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우리는 죽음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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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봉수

■ 조금은 하찮은 ‘질문’과 나름 꽤 괜찮은 ‘대답’


첫 번째 단편소설을 끝내고, 그동안 하나하나 쌓여간 생각을 조금은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두 번째 단편소설을 시작하기 전에 에세이를 다시 써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일상의 생각을 담은 이런 에세이를 쓰는 게 그리웠던 것도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에세이를 쓰면 좋을까? 라는 가벼운 고민도 함께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노트북의 한 페이지를 열고 사진을 고르고 그리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명확해지는 '방향'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질문과 대답에 대해서 글을 쓰자." 라는 방향입니다. 하지만, 이는 그냥의 질문과 그냥의 대답이 아닙니다.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 '하찮은 질문'에 대한 '괜찮은 대답'을 쓰고 싶었습니다.


일상을 보내면서 누군가가 저에게 물어보았던 질문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 어떤 질문은 적절한 대답을 가졌지만 어떤 질문은 대답을 가지지 못한 채, 이내 어딘가로 잊혀져 버렸습니다. 아마도 그건, 하찮은 질문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찮은 질문에게 꽤 괜찮은 구석을 가진 대답을 이제는 주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생각이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 흘러나와 저에게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금은 늦었지만 '나름의 꽤 괜찮은 대답'을 이제는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적어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담아, 다시 한번 나름의 에세이를 씁니다.


"하찮은 질문과 괜찮은 대답에 대해서."


'하찮은' 이라고 표현을 했지만 이렇게 시간을 들여 생각을 해보니, '중요한' 질문이었네요. 마치, 하얗게 일어나는 파도의 모습이 바다의 전부는 아니지만 꽤 아름다운 것처럼요.


■ 우리는 죽음에 더 가까운 상태일까?


우연히 물리학자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모든 내용이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인상 깊게 다가온 것이 있다면 우리는 '죽음에 더 까깝다' 라는 그의 해석이었습니다.


이를 풀어서 설명하자면, 우주를 구성하는 대부분은 (아마도 99% 이상일 것 같습니다.) 생명을 가지지 못한 상태, 즉 죽음에 가까운 상태로 존재를 한다는 것입니다. 우주의 물질인 양성자와 중성자 등 수많은 입자들 그리고 행성과 같은 존재들은 생명이라고 표현하기에는 그 한계가 있습니다.


물론 그 안에서 생태계를 구성하며 살아 숨 쉬는 인간, 동물 그리고 식물 등의 존재들은 분명히 생명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그 수는 우주 전체에 비하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그리고 이런 존재들 또한 무한한 생명을 가지지 않습니다. 모두 유한한 길이를 가진 생명을 부여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의 해석은 맞는 것도 같습니다. 우주를 구성하는 대부분은 이미 죽어있거나 그나마 생명을 부여받은 존재들 또한 결과론적으로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상태라는 조금은 무서운 결말입니다.


암담하고 슬프지만 저는 동의를 합니다. 차갑게 보이는 그의 해석에.



개인적으로 우리의 신체 또한 이런 죽음의 상태에 최적화되어 설계(Designed)되지는 않았을까? 합니다.


어릴 때에는 하루하루 전부 기억이 나고 그만큼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는 것 같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기억이 안 날 때가 간혹 있습니다.


"세월이 화살과 같다."


라는 아빠와 엄마의 말이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세월이란 참...그렇죠?’ 를 논하기에는 아직은 어린 나이지만(어디까지나 철저히 주관적인 생각을 가진 33세의 의견일 뿐입니다) 그런 생각이 자주 드는 요즘입니다.


"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까?"


어느 한 과학 잡지에 이에 대한 좋은 설명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에는 신체의 에너지도 넘치고 그만큼 세포가 활성화되어 기억을 저장하는 공간인 '기억 주머니'가 굉장히 활발하게 움직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루하루의 일상을 주머니에 가득 담아 저장을 합니다.


그렇게 쌓여간 기억 주머니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리고 주머니들 사이의 간격이 좁으면 좁을수록 우리는 하루를 더욱더 길게 기억을 하게 됩니다. 그만큼 다양한 일상들이 저장되었고 그걸 다 기억하자니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신체의 에너지가 줄어들고 세포의 활성화 정도 또한 이에 맞춰서 낮아지면, 모든 일상을 저장하기보다는 이전에 없었던 혹은 경험해보지 못한 일상에 한하여 하나의 이벤트로써 저장을 하게 됩니다.


이로써 기억 주머니의 수는 이전에 비해서 줄어들고 주머니들 사이의 간격은 자연스럽게 넓어집니다. 어쩌면 어떤 하루는 1개의 주머니도 생기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하루는 슬프지만 기억이 나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고통일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한없이 늙어가는데 기억 주머니는 예전과 같이 활발하다면, 시간의 더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괴롭게 다가올지도 모르겠어요. 그건 현실이니까요.


■ 안도하며 감사를 해야 하는 일인 걸까?


거대한 우주의 대부분은 이미 죽어있는 상태,

그나마 생명을 부여받은 우리 또한 죽음을 향하고,

그리고 우리는 그런 죽음을 위해 최적화 되어있다.


이런 사실에 안도하며 감사해야만 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다가옵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에이, 이미 대부분은 죽어있고 우리도 곧 죽을 거고 그리고 우리도 그런 죽음에 맞춰서 디자인되어있다며? 뭐가 문제야, 죽는 건 전혀 아쉽지 않은 거네." 라는 마음입니다.


물론, 저도 개인적으로 100% 틀린 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괜찮다면 이렇게 바라보았으면(혹은 바라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유한한 생명이지만 그런 생명을 부여받은 1%가 우리에게 있다고. 어쩌면 우리가 보내는 이 일상이라는 것은, 창 밖을 통해 불어오는 바람의 냄새와 조용히 들려오는 숲의 흔들림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일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렇게 유한한 생명에 대해서 조금은 더 애착을 가지셨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죽음은 과학자의 말처럼 차갑지만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죽음을 향해 우리 또한 나아가고 있다는 것도 여전히 사실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또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좋은 기억을 남기며 살아갈지 아니면 주어진 죽음에 안도하며 여기에 맞춰서 살아갈지는 어디까지나 선택의 문제일 것 같습니다.




물리학자의 해석처럼 죽음이라는 상태에 더 가까운 우리겠지만, 그 유한함 안에는 우리의 아름다움이 한없이 저장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있어 우리 스스로 조금은 더 애착을 갖기를, 조금은 더 좋은 기억이 남겨지기를.


그래서, 우리는 죽음에 더 가깝다.


그러나,


그 사실에 대한 선택 또한 우리에게 더 가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