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가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난번 호명에 대한 글(니가 사람이냐?고 묻는 서비스)을 쓰면서 언급했던 문자 메시지가 있었는데요. 점심구독 서비스 위잇딜라이트에서 보낸 문자였습니다. [간절히 기다린다]는 표현이 괜스레 미안하게 느껴져서 기억에 남았었지요.
기업이 발송하는 메시지에서는 보통 쓰지 않는 감정적인 표현이지요. '간절하다'는 정서가 들어가니, 단순히 기업에서 재방문을 늘리기 위해 기계적으로 발송하는 메시지 이상으로 느껴졌습니다. 문자 메시지 뒤에 있는 '사람'이 인지되었어요. 그래서 피드백을 달라는 설문에 참여했습니다. 물론 설문보상 1,000P가 탐나기도 했지만.. 단순히 [설문 참여하면 1,000원 증정!] 같은 문장이었으면 귀찮아서 무시했을 겁니다. 정말로요.
하지만 간절하다잖아요.. 대문자 F는 그런 말을 들으면 참을 수 없습니다. 황급히 구글 폼 링크에 들어가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사실 위잇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는 꽤 높았거든요. 주문도 편하고, 가격도 합리적이고, 1인이 1일 치만 배송도 가능했으니까요. 다만, 반복되는 메뉴 구성에 조금 물렸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끝인 줄 알았지요.
며칠 뒤에 이런 문자가 도착했어요. 처음엔 스팸인 줄 알았습니다. '감히 범죄심리 전공자에게 스팸을 보내다니. 아무한테나 주소를 뿌릴 것 같으냐' 싶었는데, 문자 기록을 보니 정말 위잇에서 보냈더라고요. 링크만 띡 보내지 않고 [배송지 입력하기]라고 명확한 레이블도 달아주었습니다.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엄청난 UX 라이터가 계시지 않을까 싶었어요. (제가 작업한다면 고객센터 연락처나 링크도 달았을 것 같.. 읍읍)
뭘 보내주겠다는 건지 몰라서 평소 도시락을 받던 회사로 받을지, 집으로 받을지 고민하다가 집 주소를 남겼습니다. 며칠 뒤에 회사로(..?) 그들의 깜짝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실 좀 당황스럽기도 했고요. 아무 불만도 없었는데 저렇게까지 걱정해 주시다니.. 뭔가 강하게 클레임을 건 블랙 컨슈머가 된 듯한 죄책감 ㅜㅜ 무려 손 편지라니요. 처음엔 배민의 손글씨 스티커가 생각나서 이리저리 자세히 들여다봤는데, 정말 손으로 쓴 편지였습니다. 배민에서 나온 것을 보고 재미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손 편지를 보내주는 기업이 있었다니. 제 추천으로 위잇을 구독했던 동료들에게도 보여주었더니, 도대체 뭔 짓을 했길래 이런 걸 받냐고 놀라더라고요. 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저 선물을 받은 시점이, 돌고 돌아 다시 위잇의 도시락 구독을 신청한 다음날이었습니다. 저렇게까지 해주지 않아도 이미 위잇 만한 서비스가 없었거든요. 물론 저걸 받고 추가신청을 두 배로 하긴 했습니다.
호혜성의 법칙이니 뭐니 그런 기술적인 상술을 떠나서요. '이건 찐이다'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배송지를 집으로 입력했는데 회사로 보내준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지요. 어디든 어떻습니까.
모니터 뒤에 사람 있다는 문장, 들어보셨나요? 기둥 뒤에 공간 있다는 밈을 변형한 듯한 문장인데요. 익명성에 기대어 대면 상황이라면 함부로 하지 못할 말들을 스스럼없이 하는 사람에게 경각심을 가지자는 의미로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요즘 같이 온갖 댓글창마다 투기장이 열리는 시대에 꼭 필요한 문장이지요. 지금 내가 뱉는 말과 글은 단지 모니터에 쓰일 뿐이지만, 그걸 읽는 사람은 나와 같은 사람이니까요. 모니터는 아무 반응이 없지만 사람은 상처도 받고 화도 날 수 있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임에도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종종 있지요. 그리고 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글 뒤에는 그 글을 쓴 사람이 있고, 앞에는 그 글을 읽는 사람이 있지요. 글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일 뿐입니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어떤 화려한 스킬이나 법칙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단지 전하고 싶은 마음을 온전히 전할 수 있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해요. UX라이팅 영역 안에서는 '제 기능을 하는(브랜딩)', '목적을 달성하는데 도움을 주는(사용성)'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위잇의 편지를 받고 감동한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편지 뒤에 사람이 있는 것이 느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간절히 기다린다], [돌아오시길 바라는 마음]이라는 텍스트도 꽤 인상적이었지만, 텍스트 차원에서는 전달할 수 없는, 강력한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이었다고 봅니다.
