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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딧쓴 Jul 25. 2023

비효율이 매력적이었던 카페

효율에 대한 강박과 여백에 대해

저는 효율성에 대한 욕심이 많습니다. 거의 강박인 수준이라고 생각해요. 비슷한 욕심이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저가를 찾으려고 한 시간을 허비해 놓고 단지 몇 백 원을 아꼈을 뿐일 때의 허탈함 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사실 몇 백 원을 아끼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이 정도 가격이라면 이 정도 만족감'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으니까요.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일을 빨리 끝내는 것'이 목표라면, 그 즉시 시작하는 것이 가장 빨리 끝날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내고 싶다.' 즉, 최적화된 프로세스를 거치고 싶다는 욕심이 앞서는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좋은 방법을 찾는 시간이 실제 일을 하는 시간보다 길어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물론 반복작업이라면 시간이 갈수록 아끼는 시간이 늘어날 테니 결과적으로는 방법을 고민하길 잘한 것이 맞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괜히 힘을 뺀 건가 하는 찜찜한 느낌까지 해소되지는 않더라고요.



여백이 주는 넉넉함


시간 역시 효율적으로 쓰고 싶은 조바심 때문에 여가시간을 편히 즐기지 못하기도 합니다. 사실 열심히 살고 싶은 강박 뒤에는 후회하기 싫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열심히 살았든, 여유롭게 살았든, 후회하는 것은 당시의 태도에 달려있는 것이지 어떻게 살았는지에 따라 달라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멈출 수가 없어요. 그래서 강박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일종의 습관 같은 것이라서요.


저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주변에 보면 강박적으로 열심히 살려는 사람이 꽤 있지요. 제 주변이라 비슷한 사람이 모여들어서 그런 걸 지도 모릅니다. 저도 그렇지만, 효율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살짝 긴장되어 있습니다. 빈 공간이 보이면 여유시간이나 넉넉함으로 느껴지지 않고, 비효율로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제대로 쉬는 법을 모릅니다. '이러고 있어도 되나' 불안하거든요.


이럴 땐 빈 공간을 공백이 아닌 여백이라고 생각해 보는 것도 조금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공백이 '비어버린' 공간이라면, 여백은 필요에 의해 '비워 둔' 공간이거든요. 영업 업무상 말을 많이 해야 하는 대표님은 주말에 혼자 캠핑을 가서 주말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진다고 하십니다. 의도적으로 여백의 시간을 갖는 것이지요.



여백이 많은 카페


얼마 전, 저도 여백의 시간이 필요해 근교의 카페에 가기로 했습니다. 남양주에 있는 라온숨이라는 카페였는데요. 사진을 보니 푸릇푸릇하고 개방감이 좋아 보였거든요. 실제로도 여백이 아주 많은 카페였습니다.


5층의 캠핑존. 마음이 편안해지는 공간이었습니다.


5층에 가니 사진처럼 캠핑존을 운영하더라고요. 실제로 캠핑장비를 가져오는 캠핑존은 아니고, 캠핑장처럼 꾸며놓은 공간입니다. 통창 앞으로 속이 뻥 뚫리는 풍경과 잔디가 주는 쉬는 느낌도 좋았지만, 제가 여백이 많다고 느낀 것은 조금 다른 지점이었습니다. 사진에서 테이블과 테이블의 거리가 보이시나요? 아마 일반적인 카페 테이블을 놓았으면 못해도 4인석 3-4개는 둘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저렇게 배치를 해두면 두 팀이 앉는 게 고작이지요.


물론 모든 층이 캠핑장 컨셉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좌석 간 거리가 엄청 멀었어요. 서울카페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테이블 밀도였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테이블 간 거리가 먼 공간을 좋아합니다. 다른 팀의 대화소리에 방해받을 일도 없고, 옆 자리에 들릴까 대화를 조심하지 않아도 괜찮거든요. 전체 공간에 사람 수가 적어지니 상대적으로 쾌적하기도 합니다. 웅성웅성하는 울림도 덜하고요. 사장님이 테이블 회전율보다 손님 한 명 한 명의 경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대접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심지어 3층은 절반이 전시공간, 4층은 한 층 전체가 전시공간이었습니다. 카페에서 판매하는 굿즈 전시가 아니라, 정말 작가님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요. 마치 갤러리처럼, 그림이 걸려있고 안내책자도 있었습니다. 조용히 감상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잘 조성되어 있었고요.


정말 갤러리 같죠? | 오리정님 블로그(https://ori-zeong.tistory.com/91)



비효율이 주는 느낌


엄청난 비효율이지요. 캠핑존이야 그렇다 쳐도, 한 층을 다 쓰고 있는 전시 공간에 테이블을 깔면 공간을 훨씬 효율적으로 쓸 수 있습니다. 최대 수용 인원도 늘어나고, 회전율이 빨라질 수도 있고요. 비어있는 공간을 공백으로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여백으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나중에는 실제로는 더 효율적인 선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좌석이 있는 층에는 언제나 사람이 넘치기 때문에, 작가님들에게 입점료를 받고 작품을 전시해 주는 방식으로 수익을 낼 수 있으니까요. 혹은 작품의 판매금액에서 일정 부분을 수수료로 받는 방법도 있습니다. 입점료나 판매 수수료를 테이블 객단가에 비례해서 책정한다면 매출 상에서는 생각만큼 크게 손해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히려 이득일지도 모르고요. 물론 어디까지나 저 혼자만의 상상입니다.


물론 사장님이 단지 매출 때문에 저런 선택을 하시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일단 테이블 수가 줄어든 만큼 자리가 희귀해졌거든요. 줄을 서는 카페가 된 것이지요. 여유로운 카페에 앉아 가지는 휴식경험에 희소성이 생겼습니다. 이미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좀 더 쾌적하게, 덜 시끄러운 공간을 이용할 수도 있고요. 잠시 일어나 전시관람까지 할 수 있겠네요. 캠핑존 역시 비효율의 끝판왕이지만, 한 번 공간을 경험한 사람들은 다른 카페들에서는 하기 힘든 경험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럼 그 다음번에, 설령 캠핑존에 자리 잡을 수 없더라도 그 카페를 재방문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을까요?


비효율도 분명 도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라온숨처럼 남는 공간의 비효율을 공백이 아닌 여백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요. 여백이 아닌 비효율이라면, 예전 글에서 썼던 백화점 사례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동선을 길게 만들어서 판매를 촉진하는 방식이요. 하지만 백화점의 비효율은 매출을 위한 것일 뿐, 소비자가 좋은 경험을 하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효율이 생각보다 효율적이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느슨하게 접근하는 것이 긴장을 푸는데 도움이 될 때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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