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의문했다. 자연사도 결국 자살이 아닌가 하고. 비루한 생을 유지하기 위해 인내하고 덧없이 참아야 했다. 도망칠 순 없었다. 그것 말고는 다른 길도 없었다.
지독한 생이다. 먹어야만 했다. 육식(肉食)해야 했다. 정복하고, 지배하고, 무정해져야 했다. 나의 생을 안위하기 위해, 보존하기 위해, 타의 것을 제물 삼아야 했다.
짓눌리고, 으스러트리며 물컹한 덩어리들을(심지어 그것은 나일지도 모른다) 씹어 삼켜야만 했다. 수난은 도처에 범람했고, 자욱한 생의 끈질김은 지독히도 질겼다. 폭력은 만연했다. 내 손으로, 말로, 시선으로 죽여야 했다. 죽임 당해야 했고, 고통을 뼛속으로 삽입해야 했다. 뼈밖으로 내뱉는 행위는 또 다른 살행이었다.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세계. 세상은 유토피아가 아니다. 비정함이 세상이었다. 왜 우리는 미숙하게 세상을 오독하는, 긍정적으로 오독하는 창조적 행위가 어려운가. 생이 이토록 모질기에, 우리는 불가해한 생을 성실히 살아내다, 스스로 해치며 끝내는 것인가.
이토록 불쌍한 것이 생이라니. 태어나지 않았다면 참 좋았을 것이 생이라니. 소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행동조차도 죄가 될 수 있는 세상이라니. 난 어떤 식으로 생을 유지해야 하는가.
종말로 가는 길에도 희망이 있다면, 철저한 오만과 아집으로 희망을 재해석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식으로든 이 불가해한 생에서 긍정적으로 창조하려고 몸부림을 칠 것인가…
생존이 본질적이라면 자그마한 기쁨과 인간적인 가치를 희구하려는 초월적 노력은 생존 그 이상의 가치를 제공해 줄 것이다. 설령 그것이 아닐지라도 그렇게 믿고, 정당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 삶의 구역감을 참을 수 있다.
나는 앞으로도 찌르고, 삼키고, 시선으로 죽이겠지만 그 빈도와 강도를 줄일 것이다. 해소할 수 없더라도
다만 내 앞에 놓인 것들을 그저 품어주는 존재가 되어야겠다. 나라는 존재가 위안이 되기를, 소망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