UX 라이팅이든 텍스트 브랜딩이든, 결국 궁극적으로는 소비자와 기업이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해주는 글이라는 것이 관건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어떤 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해 보면, 쉽게 말해 친구를 사귄다고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지요. 테크닉이나 전략보다 마음이 중요합니다. 스킬은 그 마음을 좀 더 매끄럽게 전달해 주는 보조수단일 뿐이고요. UX 라이팅 대원칙보다 진심 어린 한 문장, 한 단어가 갖는 힘이 더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데이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작년 데이터 컨퍼런스에서 어떤 교수님이 하신 기조발언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데이터가 얼마나 크고 얼마나 중요한지 얘기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기술은 너무나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그 데이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데이터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제대로 제시하는 사람은 너무 귀해요. 데이터를 인문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그리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유의미한 전략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획자의 역할이 중요해질 겁니다.
기획자를 자처하는 제게는 꽤 반가운 이야기였지요. 요즘은 어딜 가나 개발자를 원하니까요. 실제로 일을 하다 보면 죽어 있는 데이터가 너무 많다는 걸 느낍니다. 수집은 했는데, 쓰임새가 명확지 않아서 쌓이고만 있는 거죠. 그 데이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려면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주제라면 다크패턴에 대한 이야기도 빼먹을 수 없지요.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불편감을 유발하거나, 사용자를 속이는 방식으로 경험을 설계하는 것을 다크패턴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가입하고 혜택 받기] 버튼은 식별성이 좋아 눈에 확 들어오는 반면, 가입하지 않고 둘러보는 버튼은 부가설명마냥 잘 보이지 않게 해 두었지요. 둘 다 버튼임을 인식하기 충분치 않습니다. 심지어 문장마저 [비싸게 구매하기]를 사용해서 가입을 하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듯한 느낌을 유도하고 있어요.
주로 회원탈퇴 과정에서 저런 짓을 많이 합니다. 탈퇴 버튼을 아예 찾기 힘들게 숨겨놓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 저딴식의 설계를 해놓은 서비스를 발견하면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피해가거나 탈퇴를 강행하는 편입니다. 꼴뵈기 싫거든요. 소비자를 아주 물로 보는 것 같고요.
하지만 어르신들은 대체로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지요. 저렇게 되어있으면 일단 버튼으로 보이는 [가입하고 혜택 받기]를 누르시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어르신이 아니더라도 예민하지 않은 유저라면 그럴 테고요. 그래서 저런 짓을 하는 겁니다. 숫자만 보면 좋은 전략이거든요. 클릭률이 올라가거나, 가입자가 늘어납니다. 어쩌면 매출이 늘지도 모르고요.
절대 오래가지 못한다고 봅니다.
불쾌감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거든요. 한탕하고 빠질 생각이라면 모르겠지만, 브랜딩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최악의 선택이라고 봅니다. 억지로 회원가입시켜 묶어놓은 고객, 귀찮게 만들어서 탈퇴하지 않는 고객의 수가 많은 브랜드라면, 숫자가 아무리 커도 의미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 숫자가 클수록 위험할지도 몰라요. 아무도 그 브랜드를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이제는 아예 법적으로 저런 짓(다크패턴)을 못하게 하려는 움직임도 보입니다. 과장광고/허위광고와 마찬가지로 제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갈수록 꼼수가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용자들이 기본적으로 똑똑해지고 있거든요. 심지어 이제는 AI가 웬만한 글을 다 써주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인간미가 느껴지는, 진심 어린 텍스트가 더 귀해지는 것 같아요.
위잇 딜라이트의 진심에 너무 감동받아서, 궁금하신 분들은 써보시라고 링크라도 남기길까 하다가 말았습니다. 광고처럼 보이면 오히려 거부감이 들 것 같아서요. 추천인 포인트 3,000원보다 진정성이 더 비싸게 먹힌다고 이 글 내내 이야기해 버렸으니, 뱉은 말은 책임져야지요. 이 정도면 간식값은 하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