 충분히 목을 축인 우리는 호기롭게 길을 떠났다. 그리고 정확히 10분 만에 우리는 나가사키의 태양에 한 번 더 항복했다.


결국 더위 탓에 우리는 오우라천주당과 글로버가든 모두 제대로 보지 못했다. 오우라 천주당에선 무려 거금 천 엔을 입장료로 지불했지만 성당 안에 에어컨이 없어 오래 있을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이었는데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글로버 가든> 역시 입장료를 내지 않고 주변 풍경만 카메라에 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글로버 가든> 입구에서 내려온 우리는 전날 내가 찾아 둔 카페로 향했다. 카페 이름은 <喫茶南山手八番館(킷사나무산테하치반칸)>인데 구글맵에도 가게 이름이 한자로만 나와 있어 발음이 정확하진 않을 수도 있다.


노부부가 운영한다고 되어 있던 카페였는데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할아버지 사장님 한 분만 계셨다. 젊은 이방인인 우리를 굉장히 친절하고 예의를 갖춰 맞아주셨다.


우리가 이 카페를 방문한 목적은 두 가지. 첫 째는 땀을 식히기 위함이었고 둘 째는 트램, 짬뽕에 이어 나가사키의 마지막 명물 카스테라를 맛보기 위함이었다. 나가사키 일정이 하루만 늦었어도 나는 나가사키 카스테라를 한국에 사들고 갈까 말까를 조금 더 진지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나 방부제 처리가 거의 되지 않은 ‘진짜’ 카스테라를 상온에서 보관할 수 있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고, 아쉬운 대로 맛이라도 보고 돌아가기로 했다.


에어컨은 주변 풍경을 두 배는 더 멋있게 만들어준다
일본의 커피는 드립커피가 많은 것 같다. 기름기가 적고 깔끔한 맛이었다.


우린 드립커피 두 잔과 아이스크림을 넣은 카스테라를 주문했다. 카스테라는 특별할 것은 없었지만 우리의 기대를 충족할 만큼의 맛은 되었다. 아,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겉 부분에 별사탕 같이 생긴 설탕 덩어리들이 박혀있다는 것이다. 빵과 설탕 알갱이의 단맛으로도 충분해서 커피와 같이 나온 시럽은 필요 없었다.


이렇게 덥고, 맛있고, 아쉬웠지만 즐거웠던 우리의 나가사키 일정이 끝났다. 아마 늦가을에 이곳을 찾았다면 길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몰랐을 것이다. 그만큼 나가사키의 풍경은 대도시인 후쿠오카와 전혀 다른 매력을 자랑했다. 그래도 여름에 이곳을 찾았다는 것 외에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버스를 타고 나가사키역에서 내린 우리는 다시 한번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하카타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