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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획자 에딧쓴 Jul 21. 2023

장사 천재가 가격을 정하는 법

정말로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는 질문 전략

챙겨보는 드라마나 예능은 없지만, 적막함을 없애줄 백색소음이 필요할 땐 TV를 작은 볼륨으로 틀어놓습니다. 그런 용도로 TV를 사용하다 보면 너무 소란스러운 액션이나 리액션이 과한 예능은 피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로 리모컨이 멈추는 프로그램은 유퀴즈 같이 잔잔한 대화가 있는 예능이나, 잔잔한 영화, 이미 봤던 드라마 등이 되는데요. 골목식당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유퀴즈만큼 잔잔하고 소소하지는 않지만, 사장님들이 겪는 어려움과 솔루션 과정에서 배울 점이 많았거든요. 특히 백종원 님의 관점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좋았습니다.


골목식당은 음식장사 솔루션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사업 컨설팅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가장 핵심이 되는 요리에 대한 조언뿐만 아니라, 시스템을 어떻게 갖출 것인지, 손님들에게 어떤 경험을 만들어 줄 것인지에 대한 관점이 늘 등장했거든요. 요식업 창업 계획은 아직 없지만, 배울 수 있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골목식당이 막을 내린 뒤, 최근에는 <장사천재 백사장>이라는 방송을 하더라고요. 백종원 님이 해외에서 창업부터 운영까지, 밥장사를 시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장사천재의 문제해결 과정


이 방송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백종원 님의 문제해결 과정을 직접 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어요. 골목식당은 다른 사람이 겪고 있는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는 과정이었다면, 장사천재 백사장은 아무 기반도 없는 해외에서 장사를 시작하면서 문제가 발생하는 과정과 그 해결과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천하의 백종원 님도 아무 문제 없이 장사를 궤도에 올리지는 못하더라고요. 현지 재료로 한식의 맛을 찾는 것부터, 손님 응대, 주방 체계, 직원 관리까지 매 회차가 문제 발생과 해결의 연속이었습니다.


그중 특히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있었는데요. 모로코 야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백종원팀은 모종의 이유로 시장에서 장사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아마도 텃세였던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이 급하게 새로운 장소를 섭외하는데요. 시장도 관광지도 아닌, 정말 현지인들만 있는 곳에서 새로 장사를 시작하게 됩니다. 문제는 가격설정이었습니다. 백종원 님의 불고기버거는 현지에서 찾아볼 수 없는 메뉴였기 때문에 기준을 삼을 수 있는 가격이 없었거든요. 그렇다고 야시장에서 팔던 가격 그대로 팔기에는 인근 가게들에 비해 너무 비싼 가격이었습니다.


백종원 팀은 메뉴의 재료 구성에서 고기 비중을 낮추어 가격을 하향조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현지인들에게 적정 가격을 물어보기로 하는데요. 여기서 백종원 님이 손님을 응대하는 뱀뱀 님에게 신신당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얼마면 좋겠냐고 물어보지 말고, 가격을 맞춰보시라고 해.
이미 우리 가격은 정해져 있는데, 맞추면 무료로 드리겠다고.


처음으로 메뉴를 먹어보러 온 세 명에게는 원래 음식을 무료로 제공하고 평가를 부탁할 예정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질문은 '메뉴를 무료로 시식해 보시고, 적정 가격에 대한 의견을 부탁해요'일 겁니다. '얼마면 사 먹을래?'라고 물어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질문을 바꿈으로써, 백종원 팀은 두 가지 이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필요한 '바로 그' 데이터


심리학에서 타당도라고 부르는 개념이 있는데요, '측정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측정했는지'를 나타내는 수치입니다. 예를 들어 김만수 씨의 우울감을 측정한다고 가정해 볼게요. 방법은 다양할 겁니다. 우선, '지난 일주일간 얼마나 우울했는지'를 1~10점 사이로 응답해 달라고 직접 물어볼 수 있습니다. 가장 간편하고 직설적인 질문입니다. 다만, 김만수 씨 스스로 응답하는 것이기 때문에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조금만 우울해도 6점이라고 대답할 수 있고, 누군가는 아주 우울하지만 '나 정도는 양호한 편일 거야'라며 3점으로 대답할 수도 있으니까요.


