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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왼손 Feb 08. 2023

나는 아파트 대신 밭을 샀다

글을 시작하며

1. 글을 시작하며


나는 아파트 대신 밭을 샀다. 내가 시골에 살며, 내 직업이 농부이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15년 된 귀농 농부지만 15년이 지나는 동안 귀농농부에서 일반적인 농부가 되었고 현재는 유기농 제18100322호의 유기농 인증을 가지고 10만여 평의 경작지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다. 여기서 경작지라는 것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을 의미할 뿐, 소유의 개념은 아니다. 과거의 농부가 일반적으로 자경 즉 자기 농지에서 농사를 짓거나, 소작 타인의 경작지에서 농사를 짓고 농지에 대한 임대료를 지불하거나 수확된 작물로 임대료를 지불하던 것이, 농지은행을 통해 임대를 하거나 국유지를 임차해 농사를 짓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했지만 본질은 동일하다. 경작할 농지를 소유하거나 소유하지 못한가의 두 가지다. 농지를 소유한 농부와 농지를 소유하지 못한 농부의 차이는 가끔 종이 한 장 차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대게는 하늘과 땅의 거리만큼 벌어지기도 한다. 특히 경작지 자체를 변화시키거나 수로를 파는 등의 중요한 농작업을 임대지에서는 하기 어렵다. 큰비가 올 때마다 물에 잠겨야 하고, 제주 밭의 뼈처럼 드러난 암반지대들을 피해 농사를 지어야 한다. 특히 유기농이라는 풀과 잡초를 화학의 도움을 받지 않고 순전히 사람의 손에 의해 억제하는 작업은 시골사람들의 눈에는 여전히 우스꽝스러운 일들이어서 자기 소유의 농지가 없다면 유기농업은 그 맥을 이어가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집과 밭 어느 것도 없었지만 집보다 밭을 먼저 샀다. 농부에게는 밭이 집보다 더 먼저다.


현대의 농업, 현재의 농업은 여러 발전을 거쳐 다양하게 발전했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여전히 오래된 농업을 떠올린다. 혹은 식물공장이나 Iot 융복합 시설 등의 최첨단 시설로 넘어가기도 한다. 어쩌면 현재의 농업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과거의 농업과 최첨단 농업의 중간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많은 농부들은 과거의 방식으로 콩과 고추를 재배해 타작하고 말려 농제품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한쪽에서는 인공조명으로 빛을 제공하고 컴퓨터로 제어된 시스템을 통해 수분과 양분을 조절하는 농업이 시도되고 있다. 그렇게 설치된 식물공장에서 토마토와 양상추 딸기등이 재배되어 시장으로 출하되고 있으며, 토양 대신 야자열매를 부셔서 만든 인공토양 속에서 상추와 깻잎 치커리 등의 잎채소들이 싱싱하게 재배되어 공급되고 있다.


내 이야기는 어쩌면 1980년대의 농업 더 이전의 농업으로 향하고 있다. 농업의 생산성에 기여한 화학비료와 또 해충의 위협으로 작물을 지켜내기 위해 쓰이는 화학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유기농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사용하고 싶어도 사용할 수 없었던 모든 화학을 버젓이 옆에 두고도 오로지 태양의 빛과 토양의 생명력 비와 바람, 그리고 인류의 오랜 역사동안 전해 내려온 지혜를 이용해 짓는 농사이기 때문에 화학이 없었던 시대를 향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유기농은 정부에서 친환경 인증제도를 도입하고 공식적으로 유기농 농업자재를 정의한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에 의해 비웃음을 사기도 했으며, 또 실패하고 어려운 농업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심각한 문제는 유기농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조차도 유기농이 가능한가라는 의심이 퍼질 정도로 그 존재성과 가능성에 의심을 받기도 했다. 정작 유기농가들은 매년 모든 수확작물들에 대해 432가지 농약 잔류검사를 거쳐 농약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증명서를 받아야 인증이 갱신되었음에도 말이다. 유기농의 현실은 엄격하며 공정하고 냉혹함에 비해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유기농은 그와 반대로 그저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농업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유기농은 “일체의 화학비료와 화학농약 없이 작물을 재배하는 인류의 지혜로운 기술”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실제로 그렇다. 일체의 화학을 사용하지 않으며, 사용할 수 없으며 사용하면 안 된다. 그래서 자연물질들과 또 자연의 지혜를 이용하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 15년 동안의 제주로 귀농한 귀농인이 일반 농부로 또다시 유기농 농부로 제주 들판의 빛과 바람 속에서 살아온 이야기다. 그리고 10여 만평이란 경작지가 증명하듯, 일체의 화학을 사용하지 않고도 충분히 작물을 재배해 왔으며 그 작물의 품질들이 나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렇게 생산된 과일과 채소들은 화학을 이용해 키운 작물이 따라올 수 없을 경지까지 도달하여, 한국 농업의 한 축으로서 자생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15년 동안 아주 많은 대한민국의 사람들에게 당근과 월동무 양배추 등의 기초적인 채소부터 브로콜리와 콜라비 비트 칼리플라워 등의 특이 작물들을 공급해 왔다. 그 채소들은 유기가공공장에서 가공되어 양배추와 비트즙 등의 가공물로 전해지기도 했고, 갓 수확한 신선한 채소로도, 그리고 대형 저온저장고에서 저장되어 연중 공급되기도 했다. 나의 농업이 “의존하지 않는 농업”이며, “지속적인 공급”을 지향하는 농업이었고, 나는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왔다. 그래서 농협이나 특정 유통업체에 의존하지 않는 농업이 되었고, 연중 공급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다. 물론 나 혼자 걸어온 길은 아니다. 15년 동안 같이 제주의 들판에서 찬바람을 맞고 작물을 수확하던 사람들과 걸어온 길이며, 60대 후반에 만나 80이 넘도록 내 곁을 지켜주었던 제주의 전통 농업여성들의 힘이 가장 컸다. 그녀들이 나에게 농업을 가르쳐주었고, 내 농업친구가 되었으며, 나의 어머니가 되어 주었다.

