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모르겠고, 우리 회사는 망할까?
이 글은,
사장님들께는 주 3일로 인재 채용을 권하는 동시에
백수들에게는(a.k.a 쉬는 청년 혹은 프리랜서) 주 3일 구직을 권하는 글입니다.
정치적인 견해는 거의 없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굳이 따지자면 두 방울 정도는 있음)
주 4.5일제 도입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지금,
글쟁이라면 4.5일제가 가져올 파장과 현상에 대해 논하면서
뜨거운 토론의 장을 열어야 어그로꾼으로 마땅하겠으나,
저는 무지랭이라 그냥 제 경험이나 풀어볼까 하옵나이다.
제가 처음으로 주 3일 근무를 해본 건 대학교 막학기였습니다.
이런저런 상황이 맞물려 막학기가 0학점이었거든요.
등록만 하고 학교를 안 나갔습니다.
졸업을 위한 영어 성적만 만들면 됐었죠.
제 상황을 아는 선배가 제안을 해주었습니다.
제안서, 결과보고서 등 서류 작업, 행사 현장 보조강사.
요정도 일이면 사실 출근은 월 3-4회 정도로 가능하니까요.
나머지는 재택근무처럼 하고요.
그분을 따라다니며 일을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취업을 하기엔 아직 졸업을 안 했고,
학교만 다니자니 시간이 아까운 상황이었던지라
꽤 의미 있게 시간을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석사과정을 2년 정도로 마쳤는데요,
코로나 시국이라 거의 모든 수업이 비대면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전공 특성상 실습을 나가기도 어려웠고요.
저는 말과 행동을 분석하는 쪽에 관심이 컸고,
마침 유사한 일을 하는 센터와 연이 닿아있었습니다.
대학원 진학 소식을 전해드리니,
센터 일과 대학원 병행이 어떨지 물어봐주셨어요.
학업과 실무를 동시에 해볼 수 있다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고요.
주 4일 대학원 공부를 따라가고,
주 3일 실무도 배우고 학비도 벌고.
주말에 안 쉬냐고요?
해보고 싶던 공부를 하는데 주말이 무슨 필요입니까 하하
그리고 솔직히, 일정 조정 해서 쉬려면 얼마든지 쉴 수 있었고요.
이런저런 사정으로 1년 뒤에는
UX라이팅 에이전시로 이직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대학원 과정중임을 말씀드리고
주 3일로 계약을 했지요.
정확히는 프리랜서 계약 - 주 3일 계약으로 확장한 케이스입니다.
처음으로 제가 먼저 주 3일 출근을 제안해 본 셈이죠.
회사와 합이 좋았고,
졸업 후 1년 정도 풀타임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속하는 일들은 사실 출퇴근이 의미가 없었어요.
업무량 단위로 KPI를 정하거나, 건 별로 일을 받아서 했습니다.
로펌에 전문위원으로 있으면서 케이스를 담당하거나,
스타트업에 출근하지는 않으면서 신사업을 기획하거나 했지요.
재미있게도, 신사업 기획은 주 3일 업무량을 기준으로 목표를 정했습니다.
계약도 주 3일 기준으로 했었고요.
그리고 다시 주 3일 출근을 하는 형태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사업 기획 쪽은 기존 아이템 강화로 저와의 일은 마무리되었고,
로펌 전문위원은 여전히 건 별로 하고 있으면서요.
별도로 진행하고 있는 AI 솔루션 개발 프로젝트와 병행을 위해
주 3일로 말씀을 드리고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경쟁 입찰에 필요한 제안서를 쓰거나,
현장에 보조인력으로 나가기도 하는 조건으로요.
'그냥 너 편할라고 주 3일 계약한 거 아니냐?'라고 하실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사장님을 위해서라기보단, 제가 필요해서 그랬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저런 형태의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이 저뿐일까요?
구직을 하지 않고 쉬는 청년이 역대 최대라고 합니다.
7월 기사 기준으로 50만 명이네요.
그중 70% 정도가 이미 직장을 다녀본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시장에 약 30만 명의 중고신입이 떠다니고 있습니다.
중고신입. 솔직히 매력적이지 않나요?
기본적으로 일 돌아가는 모양새는 알지만,
경력으로 인정받기 애매해서 신입을 자처하는 이들.
게다가 주 3일을 일한다면,
당연히 5일을 일하는 정규직만큼 급여를 달라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급여 역시 3/5 정도 선에서 협의를 볼 수 있겠죠.
비용이 줄어든다는 것은, 리스크가 줄어듬을 의미합니다.
구직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주 3일 근무는 풀타임 근무보다 부담이 덜합니다.
내 인생을 덜 갈아 넣어도 되니까요.
무엇보다, 이들은 '직장생활에서 미래를 찾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게 제가 해석하는 '쉬는 청년'의 이유거든요.
쉬고 있다고 해서 마냥 천년만년 백수로 있을 수는 없을 겁니다.
