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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장 Jan 24. 2024

주택가 지하(월 35만 원)에서 시작한 장사..


6년 정도 전에 제가 처음 창업했던 순간부터

지금에 오기까지의 다양한 에피소드들과

이야기들을 들려보고자 이 글을 씁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많은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나른한 일요일 오후 별다방에서 출근 준비와 독서를 할 겸

커피를 한잔 마시고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통창 유리 앞에 자리를 하고 

한동안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바이크를 타고 전국 곳곳을 누비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배가 고파 바이크를 멈추고

카페에 베이글과 커피를 한잔하면서 인터넷을 보고 있었는데


그 당시, 나는 카페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부동산을 보고 있었다.

동네도 아직 정하지 않았고, 

필요한 평수와, 비즈니스 모델도 잡아 놓고 있지 않았터라

서울 카테고리의 매물을 전부다 하나하나 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1000/35 지하 25평"라는 글이 눈에 지나쳤다.

사실 여기서 35만 원이라는 월세가 너무나 매력적이었는데,


35만 원이라는 월세는 

사실 내가 평소에 조금만 아껴 써도 충당가능한 금액이었고,

여기서 매장을 하지 않더라도, 

카페를 영업하면서 사무실, 창고로만 써도

충분히 매력적인 금액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피터팬 보고 연락드렸어요, 

혹시 매물 볼 수 있을지 해서요"


"네 아직 매물 있습니다."


"5월 13일 찾아봬도 괜찮으신가요?"


"네 괜찮아요, 편하게 오세요."


"네 그럼 그날 찾아뵙겠습니다, 문자로 주소만 남겨주세요"


뭔가 예감이 좋았고 설렜다.


5월 13일


안내받은 주소로 찾아가니

1층에는 오래된 세탁소와 이발소가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서 인사를 드리니

두 부부의 밝은 인사와 강아지 세 마리가 나를 반겨 주었다.

알고 보니 온라인으로 강아지 용품을 파는 곳이었고,

컴퓨터 자리를 제외한 모든 공간은 창고로 사용되고 있었다.


사실 그냥 창고였다. 강아지 냄새도 많이 나고 

곰팡이 냄새도 많이 났었다.

전체적으로 관리가 너무 안되어있었다.


'괜히 35만 원이 아니었네......'

'그래도 넓은 평수가 너무나 마음에 드네,

인테리어 같은 부분은 공사를 하면 되지 않을까?' 


사실 내 성격 자체가 좀 무모한 도전을 좋아하기도 하고,

큰 고민도 작은 고민도 적당한 고민만 하고 결정을 하는 스타일이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에라 모르겠다. 일단 하자 어떻게든 되겠지 못 먹어도 고!'

보자마자 한 시간 안에 가계약금을 걸었다.


사실, 이 결정에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 것은,

그때즈음 인상 깊게 읽었던 마케팅 서적이었다,

세스고딘의 '보랏빛 소가 온다'라는 책이었는데 


요약하자면

사람들은 넓은 평야에 보라색 소가 있으면 

절대 눈을 떼지 못한다.

있어선 안될 것이 있어선 안될 곳에 존재한다면 

사람들은 궁금해하고 스스로 발걸음을 할 것이다.

라는 내용인데,


내가 세를 얻으려고 했던 주택가 지하 1층이 

보랏빛 황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권이라곤 눈을 씻고 좌우를 둘러봐도 없었다.

온통 원룸과 주택으로만 둘러 쌓인 곳이었고,

원룸에 살고 있는 젊은 직장인들은 낮에는 대부분 출근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발걸음을 하는 곳이었다.


 '요즘은 휴대폰으로 검색만 하면

다 찾아오는데 상권이 뭐가 중요해'

라는 무모한 생각으로 월 35만 원에 도장을 찍었다. 

(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사실 상권은 굉장히 중요했다..)


미친 Z급 상권, 세탁소, 이발소 지하, 

곰팡이 투성이의 창고에서 법적인 임대인이 되었다.



위에도 말하긴 했지만, 나는 꽤나 대책 없는 편이었다.