농업은 여성의 일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성에게 최적화된 일이며, 여성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중 하나다. 남자들은 그녀들이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 남자들이 주인공인 영화는 아니다. 그래서 나는 심부름꾼으로서, 차를 운전하는 운전수로서, 무거운 물건을 싣고 내리는 머슴으로서 충실히 농업에 임해왔다. 가끔 그녀들을 웃겨주는 우스꽝스러운 광대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즐거워야 일이 잘되고 덜 힘들고 시간이 금방 가버리기 때문에 매일매일 집중했던 일은 어쩌면 들판의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그들이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고, 무사히 하루를 보낸 사람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는 농업이, 유기농업이 대부분의 농작업을 사람손에 의지하기 때문에 아주 많은 사람 들과의 협업이고, 그 협업은 농사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수확을 거쳐 사람들의 손에 전달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에 이어지기 때문에 결국은 하늘과 바람 땅 비와 바람보다 오히려 사람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사실상 농업은 하늘과 땅 그리고 비와 바람과 사람 그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모든 것에 영향을 받는다. 다만 하늘과 땅 비와 바람과 태양은 우리가 인위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것들이지만, 사람이라는 요소는 그들의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되면 극복할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사람에게 더 집중했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내 15년 동안의 제주 들판에서의 시간은 너무 빨리 흘러버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래서 내 삶은 그냥 들판을 스치는 바람처럼 흘러온 것만 같다. 그런데 그 들판에 같이 서 있던 내 농업친구들의 얼굴은 피부에 새겨진 문신처럼 다 또렷이 남아 있다. 누가 어떤 표정으로 어떻게 서 있었는지 다 기억날 정도다. 내 삶보다 그들의 삶이 더 눈물겹다. 그러나 우리의 들판이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럽고 잔인한 것만은 아니었다. 겨울 들판에서 군불을 피워 손을 쬐며 같이 따스했고, 같이 나눠 먹던 메밀죽이나 밀가루 수제비는 잠깐 허기진 배를 채우기에 충분했다. 아주 가끔 우리는 들판에서 자신들의 생을 잠깐 반짝였던 것 같다. 그게 농부의 삶이고, 나는 농부로서의 내 삶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 글의 배경은 제주도다,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과 표선면, 그리고 제주시 구좌읍의 경작지들이 배경이고, 그 밭에 서 있던 사람들이 등장인물이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채소를 심고 키우며 위기를 극복하고 작물을 수확해 사람들과 나누어 가지는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15년 동안 그렇게 심고 수확하고 심고 수확하는 일들이 하나의 점처럼 찍혀있고, 그 점들이 선을 이루고 곡선을 그려 나중에는 하나의 형상을 갖추는 작업처럼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의 이야기다. 마치 하나의 예술 작품 같은. 그러나 주인공은 없다. 그 사람이 나였든 당신의 어머니였든, 혹은 당신의 할아버지였든 그 들판에 서 있던 사람이었을 뿐 유명 배우는 없다. 그리고 다시 당신이 이 들판으로 오게 된다면 당신이 주인공이 된다.


농사는 종합예술이다. 사람이 들판에서 하나의 붓처럼 움직이는 그림이고, 한 명의 배우처럼 동선을 그리며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장면이고, 당신의 마음속에 쓰이는 문장을 쓰는 불펜이다. 농부들은 1g도 되지 않는 씨앗으로 그 천배인 1kg쯤 되는 채소를 키워낼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무이한 사람들이다. 인간이 발명한 어떤 기술로도 1g짜리 물체를 1000g으로 키워내지 못한다. 그것이 동물이라면 축산업이고, 그것이 나무라면 임업이고, 그것이 물고기라면 수산업이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더럽고 지저분하며 힘든 3대 기피산업 농업과 임업 수산업이 바로 그런 산업이다. 좋은 말로 표현하면 들판과 숲 바다다. 그 안에서는 인간이 인간을 뛰어넘는 어떤 순간들이 있다. 당신의 작은 손이 만드는 마법이다.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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