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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게를 지닌, 600장의 '사진'과 6권의 '앨범'
무더웠던 주말, 라탄풍의 여유를 가진 한적한 카페에 앉아 잠시나마 ‘시간여행’을 떠났습니다.
2017년 10월 31일을 시작으로 노트북의 폴더 안에 저장된 수천 장의 사진들을 정리하여 앨범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600장의 사진을 통해 총 6권의 앨범이 책장에 놓여졌다는 사실만이 주말에 떠난 시간여행의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진과 그 앨범안에는 각각의 기억이 정겹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0과 1의 조합으로만 존재했던 디지털(Digital)이 물리적인 형태와 현실적인 무게를 가진 아날로그(Analog)로 변환되었다는 딱딱한 사실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거기에 들어있었던 것 같습니다.
명확히 설명은 되지 않지만, 그건 아마도 지금보다 더 긴 시간이 흐르고 나서 우연한 기회에 이 앨범을 다시 보게 된다면 어렴풋하게 알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가 온다면, 이 글을 다시 읽어보고 적절한 단어와 문장으로 설명을 해보고도 싶습니다.
"디지털에서 아날로그로 남겨진 그런 사진, 그런 시간, 그런 공간 그리고 그런 느낌을."
이런 수고로움에 대해서 꽤나 다양한 의견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이제는 모든 것을 디지털의 숫자를 통해 기록하고 저장할 수 있는 그런 효율적인 세상에 살고 있는데 굳이 이렇게 시간을 들여서 앨범을 만들어야하나? 라는 ‘비효율성’ 때문입니다.
"N 드라이버에 저장만 하면 되는데, 괜히 불편하게."
"용량이 큰 핸드폰이면 한방에 저장할 수 있어."
"1TB의 USB 1개면 수만 장의 사진도 가능한데."
와 같은 효율적인 의견들입니다.
저 또한 회사 업무에 필요한 모든 파일을 출력해서 페이퍼(Paper)로 가지고 있기보다는 파일로 저장을 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얼마나 편하고 간단한지 충분히 공감을 합니다.
그래서 앨범을 만들기 전에 솔직하게, USB를 살까? 아니면 클라우드의 용량을 높일까? 등의 고민을 한 것도 물론 사실입니다.
하지만, 수고스러운 이 6권의 앨범에는 나름의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 효율성의 시대, 나는 시시한 일을 한 것일까?
아빠와 엄마는 그 당시에 가장 흔했던 방식인 '중매'를 통해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앨범에 들어있는 모든 사진들의 시작은 결혼식에 꽤 가까웠습니다.
즉, 연애를 할 때의 사진은 앨범 안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연하기도 합니다.
주선자와의 어떤 약속 그리고 정해진 만남을 통해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연애의 시간은 상대적으로 짧았을 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사진을 남기는 기술 자체가 부족하기도 했을 겁니다. 또한 필름을 감고 뷰파인더를 통해 피사체를 확인하고 셔터를 누르는 모든 과정 또한 상당히 불편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빠와 엄마의 앨범을 보고 '부족함' 이나 '어색함'을 느껴서 “나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고 600장의 사진을 인화한 것은 아닙니다. 부모님의 앨범을 보면서 어디까지나 기분 좋은 웃음이 났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6권의 앨범을 만들고자 한 것은 개인적인 부분에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시간이 그리고 그 공간이 물리적인 형태와 현실적인 무게감을 가지고 기억될 수 있다면, 그 시작점은 우리가 처음 만난 시점에 가깝기를 너무나 바랬습니다.
결혼식의 사진도 물론 좋지만 가능하다면 연애의 순간 그리고 그 처음이 그곳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그때,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미래의 자녀들이(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너무 앞서간 생각이라 조금은 멋쩍기도 합니다만.) 우리의 앨범을 보면서 아빠와 엄마의 앨범을 봤던 과거의 저와 같이 기분 좋게 웃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2017년, 2018년, 2019년 그리고 2020년의 여름은 이랬구나. 어휴 촌스러워."
라며 미래의 자녀들이 말해도 저는 그 사진이, 그런 그때의 사진이 여전히 좋다고 말할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나 사진, 그 자체로 너무 좋기 때문입니다.
효율성의 시대를 중요한 방향으로 설정하고 살아가는 우리지만, 저는 가끔 이런 아날로그를 어딘가에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어쩌면 이것도 욕심일까요? 때로는 욕심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회사에 있어서도 출력을 해서 보고를 하면 직관적이고 너무 편하겠지만, A4 용지를 아끼고 환경오염을 막고자 하는 그런 큰 방향으로 보자면 이는 시대적인 흐름에 반하는 행동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런 아날로그가 사라지는 것 또한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은 아쉽지만요.)
그러나,
가능하다면, 개인적인 영역에서 적당한 무게와 형태를 가진 아날로그를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때로는, 비효율적인 그 ‘과정’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라탄풍의 한적한 카페에 앉아 지원이와 함께 사진을 바라보았던 그 순간은 0과 1의 조합을 가진 디지털로는 아무래도 온전한 해석이 안되니까요. 그런 해석할 수 없는 의미가 ‘거기’에는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