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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싸움 타령을 멈추세요!!

단어가 가지는 힘에 대해서

by 기획자 에딧쓴

카카오톡 이슈가 황금떡밥이긴 한가 봅니다.

저번 글 쓰면서 검색을 몇 번 해서 그런지,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쇼츠를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근데 왜 내 조회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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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댓글들을 보다 보니 유독 눈에 걸리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기싸움.

카톡 사태에서만 볼 수 있는 단어는 아니었죠.

(1) 사과와 해명이 필요한 순간임에도 입장발표를 미룬다거나,

(2) 공식적인 자리에서 조금 무례한 언행을 보인다거나,

심지어 (3) 정치적인 이슈의 뉴스기사 댓글에서도 종종 보입니다.


요즘 들어 점점 더 쓰이는 빈도가 늘어나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별로 달갑지 않습니다.


방금 (1), (2), (3) 예시를 세 개 들었었죠?

각각의 사안은 모두 얽혀있는 배경과 중점이 다른 사안입니다.

하지만 '기싸움'이라는 단어 하나로 퉁쳐버리는 순간,

모든 맥락은 '개인의 치졸함'으로 뭉개져버립니다.


사회심리학에서는 귀인(attribution)이라고 하는데요,

사건이나 행동의 원인을 추정하는 사고를 일컫습니다.


이렇게 모든 사안에 대한 원인을 기싸움이라고 치부하면

자연스럽게 성격적인 내적요인으로 귀인해 버리게 됩니다.

건설적인 논의가 이루어질 수 없는 세팅이 되어버린다고 생각해요.



공격을 위한 단어들


오글거린다는 단어가 유행하면서,

감성을 채울 수 있는 글귀나 콘텐츠가 급감한 적이 있습니다.


진지충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면서,

진중한 콘텐츠가 급감한 적이 있습니다.

대신 가벼운, 심한 경우엔 경박함이

유쾌함으로 받아들여지는 때가 있었지요.


맘충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면서

유아의 보호자는 공공장소에서 눈치를 더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순기능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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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든 말든

방치해 버리는 무책임한 보호자들이 있었으니까요.


대화의 맥락과 분위기를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로 분위기를 흐리는

맥 커터들이 있었으니까요.


한남충, 이대남, 한녀, 영포티, 틀딱.

지금까지 나온 단어들은 대부분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 쓰인 단어들입니다.


이런 단어들은 가성비가 좋지요.

구구절절 논리로 후드려 팰 필요 없이,

혐오를 담은 단어 한마디로 상대를 공격할 수 있으니까요.


조금 혼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법 이전의 질서라고도 생각합니다.


굳이 범법이 아니어도,

'사회적인 수치심'은 도덕을 유지하는

중요 수단이라고 보거든요.


문제는 그 공격이 공격 대상만을 향하지 않을 때입니다.

대상의 범위를 넓혀 싸잡아 폄하하기도 하고,

때로는 본질을 흐려버리기도 하지요.


긁?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면서

무례함이 유쾌함으로 둔갑하고,

무례함에 피해를 입은 사람은

오히려 '예민하고 쪼잔한 사람'처럼 치부되기도 합니다.


마치 '기싸움'이 그랬던 것처럼요.

'저 사람이 기싸움을 한다'라고 매도하기 시작하면,

사회적인 맥락, 의사결정의 판단요소, 개인의 입장 등

모든 것은 그냥 '치졸한 성격 탓'으로 치부됩니다.


개인적으로 지금 사회에는,

아니 댓글창에는 '일침병'이 유행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서 일침을 가하는 것으로

본인의 자존감을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 충족하는 병입니다.

그 병세가 지금처럼 온갖 혐오단어들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해요.


본인들은 그게 쿨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한데,

별로 쿨하지 않습니다.

93ac97cf8021e1f47801e16c0f51c68b.jpg?type=w800 낫 펀, 낫 섹시.


단어가 가지는 힘


단어는 말의 단위이기도 하지만,

생각의 단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단어 사용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지요.


저의 책에서 소개한 적이 있는 사례 같은데,

단어는 인지적인 판단과 기억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Loftus와 Palmer의, 목격자 증언에 대한 실험인데요.

실험 참가자들에게 동일한 자동차 사고 영상을 보여줍니다.

그 뒤, 참가자들에게 추돌 당시 차량의 속도를 추정해서 말해달라고 요청하죠.


다만, 질문을 조금 달리합니다.

어떤 그룹에는 "차량이 부딪힐(hit) 당시 속도가 어땠나요?"라고,

다른 그룹에는 "차량이 박살날(smashed) 당시 속도가 어땠나요?"라고,

또 다른 그룹에는 "차량이 접촉할(contacted) 당시 속도가 어땠나요?"처럼요.


더 강한 동사 단어를 사용한 질문일수록,

답변자는 속도를 더 빠르게 추정했습니다.


자신이 들은 단어가 과거 기억 회상에 영향을 미친 것이죠.


다른 사례로는, 젠더를 규정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엄청 많죠?

일부만 퍼온 겁니다.


성소수자들의 젠더를 규정하는 단어들은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구나'라는 연대감을 준다는 순기능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냥 연애에 큰 관심이 없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에이로맨틱 성소수자'로 규정해 버리지요.


굳이 자신을 '성소수자'로 규정하지 않고도

살아가는데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의 정체성을

'성소수자'로 만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저는 이건 순기능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세력을 늘리기 위한 전초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민감할 수도 있는 얘기를 했지만,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단어가 가지는 힘은 생각보다 강합니다.

치명적이고요.


특히 사회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어마무시합니다.

그 시대에 유행했던 키워드들만 나열해도

그 시대의 트렌드, 사고방식, 가치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뭔가 쿨해보이는 단어를 새로 접하셨더라도

잠시 멈춰 고민해 보세요.


'이 단어를 내 삶에 들이는 것이

과연 나에게 좋은 일일까?'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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