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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땅별 Feb 14. 2024

기숙사 짐 빼기 대소동

정기 퇴실날 느낀 체험

오늘은 기숙사 정기 퇴실 날이었다. 따라서 짐을 빼야 했다. 그제부터 짐을 싸기 시작했다. 어제 짐을 싸면서 부랴부랴 택배도 신청했는데 접수가 불가능했다. 설 연휴 기간을 맞아 접수 자체가 안 됐다. 낭패였다. 이리저리 고민하던 중 친구한테 연락했다. 친구가 흔쾌히 동의했다. 차를 타고 내 짐을 본가까지 옮겨다 주기로 했다. 자기는 시간이 남는다나? 고마웠다. 차는 쏘카를 대여했다. 친구는 짐 사진을 찍어달란다. 내 짐이 얼마인지 가늠하기 위해서다. 그는 사진을 보더니 자기가 알아서 규격에 맞는 차를 부른다고 했다. 일단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된 셈이었다.


오늘 저녁은 정신없이 바빴다. 퇴근하자마자 방 청소를 시작해야 했고, 못 담은 짐을 박스에 넣어야 했다. 퇴근 후 기숙사에 돌아오니 룸메 형이 짐을 싸고 있었다. 이게 웬걸? 청소도 거의 다 되어있었다. 놀란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냥 자기가 청소했다고 언급하는 형이었다. 이 형, 츤데레잖아?


친구가 오후 7시 반에 온다고 했다. 시간을 보니 6시 반이었다. 남은 시간은 1시간. 촉박했다. 조급함을 느끼며 짐을 싸야 했다. 청소도구를 빌려야 했고, 테이프도 수레도 빌려야 했다. 할 게 많았다. 행정실 선생님이 왜 이렇게 급하냐고 그런다. 아, 마음을 차분히 먹어야겠다. 쓸데없이 생각이 많아졌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문제는 해결이 안 되고 공회전하는데 말이다.


다시 차분하게, 여유를 가지고 짐을 쌌다. 짐을 싸다 보니 버릴 게 많았다. 이거 어떡하지 싶었는데 형이 몇 개는 대신 버려줬다. 겸사겸사랜다. 행정실 선생님이 내 맘을 대신 전달해 줬다. 우리 둘이 안 친한 줄 알았는데, 같이 짐도 싸주고 같은 날 나가니 다시 보인다고. 아, 난 룸메형이랑 어느새 의리를 형성했나 보다. 친절에 난 또 쓸데없이 감수성 수치가 높아졌다.


친구가 예상보다 늦은 7시 48분에 도착했다. 천천히 짐을 갖고 내려 오란다. 하지만 난 또 괜히 조급해졌다. 얼른 짐 몇 개를 주차장 근처에 두었다. 짐을 두자마자 친구가 짐을 트렁크에 실는다. 어? 내가 하려고 했는데. 미안했다. 다만 친구는 부담 갖지 말란다. 그냥 자기도 돕는단다. 차 운전만 하려고 온 건 아니란다. 또다시 감동했다.


다만 감상에 빠질 겨를이 없었다. 퇴실 점검을 해야 했다. 퇴실 점검을 실시했다. 행정실 선생님은 아량을 베풀어 우리들 방 군데군데 더러운 부분이 있었지만, 그냥 넘어가줬다. 1년 동안 수고 많았단다. 조심히 들어가라는 인사도 하셨다. 룸메 형이랑도 헤어졌다. 뜨거운 안녕까지는 아니고, 그냥 조심히 들어가라는 말을 하면서. 기숙사를 떠나면서 1년간 기숙사에서 맺었던 인연이 떠올랐다. 이 모든 인연이 회자정리 아니었을까. 인연은 원래 이런 것이다. 헤어진 후 잘 살겠지 떠올리는 식이다. 한때는 섭섭했지만 이제는 안다. 이게 최선의 배려인 것을.


타인의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다 보면 알 수 있는 게 있다. 그의 취향은 무엇인지, 어떤 향기를 좋아하는지, 깔끔한 걸 선호하는지 혹은 정리되지 않아도 별 상관없는지 등이다. 빌린 차였지만 친구의 취향을 느낄 수 있었다. 플레이리스트엔 잔잔한 재즈와 약간의 운율감을 느낄 수 있는 블루스가 흘러나왔다.


