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 없는 마지막

후쿠오카, 일본(完) - 25/08/2023

by JUNE HOLIDAY


본문과 소제목에 제가 다녀온 장소들의 구글맵 링크를 연결해 두었습니다. 조금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하시는 분들은 링크를 클릭해 주세요.


<완간시장> 정류장에서 내려서


완간시장


어느새 여행 마지막 날 아침. 정들었던 숙소를 뒤로 하고 캐리어와 쇼핑 가방을 들고 길을 나섰다. 여전히 날씨는 덥고 습했다. 오늘 일정의 첫 코스이자 메인 코스는 <완간시장>. '100엔' 초밥으로 유명한 완간시장에서 아침 겸 점심을 든든히 먹기로 했다.


하카타에서 버스로 30분도 걸리지 않은 하카타 부두 정류장에서 내리면 시내와 달리 야자수가 곳곳에 보이며 약간의 비릿한 바다 냄새가 나는 항구에 도착한다. 더위에 어느 정도 적응한 나는 놀랍게도 구름 낀 하늘이 조금 아쉬웠다. 맑은 날 하카타 부두는 더 이국적이고 찬란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싼 가격에 비하면 굉장히 훌륭한 퀄리티의 스시였다
그래서 한 판 더


하카타 토요이치


완간시장에서 초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은 <하카타 토요이치>라는 곳이었다. 시장은 10시 30분에 문을 열지만 이곳은 11시에 문을 열어 사람들이 문 밖에 줄을 서있었다. 다행히 11시가 되기 전에 시원한 내부에서 줄을 설 수 있었고 이름을 쓰고 난 후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세금 포함 160엔 정도의 가격에 초밥 한 피스를 먹을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회전 초밥집이나 적당한 초밥집에 가서 사진과 같은 양을 먹었다면 아마 가격이 두 배 내지는 못해도 1.5배 정도는 나왔을 것이다. 한국인 관광객도 많았는데 거의 커플이거나 가족 단위였다. 우리가 놀란 것은 다들 한 접시씩만 먹고 자리를 일어났다는 것이다. 옆 테이블 손님이 식사를 끝내고 다음 손님이 스시를 한창 먹을 때쯤이 되어서야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미하노유 온천>
인기 있는 음료수인 듯했다. 이름 그대로 제대로 쉴 수 있는 맛이었다.


나미하노유 온천


원래 후쿠오카에 오기 전 우리의 마지막 날 계획은 '완간시장-사케 양조장-캐널시티 하카타'였다. 마지막 날 출국이 늦어 혹시나 부족하게 먹었을 초밥도 맘껏 먹고 양조장과 캐널시티에서 선물도 살 계획이었다.


그러나 후쿠오카의 여름은 자꾸만 우리가 쉬엄쉬엄 다니도록 유혹했다. 결국 전 날 밤 우리는 완간시장 근처에서 <나미하노유 온천>이라는 온천을 발견했고, 마지막 날 아침 초밥을 배물리 먹은 뒤 바로 몸을 녹이러 온천으로 향했다.


<나미하노유 온천>은 우리가 방문했던 <야오지 호텔>의 온천보다 규모가 큰 곳이었다. 야오지는 호텔에 딸려 있는 대중목욕탕이었다면 나미하노유는 호텔 없이 온천만 있는 곳이었다. 가격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규모는 훨씬 크고 노천탕과 찜질방도 있었다. 일본에서는(혹은 이 온천에서만) 찜질방을 '암반욕'이라고 부르는 듯했다.


'더운 여름에 무슨 노천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나도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뜨거운 탕에서 몸을 녹이고 야외로 나가면 자그맣게 살랑이는 여름 바닷바람도 굉장히 시원하게 느껴진다. 내 친구는 선베드에 누워 짧은 낮잠까지 청했다.


찜질방은 한국의 찜질방과 비슷했다. 불가마, 수면공간, PC방, 식당 등이 있었고 팔찌로 계산하는 것도 똑같았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만화카페처럼 꾸며 놓은 휴식공간이 있었다는 점이다. 마치 '놀숲'처럼 사람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는 프라이빗한 공간도 있었고 부둣가를 바라보며 앉아 쉴 수 있는 바 테이블도 있었다.


나는 휴게실에서 음료수와 낮잠을, 친구는 마사지를 즐긴 후 다시 만났다. 먹고 마시고 쉬다 보니 어느덧 맡겨놨던 짐을 챙기러 가야 했다. 집에 갈 시간이 된 것이다.


오후 6시 31도. 이제 이 정도는 버틸만한 날씨가 되었다.


아쉬움 없는 마지막


성인이 되어서 떠난 여행들은 항상 마지막에 아쉬움이 남았다. '돈만 더 있었으면 하루 더 있었을 텐데', '날씨만 좋았으면 더 많은 곳을 보았을 텐데' 하는 등의 아쉬움말이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선 큰 아쉬움이 남지 않았다. 32도는 우습게 넘기던 후쿠오카의 날씨가 우리가 가는 날이 되어서야 선선해지기 시작했다는 것 빼고는.


아쉬움이 남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월요일 아침 일찍 출발해 금요일 저녁 8시가 다 되어 돌아가는 꽉 찬 일정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1일 5끼 달성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녔기 때문이었을까? 꽉 찬 일정은 기존의 내 스타일과는 달리 바쁜 여행을 의미했으며, 그렇게 열심히 먹었음에도 미즈타키, 타코야키, 오코노미야키 등은 먹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번 여행은 왜 아쉬움 없이 꽉 찬 것처럼 느껴졌을까.


나는 여행 그 자체를 즐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번 여행이 끝나면 나와 내 친구 모두 청년 시절의 중요한 기로에 놓인다. 둘 다 대학교를 마무리할 시점이 다가오고 사회인으로서 나아갈 길을 선택해야 한다. 서로 길게 말은 안 했지만 친구도 나처럼 인턴이든 취업이든 시작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받고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는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여행하는 동안 이런 걱정은 내 머릿속에서 잠시 잊혔다. 친구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의 경우엔 그러했다. 다양한 것을 즐기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여행을 떠나기 전 했던 걱정들은 연기처럼 실체 없는 것들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돈을 벌어야 하는데'라는 막연한 걱정의 근원은 사실 존재하지 않았다. 근원 없는 걱정을 해소하려 해 봤자 헛수고일 뿐이었다. 그러나 여행을 떠나고 여행을 즐기면서 나는 여행에 몰입할 수 있었다. 무엇인가에 몰입하는 경험은 잡생각을 없애주고 보다 본질적인 것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이번 여행은 나에게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 줬다. 그리고 여행이 끝나고 며칠이 지난 지금, 실체 없는 걱정은 많이 사라졌다. 몰입의 경험은 여행이 끝난 후에도 나로 하여금 하찮은 걱정들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해줬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 내 두 손은 꽉 찼지만 머리는 어느 때보다 가벼워져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이번 여행에 아쉬움이 남지 않았던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