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일본(11) - 24/08/2023, 하루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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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여행에서 쇼핑을 즐기는 스타일이 아니다. 우선 귀찮음이 그 첫 번째 이유다. 여유를 즐기기 위해 일부터 유명 관광지도 빼는 마당에 여행에서까지 쇼핑몰과 백화점을 다니며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싫었다. 또한 '한국에서 이 브랜드가 얼마인데 외국에서는 몇 프로 싸더라'라는 식으로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물건들을 왕창 사 오는 마인드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마 '촌스럽다'라고 느껴서 그랬던 것 같은데 사실 돌이켜 보면 이런 내 생각이 더 촌스러웠다. 이런 마음이 아예 사라졌다고 할 순 없지만 지금은 많이 줄었다. 이젠 아무 느낌이 없다.
어쨌든 이런 내가 이번 여행에서는 위의 사진처럼 부단한 노력을 했다. '이만큼이나 선물을 사 왔다'를 생색내고 싶은 것은 아니다. 실제로 빈 캐리어를 들고 여행을 가는 중국인 관광객도 많다고 하던데 나는 그런 분들에 비하면 소박한 편이다. 다만 여행에서 쇼핑백 하나도 제대로 들어본 적 없던 내가 여행 중 하루를 온전히 쇼핑에 썼다는 사실은 조금 뿌듯했다.
나는 왜 갑자기 여행 스타일을 바꾸게 되었을까. 사실 느긋한 여행 스타일 자체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다만 코로나 이후 첫 해외여행을 간다는 사실이 왠지 미안하기도 했던 터라 선물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에 앞서 좋은 곳에 오니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것들이 한두 개만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가족'을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뭐 엄청난 효자가 됐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빈손으로 놀러 가 혼자 실컷 놀고 빈손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혼자 생각해 봤을 때 '좀 그렇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유가 어찌 됐건 이번에도 뜻이 통한 두 친구는 하카타에서 텐진으로 향해 여행 4일 차를 쇼핑으로 불태우기로 했다. 원래 무엇인가 타려면 '탈 물질'과 '산소'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쇼핑을 불태우기 위해서는 탈 물질과 산소가 아니라 '지갑'과 '발바닥'이 필요하다. 그리고 결과부터 먼저 말하자면 지갑에는 약한 불이 붙었다면 내 발바닥은 전소했다.
텐진의 한 버스 정류장에서 내린 우리는 전날 찾았던 <마츠야>에서 아침 식사를 한 후 <텐진쇼퍼즈 후쿠오카>부터 들르기로 했다. 마츠야는 정식을 파는 일본의 프랜차이즈 가게였다. '장인정신', '전통' 등으로 유명한 일본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프랜차이즈 가게들도 많다. 마치 둘째 날 방문했던 <마루게따>처럼 프랜차이즈인 줄 모르고 방문한 식당도 있었을지 모른다. 마츠야는 찾을 때부터 프랜차이즈 식당이란 것을 알고 방문한 곳이었다.
일본어가 가득한 키오스크에서 우린 이제 너무 당연하게도 '한국어' 버튼을 찾아 주문을 완료할 수 있었다. 친구는 돼지갈비 정식을 시켰지만 나는 가볍고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을 먹고 싶어 연어구이 정식을 선택했다. 뭔가 일본 영상 콘텐츠에서 아침밥을 먹는 장면에서 가장 많이 본 듯한 비주얼의 한 상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나라에서 몇 년 전부터 '일본식 가정식' 가게들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OO정'과 같은 이름의 식당들이 몇 개 생겨났는데, 아이러니했던 것은 '가정식'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은 양과 가격이었다. 특히 만 원 대 중반을 쉽게 육박하는 가격은 집밥치고는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그런 측면에서 <마츠야>는 조금 더 가정식에 가까웠다. 양이 푸짐하진 않았지만 든든히 먹을 정도는 되었으며 음식 가격도 저렴한 편이었다. 특히 연어구이 정식 사이에 껴있는 돼지불고기는 연어와 번갈아 먹으면 밥 양이 딱 맞을 정도여서 식사의 만족감을 높여줬다. 그렇게 든든한 아침을 먹은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다.