나는 물었다. "언제부터 이 노래 모아 왔어?" 괄호 열고, '너의 취향이 멋있다'라는 의미였다. 다시 괄호 닫고. 다만 친구는 T라 내 말의 저의를 파악하지 못했다. 이런, 난 분명 존경의 감정을 담아서 질문했는데. 반언어적 표현만으론 의미 전달이 안 되었나 보다. 친구는 그냥 옛날부터 모았다고 했다. 대략 5~6년 전부터라고. 다시, 나는 친구의 T를 익살스럽게 지적하며 곡 선곡 능력을 칭찬했다. 그제야 원하던 반응을 해줬다. 차 안에서 오고 간 대화는 대략 이런 식이었다. 대화의 빈도도 적었다. 침묵이 차 안을 지배했으나 우리는 편안했다. 나는 친구를 아니까, 그의 무뚝뚝함을 잘 아니까 침묵에 취할 수 있었다.


최근에 그 친구를 만났던 건 1년 전이었다. 나름대로 시간이 흘러 소원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에게 무리한 부탁을 했다. 운전할 수 있고 본가 근처에 사는 사람은 그밖에 없던 터라 그랬다. 고맙게도 그는 내 제안을 들어줬다. 내가 그를 안 지는 13년이 흘렀다. 쌓아온 인연만큼 그와 나눌 말이 많겠지만, 동창생들이 결국 나누는 대화는 학창 시절의 추억담이다.


그가 말하길 나는 늘 한결같다고 했다. 내 모교인 OO고의 개그맨이라고 했다. 나는 억울했다. 진지한 모습도 많았는데. 그는 단호했다. 난 과거엔 부정했겠지만 이젠 내려놓았다. 그래, 나 웃긴 사람 맞는 거 같다. 여유롭게 응수했으나, 친구는 별 신경도 안 썼다. 그게 얘의 매력이었지. 호수 같은 잔잔한 마음의 소유자. 때론 돌덩이 같아서 아프기도 하지만. 그래서 내가 얘를 존경한다. 차분하거든. 정반대의 매력이라 그런가.


다른 동창생 얘기도 튀어나왔다. 친구는 며칠 전 A에게 연락받았다고 한다. 얼굴 한번 보자면서 덕담을 나누었단다. 그 친구를 안 본 지도 어언 2년이 흘렀다. 그 친구를 생각하면 야자시간이 떠오른다. 늘 걔랑 놀았던 거 같은데, 요즘엔 인턴을 한다더라. 확실히 우리가 나이를 먹긴 했나 보다. 다른 이름도 많이 거론됐다. 모두 다 같이 모인 지도 벌써 3년이 흘렀다. 나도 그들이 그리웠기에 나중에 다 같이 모이자고 친구와 기약 없는 약속을 했다.


이윽고 차가 집에 도착했다. 짐은 내가 내리겠다는 만류에도 친구는 꿋꿋이 도와줬다. 나중에 자기 바쁠 때 도와달라는 언급과 함께 말이다. 난 밥 한번 사주기로 했다. 다만 걔가 다니는 학교는 안성인데, 안성까지 짐을 옮기는 건 불가능하다고 나는 말했다. 친구가 피식 웃는다. 아, 나 또 개그맨 행동했나?


인연이란 부질없으면서도 매달리게 하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다만 그립고 보고 싶으나 물리적으로 어렵기에, 그리고 그 만남이 지속될 거라는 다짐도 종종 거짓말이 되기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가끔 볼뿐이다. 이게 인생인 걸까? 새로운 터에 정착하면 새로운 사람이 나타날 거다. 그러다가 옛 친구들에게 연락이 와서 결혼식에 가는 거겠지, 다시 일상으로 복귀해 잊어버리다 부고 소식을 듣는 거겠지. 그렇게 슬퍼하다가 사람을 사람으로 잊는 거겠지. 이런 식으로 만족하며 살다 죽는 거겠지.  


옛날엔 이런 삶이 부질없었다만 이젠 재밌다. 거창한 체험보다는 잔잔한 행복을 원한다. 늘 그랬듯이, 오늘도 난 깨달음을 얻었다. 남들 다 아는 깨달음이라 웃기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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