청년들 스스로도 그것을 알고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업을 하지 않는 것은,
취업한 직장에서도 내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둘 다 불투명한 미래라면,
'이것저것 해볼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취하겠다는 포지션이지요.
'그냥 미래고 뭐고 일하기 싫어서 퍼진 사람들'아니냐고요?
그런 사람들도 없지는 않겠네요. 하지만 논외로 합시다.
그런 사람은 주 3일 일자리를 제안해도 관심이 없을 테니까요.
주 3일 일자리를 제안하면
'직장 이외의 수단으로 자신의 미래를 찾고자 하였으나,
생계가 막막해서 일 자리가 필요하긴 한 청년층'의 수요를 흡수할 수 있습니다.
그럼 오래 있지 않고 떠나는 거 아닐지 걱정되시겠지만,
풀타임으로 계약한 직원은 오래 있던가요?
차라리 주 3일로 일을 해보다가,
서로 괜찮다고 느끼면 풀타임 전환을 노려보세요.
그것이 서로에게 더 안전하기도 하니까요.
주 3일 가지고 일이 되긴 하나요?
계약을 시간 단위로 한다는 생각보단,
업무 단위로 해보시면 어떨까요?
지금 신규 채용이 필요해진 그 업무,
사실 다 업무 단위잖아요.
재고관리, CS, 신사업 제안, 홈페이지 관리,
디자인, 마케팅, 홍보채널 관리...
주 몇 건, 월 몇 건 식으로 쪼갤 수 있지 않나요?
그 편이 성과측정하기도 명확해지고요.
무엇보다, 업무 단위로 할당량을 쪼개 놓으면
월급루팡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시간만 보내는 상황들이요.
직원입장에서도 정해진 업무량이 있으면 빨리 처리할수록 이득이거든요.
물론, 사전에 명시하기 힘든 범위의 업무들도 분명 많을 겁니다.
이때는 '조율될 수 있는 범위'에 대해서 사전에 협의를 거치시길 추천드립니다.
무엇보다, 지금 주 3일로 채용을 하는 기업이 많지 않다는 것이 기회입니다.
주 3일 자체가 '당신의 편의를 봐드릴 테니, 이 정도는 협의해 보실래요?'라는
협상력을 갖출 수 있게 해 줍니다.
대기업은 안 할 겁니다, 이런 짓. 할 필요도 없고요.
하지만 중소기업은 불안정하잖아요.
불안정하다는 것은 유연하다는 뜻도 됩니다.
우리의 강점을 살려보자고요.
저도 1년 반정도 취업 생각 없이 쉬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사실 '취업'을 할 생각은 없고요.
그치만, 생계는 해결해야지요.
알바를 구하기보다,
내가 해보고 싶었던 그 일, 관심이 갔던 회사,
조금이나마 흥미가 가는 분야, 그곳의 작은 회사에
주 3일 일자리를 제안해 보세요.
채용 계획이 있었다면,
계약직으로 테스트해 보기 나쁘지 않은 제안이거든요.
그런 채용공고가 없다고요?
먼저 제안해 보셔도 됩니다.
받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뭐 경찰이 찾아오거나 하지 않거든요.
근로자로서의 내 매력을 어필하기 나름이고,
조건을 조율하기 나름일 수 있습니다.
그런 유연성을 갖추었다는 것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장점이거든요.
풀타임만큼은 아니지만 경력과 경험도 쌓이고요,
남은 4일 동안 '돈은 되지 않지만 해보고 싶던 일'에 도전해 보세요.
주 3일 직장은 충분하지는 않겠만 생계유지 정도는 해줄 수 있으니까요.
주 3일 일자리를 제안한다고 해서
마법처럼 해결사가 채용되지는 않을 겁니다.
갑자기 지원서류가 몰리지도 않을 거고요.
하지만 적어도 지금 애매한 지점에 있는,
반 구직자 상태의 청년층에 대한 '유일한 공급'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어느 집단에나 기준선 근처의 애매한 회색지대가 존재하거든요.
'월 소득 50만 원부터'라고 기준을 정하면
월 소득 51만 원의 억울한 사람이 발생합니다.
'쉬는 청년'들의 경계선 주위에도,
'(풀타임 잡) 취업은 할 생각이 없는 청년',
'쉬고 싶지 않은데 어쩌다 보니 놀고 있는 청년',
'도전하고 싶은 일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청년'들이
많을 겁니다.
제가 주 3일 채용을 권하는 것은,
'더 많이 놀게 해 줘라'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가볍게 채용하는 문화가 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해고 역시 자유로워야 할 테고요.
그렇게 되려면 업무 성과를 측정하는 기준이 명확해져야겠지요.
모든 직무에서 그럴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가능한 직군에서는 업무단위 고용이라는 형태도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처음에 말한 정치견해 두 방울)
사실 정치적인 견해라기보단,
그게 저나 제 또래 청년들한테 필요할 것 같아서요.
스타트업, 중소기업 사장님들에게도 나쁜 방향은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이런 식의 채용에 관심이 생겼는데
채용공고 쓰기가 막연하시다면,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