좀 더 객관적인 수치를 얻기 위해서 '최근 일주일 간 평균 수면시간'을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우울감과 수면 시간은 어느 정도 강한 상관이 있거든요. 직접 보고하는 점수보다 객관적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마침 그 주에 야근이 많아 일시적으로 수면이 부족했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정보를 포함할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특히 실험 상황에서는 이런 질문 설계가 매우 중요해집니다. 질문을 잘못 설계하면 원하는 데이터가 아닌 왜곡된 정보가 튀어나오거든요. "얼마면 사 먹을래?"와 같은 질문이 그렇습니다. 이미 음식을 먹어본 상태에서, '이 정도 맛이면 얼마 정도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생각과 '알지 못하는 메뉴를 시도해 볼 만하게 느끼는 가격'은 생각의 과정이 다르거든요. 전자는 사후 평가가 포함된 지불용의, 후자는 예상하기 힘든 새로운 경험에 대한 지불용의 입니다.


하지만 '얼마가 적당할까?'라는 질문은 주변에 식당을 준비하던 지인에게도, 서비스 런칭을 준비 중인 스타트업의 설문에서도 종종 듣게 되는 질문입니다. 가장 간편하고 직접적인 질문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이 질문으로는 우리가 원하는 '바로 그' 데이터를 얻기는 힘들지도 모릅니다.


백종원 님은 질문을 '가격 맞추기'로 바꿨습니다. 그렇게 되면 응답자는 '이 정도면 얼마 정도 쓸 용의가 있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 정도면 얼마 정도에 팔고 있겠지?'라고 추리를 시작합니다. 손님이 응답하는 가격에서 개인의 취향과 지갑사정이 빠지는 것이지요. 대신 해당 상권, 재료값, 만족감 등이 주요 판단 요소가 됩니다. 손님은 지금 가격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추리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현지인이 상권, 재료값, 만족감 등을 기반으로 추리한 메뉴의 가격. 그것이 백종원 팀에게 필요한 '바로 그' 데이터입니다.



보상보다 기분 좋은 행운


불고기 버거를 맛본 3명의 손님은 각자의 추리과정을 거쳐 가격 맞추기를 시도합니다. 요식업을 모르는 손님이 "이거 얼마에 팔면 좋겠네요"라며 해주는 조언이 아니라, "이거 얼마죠?!"라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추정해 본 가격이지요. 백종원 님은 중간 가격을 제시한 손님에게 "축하드려요! 어떻게 맞추셨죠?"라며 너스레를 떱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정답을 맞혔으니 식사값은 무료라고 말해줍니다. 세 명의 손님은 가격을 맞춘 한 명 덕분에 운이 좋게 음식값을 벌었습니다. 어떤 차이인지 느껴지시나요?


"무료로 제공해 드릴 테니, 대신 가격을 설정해 주세요."라는 요청은 거래관계를 성립시킵니다. 나는 이들의 장사에 필요한 관점을 제공해 주는 대가로 음식을 제공받은 셈이 되는 것이지요. 딱히 끌리지 않는 메뉴여도 공짜라고 하니 참여해 볼 수도 있습니다. 맛을 보는 동안 음식을 즐기기보단 심사관의 자세로 신중히 맛을 봅니다. 음식을 제공받았으니, 내 역할을 충실히 해주어야죠.


"맞추면 공짜!"는 조건부 이벤트에 가깝습니다. 못 맞춰도 돈을 내고 먹을 용의가 있는 음식을 즐기고, 뜻밖의 기회(무료제공)도 즐길 수 있습니다.  운이 좋게 정답을 맞힌다면, 정말 기분 좋은 추억이 생기기도 하지요. 세 명의 손님은 백종원 님의 가게에서 이런 추억을 얻고 돌아갑니다. 아주 기분 좋은 식사경험이 되었을 겁니다. 돌아가서 주변에 자랑할 수도 있겠네요. 굳이 홍보를 부탁하지 않아도요. '내가 음식값을 정확히 맞춘' 덕분에 얻게 된 행운이니까요.


해당 회차는 3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실제로는 "맞춰보시라고 해 맞춰보시라고, 물어보지 말고!"라고 아주 짧게 지나가는 장면이었는데요.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간의 장사 경험에서 우러난 연륜인지, 순간적인 센스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적어도 손님에 대한 깊은 이해를 기반으로 한 통찰로 보였습니다.



체득한 심리학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심리학이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는 인터뷰를 자주 접하는 편입니다. 사실 학부생 때는 그 말에 묘한 반항심이 있었어요. 그분들은 심리에 통달한 거지, 심리학을 공부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낯 뜨거운 반항심이었죠. 사실 중요한 것은 심리냐 심리학이냐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의 깊이였으니까요. 심리학도 결국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학문탐구의 형태로 나타난 것일 뿐. 꼭 학문이 아니더라도 방법은 많다고 봅니다. 이제는.


경험이 많은 분들은 체득한 것이겠지요. 우리는 그것을 통찰력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연륜이라고 부르기도, 센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 것들이야말로 체득한 심리학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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