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보다 재미있는 서점 읽기, 알고리즘에 갇혀있지는 않은가요?
한 달, 길어도 두 달에 한 번은 서점에 갑니다.
일부러 주기를 지키는 것은 아니고, 그냥 자연스레 그렇게 되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서점을 찾게 되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게 보통 두어 달에 한 번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특히 작업하는 시간보다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요즘 같은 때는 더 자주 서점에 갑니다.
속도보다 방향을 고민하게 되는 때인 것 같아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리프레시가 필요해질 때가 있습니다. 머리를 식힌다고도 하지요.
너무 한 방향으로만 생각하는 건 아닌지, 의도적으로 리프레시를 가지는 때도 있고요.
생각에도 관성이 있으니까요.
집에서 멍을 때리게 되면 유튜브 메인 화면을 무한 새로고침하는 늪에 빠집니다.
그러다 관심이 가는 영상이 보이면 두 배속으로 후다닥 보고 다시 메인으로 돌아오고요.
넷플릭스도 그렇고 유튜브도 그렇고, 메인화면을 보는 것이 가장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감각을 즐기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어떻게 살 지 고민이 길어지다 보면, 선택지가 생각보다 많이 없다는 압박감이 생기거든요.
파칭코에 중독된 아저씨처럼 멍하니 유튜브 메인화면 룰렛을 돌리고 있으면,
다양한 분야를 둘러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저에게 개인화된 알고리즘 안에서 확보된 '한정적 다양성'일 뿐이지요.
길어지는 고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해보려 해도 기존의 방향성을 완전히 벗어나기는 쉽지 않지요.
그럴 때 서점을 갑니다.
서점의 책 추천 알고리즘은 개인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덕분에 내가 체감하는 트렌드가 내 알고리즘 안에서의 트렌드인지,
좀 더 거시적인 트렌드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알고리즘을 벗어나보는 거죠.
새로운 단어나 분야도 찍먹 하기 아주 좋습니다.
내가 관심 있는 주제와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를 엮은 책도 발견하게 되고요.
일부러 생소한 분야의 서가에서 서성거리다 보면 그래도 눈에 들어오는 책들이 있습니다.
모르고 지나칠 뻔 했던 잠재적인 취향을 발견하는 순간이지요.
그렇게 정말로 새로운 단어, 새로운 자극들을 머릿속에 집어넣다 보면 자연스럽게 리프레시가 됩니다.
잠깐의 휴식이 집에서 창문 열고 하는 환기라면, 서점에 가는 것은 템플스테이 급의 환기가 됩니다.
완전히 새로운 생각이 필요할 때 아주아주 애용하는 방법입니다.
리프레시가 필요한 순간이 벽을 만난 상황이라면,
생각이 막혔을 때는 잠긴 문을 만난 상황입니다.
1이 꽉 막힌 뇌 속에 새로운 공기를 넣어주는 작업이라면
2는 특정한 문제를 가지고 답(열쇠)을 찾으러 가는 목적입니다.
출간을 목표로 쓰는 원고는 브런치 글과 달리 호흡이 아주 깁니다.
제 브런치 글이 보통 3~5천 자 내외인데요.
하반기 출간 목표로 준비 중인 이번 원고는 14만 자 정도 되더라고요.
그 정도로 긴 호흡의 글을 쓰다 보면 꼭 길을 잃는 순간이 옵니다.
(그냥 제 역량 부족일 수도 있겠네요)
글이 막히면 막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타겟이 명확하지 않다."
"핵심 메시지가 매끄럽지 않다."
"어거지로 끼워 맞추는 느낌이 든다."
보통 이런 식이지요.
그럼 지금 내가 참고해야 할 래퍼런스가 명확해집니다.
"유사한 타겟을 대상으로 한 책은 어떻게 정리되어 있지?"
"같은 장르 내에서 다른 책들은 어떤 핵심 문장(제목)을 썼지?"
"다른 장르에서 유사한 구조의 메시지를 담은 책은 없나?"
그럼 그 질문을 들고 서점에 갑니다.
눈이 가는 책이 있으면 그 책에 왜 눈이 갔는지 생각해 봅니다.
제목에서 어떻게 후킹을 했는지, 제목과 내용의 연관은 어떻게 지었는지,
목차는 어떻게 구성했는지, 분량 채우기 용으로 보이는 챕터는 없는지,
유명한 작가라면, 그렇지 않은 작가라면 어떻게 마케팅했는지.
보다 보면 질문이 확장되고,
처음 질문에 대한 답과 확장된 다른 질문에 대한 답,
해결해야 할 새로운 질문을 들고 돌아올 수 있습니다.
온라인상에는 무기력한 사람이 가득합니다.
의욕적인 사람의 영상에도 비판적인 댓글이 가득하고
신세한탄과 원망, 혐오와 조롱을 발견하기가 너무 쉽지요.
아니, 발견하지 않는 것이 어렵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뿜어내는 마이너스 에너지는 전염성이 강합니다.
서점에 가면 플러스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의 에너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다들 열심히 무언가를 찾고 있거든요.
무언가를 해보려는 사람, 지식을 찾는 사람, 탐구욕에 목마른 사람이 가득합니다.
그런 공간에 자신을 가져다 놓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럴 때 현실감각이 돌아옵니다.
내가 지금 어떤 시간과 어떤 공간을 어떤 사람들과 살아가고 있는지,
온라인에서 떠돌던 정신머리를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느낌이에요.
그렇게 시야가 현실로 돌아오면, 책과 사람을 둘러봅니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서가 앞에 머무는지,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동선과 그렇지 않은 동선에 배치된 서가는 무엇인지,
이번 달 베스트셀러에는 어떤 책들이 있는지,
신간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주제나 키워드는 무엇인지,
가벼운 마음으로 둘러봅니다.
각 잡고 하는 시장조사가 아니라, 러프한 시장조사라는 생각으로요.
알고리즘에서 벗어나, 요즘 뭐가 진짜로 유행하는지를 봅니다.
그냥 '아 이게 유행이구나'하고 말기보단,
그 이면에 숨어있는 욕구나 감정도 생각해 봅니다.
그럴 때 전공의 덕을 좀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저렇게 아무 계획 없이 서점에 가면 짧게는 30분, 길게는 2시간이 지날 때도 있습니다.
시간이 대중없다 보니 혼자 가게 되는 편이에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전시, 영화관람 등은 혼자보다는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는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혼자 느긋하게 즐기는 것도 좋지만, 감상평을 나누면서 생각이 정리되는 부분이 많거든요.
다른 사람의 관점을 간접체험하며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을 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어차피 매달 가는 서점, 가서 하는 잡생각들을 글로 정리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은밀하게 메일함으로 전달하고 싶지만
당장 뉴스레터로 시작하면 공허한 외침이 될 것 같아 브런치에 읊조려보려고요.
조금 거창하게 말해서 [월간 서점 프로파일링]이라고 해보겠습니다.
제가 서점에서 읽어내는 생각, 감정, 욕구 등을 엿들으실 수 있을 거예요.
같이 서점산책 다녀온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듣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도 있잖아요?
사실 오늘 7월 베스트셀러와 신간이 궁금해서 서점에 다녀왔는데요,
가는 길이 너무너무 덥고 습해서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글로 적어볼까?' 하는 생각으로 관찰하다 보니 그냥 둘러볼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나름 재미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