일단 컴퓨터도 가져다 놓고, 프린트도 설치하고 사무공간을 꾸렸다.

혹시 모르니 잠잘 수 있는 공간도 만들었다.


'자 이제부터 내가 뭘 할지 구상해 볼까?'

(대책이 없어도 심하게 없긴 하다)


여러 마케팅서적과 카페 관련 책들,

온갖 온라인에 떠도는 정보들을 전부 정리해 나갔다.


대부분 다 좋은 내용이었지만

공통된 것이 딱 한 가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바로 '컨셉'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하도 이야기를 많이 하기 때문에

아마도 브랜드 컨셉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에 올인해 보기로 했다.

(제대로 된 컨셉만이 나를 구원해 줄 구세주라 생각했다.)


컨셉을 구상하기 시작했는데 

컨셉 구상이라는 것도 말이 쉽지만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정말 정말 하기 어렵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뭘 정한다고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발전시킨다는 건 더욱더 어렵다.

나 또한 그랬다.


"그래 컨셉 중요하지... 근데 무슨 컨셉을 해야 할까?" ,

"사람들이 좋아하는 컨셉을 해야 하나?", 

"내가 좋아하는 컨셉을 해야 하나?"


해야 할 업무가 정해져 있지 않은 나는 출퇴근 시간이 없었고, 

고통스럽지만(?) 자유로운 일상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대학교시절 일기장이 눈에 들어왔는데,

차근차근 그때의 나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고민이 있거나, 심적으로 지치거나, 머리가 어지러울 때면

동네 카페를 찾아다녔다. 책을 한 권 들고.


책을 읽지 않을지 언정 앞에만 두고 있어도 

마음이 편해진다는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시절, 21살 나는 커피 한잔 시켜 놓고 

머릿속으로, 어떨 때는 펜으로 

나의 고민을 정리해 나갔었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나갔었다.


누구와의 대화보다는 

마음속의 나에게 묻고 답하는 시간들이었는데

나에게는 최고의 힐링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 일기를 읽으며 '유레카!'를 외쳤다.


이것만큼 완벽한 컨셉이 어딨 을까?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시간을 잘 보낼 수 있게 도와주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많은 걸 극복하고 위로받았던 거처럼

사람들도 이 공간과 시간 안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위로받는

자신과 대화를 통해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러한 시간들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행복한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이 좀 더 밝아질 수 있지 않을까?' 

(몰입하다 보니 우주평화주의자가 돼있었다/과몰입주의)


우리는 사회적인 존재이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만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는 어렵고 힘들다.

개인의 근심과 걱정, 스트레스가 많다면 더욱 어렵다.


개인적인 시간들을 통해 

나에게 주어진 고민거리들을 잘 이겨내면

사회적인 활동들도 빛이 날 것이다.


이런 시간을 누군가에게 제공하고, 

그 사람의 마음에 평안을 얻는다면 

엄청나게 보람찬 일이지 않을까?


어떤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정리되자

갑자기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 같았다.


가게 이름도 바로 정해졌다.


이렇게 해서 나의 공간의 컨셉의 기초가 다져졌다.

생각보다 쉬웠지만, 생각보다 우연적이었고,

우연적인 기회가 없었다면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많은 예비 창업자분, 기 창업자분들은 컨셉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컨셉은 본인의 경험에서 비롯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첫 사업이라면 더욱더 본인이 직접 느꼈던 것이든

앞으로 느끼고 싶은 것이든 본인이 관심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지속 가능하게 꾸준히 밀고 나갈 수 있으며, 

고객들과의 소통도 한결 쉬워진다.


주택가 지하에 곰팡이핀 공간에 카페가 들어선다.


개인적인 시간이 필요한 이들에게 공간을 제공하고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카페가 들어설 것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내가 인테리어를 해봤나.... 인테리어 단가를 아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어디서 뭘 알아봐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주변에 아는 사람도 없고 말이다.


모든 게 끝났다 생각했지만

구상만 끝났지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다..

또다시 불안이 엄습해 온다...


글을 작성하다 보니 오래된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다음 편에도 우당탕탕 대책 없는 창업기에 대해 적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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