<텐진쇼퍼즈 후쿠오카>, <로프트>, <이와타야 백화점>, <파르코 백화점> 등을 배회한 우리는 꼼데가르송 쇼핑백을 하나씩 끼고 파르코 백화점 지하의 유명 함박스테이크 가게를 찾았다. 익히지 않은 함박스테이크를 철판에 직접 구워가며 먹는 곳이었는데 기다리는 사람의 수가 엄청났다. 회전율은 빨라 보였지만 가게가 좁고 기다리는 줄이 워낙 길어 우리는 쉽게 포기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약한 멘붕'의 상태로 식당가를 배회하던 우리는 커피나 한 잔 마시면서 다른 식당을 찾아볼 생각으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Café Sun Fukuya>라는 카페를 찾았다.
커피만 마시고 일어날 생각으로 들어간 카페였지만 간단한 식사도 파는 곳이었다. 일본은 이렇게 카페 메뉴뿐만 아니라 음식도 같이 파는 카페가 많은 듯했다. 음식 메뉴는 설렁설렁 보며 넘어가던 우리에게 크고 먹음직스러운 함박스테이크 사진이 눈에 띄었다. 함박 스테이크를 먹지 못해 찾은 카페에서 운이 좋게 함박 스테이크를 찾은 우리는 점심식사까지 해결하기로 했다. 야채수프, 샐러드, 밥과 함박스테이크, 그리고 커피 한 잔까지 포함된 세트 메뉴가 우리나라 돈으로 만원이 조금 넘는 곳이었다. 물론 맛도 훌륭했다.
밥을 먹은 우리는 <텐진 지하상가> 를 구경하고 대망의 <돈키호테> 로 향했다. 그러나 우리 발바닥은 이미 한계를 맞이하고 있었다. 체력은 그리 모자라지 않았지만 발바닥이 너무 아팠고 우리는 결국 텐진의 한 마사지샵에 들어가 발마사지를 받은 뒤에야 <돈키호테>로 가 쇼핑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마지막 날 밤 저녁은 회포를 풀기로 한 날이었다. 회포라고 해봤자 둘이서 생맥주 네 잔을 넘지 못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마지막 날 밤을 기념하기 위해 숙소 근처 <Daichan>이라는 이자카야를 찾았다. 이자카야 간판을 찾고 우리는 나름의 기대에 차있었다. 흡연이 가능한 이자카야의 바테이블에 앉아 쌉쌀한 담배연기를 맞으며 술과 안주를 즐기는 것. 비흡연자인 우리였지만 담배냄새에 큰 거부감이 없었기에 흡연 식당 역시 나름의 로망이었다.
그러나 친절한 남자 종업원은 우리를 안쪽 방으로 안내했다. 이자카야에 방이 있다니. 바에 자리도 몇 개 남아있었는데, 아마 외국인 관광객은 담배 연기에 거부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친절함은 감사했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푸짐하고 맛있는 음식은 이런 아쉬움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남들은 가볍게 한 잔 하는 자리였지만 우리는 식사를 겸해 온 것이었기 때문에 찌개까지 시키며 제대로 회포를 풀었다.
마지막 식사까지 끝내고 알딸딸(맥주 두 잔)한 채로 돌아온 숙소에서 우리는 여느 날 밤처럼 간단한 간식과 음악과 함께 밤을 보냈다. 낮에 받은 발마사지 효과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고 다시금 발바닥이 아파왔다. <돈키호테>에서 휴족시간을 사 오지 않은 것을 약간 후회하게 되는 시점이었다.
어느덧 마지막 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가 저녁 시간인 터라 아직까지 여행은 꽤 남아있었지만 나흘 새 정이 든 숙소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건 오늘 밤이 마지막이었다.
사실 글 처음부터 지갑과 발바닥을 불태웠다고 했지만 지갑은 그렇게 불타지 않았다. 발바닥은 실제로 얼얼했지만 따뜻한 물에 씻고 나니 살만해졌다. 평소와 다른 스타일의 여행을 즐긴 오늘이었지만 피곤하다기보다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내 선물을 받고 좋아할 얼굴과 혹시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교차하면서 여행 첫날과는 다른 종류의 설렘이 가슴속에 자리 잡았다. 이제 내일이면 후쿠오카를 떠나지만 왠지 아쉬움은 남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아닌 소중한 사람이 머리에 가득한 여행도 나름 즐거운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