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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딧쓴 May 01. 2024

확인하시겠습니까? 확인해주세요. 확인부탁드립니다.

UX라이팅은 결국 어감 개선인 것 같습니다

UX라이팅은 비빔밥의 참기름

바쁜 분은 아래 소제목으로 점프하셔도 됩니다. 근데 솔직히 그렇게까지 바쁘진 않을..거라 믿고 싶어요.


UX라이팅은 결국 어감 개선인 것 같습니다. 5개월 만에 쓰는 글을 이렇게 시작하니, 마치 5개월 동안 폐관수련이라도 한 것 같네요. 브런치를 쉬는 내내 UX라이팅이 무엇인지 고민한 것은 아니고요, 올해 나올 종이책의 원고를 썼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5개월이나 걸릴 일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원고를 쓴다는 핑계로 별다른 일도 안 하고 반년을 붙들고 있었네요. 이번에 확실히 느낀 것은, 새로 글을 쓰는 것보다 이미 쓴 글에 살을 붙이는 것이 훨씬, 한 32배 정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아무튼, 초고 탈고를 마쳤으니 이제 그만 놀고 일해야죠.


지금까지 UX라이팅이랍시고 했던 작업물들, 해왔던 설명들을 쭉 돌아봤습니다. 전에도 UX라이팅이라는 표현을 어떻게 좀 더 쉽게 설명할 수 있을지는 계속 고민해 왔었지요. 나름대로 사용성 글쓰기라고 표현해보기도 했었네요. 원고를 쓰면서도 느낀 건데, 힘을 빼도 한참 더 빼야 할 것 같습니다. 결국은 뉘앙스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UX라이팅스럽지 않아도 글은 써집니다. 사용하는데 치명적인 결함은 드물고요. 결제과정이 개떡 같을 수는 있지만, 어쨌든 사고 싶은 물건이 있고 서비스가 런칭되었다면 결제를 할 수는 있을 겁니다. UX라이팅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야 "UX라이팅은 필수적 요소다!"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 당연하지만, 사실 UX라이팅은 비빔밥의 참기름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참기름이 있어야 비로소 비빔밥의 참 맛을 느낄 수 있겠지만, 사실 밥이랑 고추장만 있어도 비빔밥이라고 부를 수는 있잖아요?


UX라이팅의 1차적인 역할이 '좀 더 사용하기 편하게'라면, 좀 더 궁극적인 목표는 '좀 더 기분 좋은 경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막상 작업했던 부분들을 돌아보니, '와 여기서 이런 버튼명을 쓴다고? 이러면 진행 못하지' 싶었던 부분은 생각보다 많지 않고, '여기서 이렇게 말하면 좀 더 좋지 않을까요?'라는 제안이 압도적으로 많더라고요.


한국말이라는 게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보니, 같은 표현이어도 좀 덜 헷갈리게 말할 수 있고, 더 기분 좋게 말할 수 있는 대체어들이 많이 존재합니다. 영어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미묘한 뉘앙스나 어감차이는 한국말을 따라올 언어가 있을까 싶어요. 영어를 좀 잘했다면 영어는 이런데 한국어는 이렇다고 좀 더 프로처럼 비교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무튼, 앞으로는 이런 어감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들을 글로 써볼까 합니다. 여기까지 UX라이팅이라는 표현을 딱 10번 썼네요. 다음 글부터는 아예 안 써보는 것이 혼자만의 목표입니다.



확인했어요? 할래요? 하시겠습니까?


조금 보채는 것 같은 이 녀석이 어감 분석의 첫 번째 주인공입니다. 서비스를 이용하다 보면 정말 자주 만나는 요청이지요. 혹은 이메일을 보낼 때 자주 쓰게 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오니 확인 부탁드립니다." 하는 식으로요. 글의 제목에서 '확인하시겠습니까? 확인해주세요. 확인부탁드립니다.'라고 세 가지 표현을 썼습니다. 뒤로 갈수록 맺음말에 따라 강요하는, 보채는 느낌이 빠지는 순서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셋의 차이는 맺음말의 표현인데요. 어감이 달라지는 것은 확인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모호함도 한몫한다고 생각합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시-' 높임표현과 '-습니까?'의 의문형 때문에 가장 격식을 차리는 느낌을 주기도 하면서, 유일하게 의문형이기 때문에 가장 들이미는 느낌이 드는 표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확인이 가지는 의미는 '구경'과 어울립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열어서 열람하거나, 조회하거나, 둘러볼 것을 요청할 때 어울립니다.



