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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어주는 아빠 Oct 27. 2023

I don`t know about tomtrrow

but ,   I know Who holds tomorrow

2023. 1. 6.     


  병원에서 아이의 검진을 마치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 가는 길에 기도실이 눈에 띄었다.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아이에게 “아빠 기도 짧은 거 알잖아. 금방 끝낼게” 라 달래고는 서둘러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지만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기도에도 수요와 공급의 곡선과 같은 법칙이 있는 건지 기도가 절실할 때 – 기도가 절실할 때와 절실하지 않을 때가 있겠냐마는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관점에서 어려움·고통·갈급함이 커질 때 기도 또한 더욱 절실해지지 않은가 – 오히려 기도는 잘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 기도가 안 나와요, 할 말이 없어요, 난 몰라요”라고 머릿속으로 생각했고, 순간 마지막 말 ‘난 몰라요’는 나를 옛 추억의 찬양으로 이끌었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

험한 이 길 걸어가도 끝은 없고 곤해요

주님 예수 팔 내미사 내 손 잡아 주소서…     


  어린 시절 어머니가 참 많이도 불렀던 찬양이기에 반복적 노출로 각인되어 기억의 한 구석에 머물러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기도답지 않은 나의 한마디 ‘난 몰라요’는 내 머릿속 저장소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그 찬양을 자동 재생시키는 주문이 되었던 것 같다. 

  찬양이란 곡조 있는 기도라 하지 않던가! 나는 눈을 감은 채 머릿속에서 술술 흘러나오는 찬양의 가사를 읊조렸고, 마지막에 ‘아멘’만 덧붙여 기도를 끝냈다. 이 모든 과정은 뜨거운 물을 부은 사발면이 채 익지 않을 만큼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기에, 기도실을 나서는 아이는 “역시 아빠 기도는 짧아서 좋아”라며 나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돌아오는 길 그 찬양은 계속 내 주변을 맴돌았고, 나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컴퓨터를 켜서 찬양을 검색했다. 가사의 첫 소절을 제목으로 삼는 한국교회 찬양의 관행대로 – 주제와 동떨어진 경우가 많은데다, 검색의 편의성에만 치중한 매우 문제점 많은 악습이라 여겨진다 - 「내일 일은 난 몰라요」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이 찬양의 원래 제목은 「I know Who holds tomorrow(Ira F. Stanphill, 1950)」였다. 너무나도 인간적인 한글 제목에 비해 원래의 제목은 참으로 신앙적임을 알 수 있다. 당연히 내일 일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사실 예측 가능한 내일을 꿈꾸며 이를 위해 노력한다. 좋은 대학과 직장이라는 ‘내일’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집과 자동차라는 ‘내일’을 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 하지만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로 인해 계획했던 ‘내일’이 어그러질 때가 되어서야 우리는 ‘내일 일은 난 몰라요’라고 말 할수 밖에 없다. 인생이 만만치 않음을 뼈저리게 체험하고 난 후의 절절한 고백이다. 하지만 이 고백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 세상 그 누구라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 당연한 말이기 때문이다. 불교 신자도, 이슬람 신자도, 종교가 없는 사람이라도 ‘내일 일은 난 몰라요’라는 말에 이견을 다는 사람은 - ‘난 알아요’라 노래한 서태지만 빼고 -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신앙인이라면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도대체 내일 일은 누가 아냐고 말이다. 그 해답은 영어로 쓰여진 이 곡의 원래 제목「I know Who holds tomorrow」가 확실히 알려준다. 

  누가 내일을 주관하는지 알고 있다고 고백한 원곡의 가사를 살펴보자     


… I don`t worry over the future 

    For I know what Jesus said …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알기에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는 가사에서 나는 다음의 성경 말씀을 떠올렸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 6:34)”     


  이 말씀의 뜻이 글자 그대로 오늘 걱정은 오늘, 내일 걱정은 내일 하라는 말이 아님은 예수님의 직전 말씀에 잘 드러난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 6:31-32)”     


  결국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미래는 물론이고 모든 필요를 아시기에 내일에 관한 걱정은 아예 하지 말라고 명하신다. 사실 신앙생활 좀 한 사람이라면 이 말씀을 모를 리가 없다. 나 또한 수없이 읽고 들었다. 그러나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임을 깨닫기 전까지는 그저 좋은 말씀, 격언, 경구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찬양을 통해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래, 네 고백대로 너는 내일 일을 알 수 없어. 

하지만 내일을 누가 주관하는지 알게 되었잖아.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겠니?

가사의 다음 소절을 읽어봐.”     


  이어지는 가사는 다음과 같다.     


… And today I`ll walk beside Him

    For He knows what is ahead …     


  내일은 경험하지 않은 미래이기에 여전히 막연하기만 하다. ‘Back to the future’ 영화에서 미래를 다녀온 죠지 맥플라이가 장차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우리에게 말해준다 한들 선뜻 믿겠는가? 물론 영화배우를 감히 하나님과 비교할 수 있겠냐마는, 연약한 믿음 때문에 내 마음속엔 여전히 불안함이 활개 치고 있을 뿐, 확신은 INFJ 친구처럼 구석에서 조용히 앉아 눈치만 보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면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하게 내려주시는 하나님께서 시기적절하게 찬양으로 나에게 말씀하시고 은혜를 주셨다. 그뿐 아니라 모든 필요까지 채워주셨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2023년도 이를 의지하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실망도 낙심도 하겠지만 그때에는 또 적당한 위로와 은혜를 주시지 않겠는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내일 일을 가장 잘 아시는, 아니 내일 자체를 주관하시는 분이 나를 어디로, 어떻게 인도하실지 기대하며 그 곁에 잘 붙어있어 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RLgUtajD6AI&list=PLSZEQyvjRPVKSA4BOwPrKlWIAZrNdx3C4&index=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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