위 이미지에서 '확인하시겠습니까?'는 '메시지를 열어볼래?' 혹은 '무슨 내용인지 구경할래?'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아래 버튼에는 [확인] 대신 [열어보기]가 들어가도 되고, [내용 보기]가 들어가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취소]는 아마 [닫기]의 의미로 쓰인 것으로 보이네요. 메시지가 도착한 것은 사용자의 행동이 아니라 사용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만나게 된 상황이라, [취소]는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예/아니오가 좀 더 자연스럽죠?


'확인하시겠습니까?'라는 표현 자체에 열람이라는 어감이 붙어있다 보니, 아래처럼 '일괄 확인'이라고 쓰면 저 버튼이 어떤 행동을 불러일으킬지 직관적으로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모든 문서들을 한 번에 보는 방법은 없으니까요.




확인해주세요.

다음은 확인해주세요 입니다. 이 녀석은 '~습니까?'보다 조금 덜 격식을 차린 표현이고, 의문형으로 끝나지 않는 요청이기에 보채는 느낌이 조금은 덜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해요'체이다 보니 친근한 느낌을 지향하는 당근이나 토스 같은 서비스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지요.


'확인해주세요'는 검토해 달라는 요청과 어울립니다. '우리가 이제부터 무엇을 하려고 하는데, 그래도 괜찮은지 한 번 더 검토해 봐'라는 의미를 전달할 때 가장 어색하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확인해주세요 앞에 '~전', '~를 위해'라고 이후 행동이 붙는 경우도 많습니다.



확인해주세요와 호응하는 대답은 '확인했어요.'겠지요. "검토해 봤는데 이상 없어"라는 대답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최근에 처음 알게 된 반찬인데 매우 맛있습니다. 자취생에게 강추)



확인부탁드립니다.

마지막은 '확인부탁드립니다.'입니다. 앞의 둘 과는 다르게 주로 대화상황에서 가장 빈번하게 쓰이는 표현입니다. 이 녀석은 승낙해 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정리해서 내용을 전달했으니, 마지막으로 한 번 검토해 보고 승낙해 줘"하는 상황에 가장 잘 어울립니다. 어울리는 대답인 '확인했습니다.'는 "ㅇㅋ 검토완료 했으니 진행하세요."라는 의미를 내포하게 됩니다. 대표이사님의 결제도장과 가장 잘 어울리는 문답입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는 맺음말의 차이로 인해 확인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약간씩 달라집니다. 똑같이 '확인'이라고 표현되었지만 열람/검토/승낙의 뉘앙스를 가질 수 있습니다. 물론, 사전적인 차이는 아니고 개인적인 어감의 해석일 뿐입니다.


각각의 상황과 목적에 따라, 확인이라는 표현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표현을 사용할 있을 겁니다. 내용을 보여줄 필요가 있을 때는 '확인하시겠습니까' 대신 '자세히 보기'를 쓸 수 있고, 검토가 필요할 때는 '확인해주세요' 대신, '이런 내용을 주의해 주세요'나 '~한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세요'라고 쓸 수 있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대신에는 '~한 부분 검토 후 회신 부탁드립니다.'라고 표현해 볼 수도 있고요. 확인의 '확'자가 확실, 확정과 같이 단정적인 어조로 쓰일 때가 많다 보니, 부드러운 표현이 필요할 때는 대체어를 찾아 쓰는 편입니다.


어떤 맺음말을 붙이냐에 따라 단어 자체의 어감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 심지어 같은 단어여도 여러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짧게 하고 싶었는데 스크롤이 상당히 길어졌네요. 이미지가 많이 들어가서 그럴 거라고 변명해 봅니다. 이제 보니 '확인하시겠습니까?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는 연달아 써놓으니 상당히 간절해 보이네요. 제목만 놓고 보면 글을 읽어달라는 간절한 외침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렇게 해석하셨어도 틀린 말은 아니에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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