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여자의 결혼 이야기 14
그 남자는 나를 8인실 병실에 데려다주고는 회사에 급한일이 있다고 가버렸다.
아침 8시인데도 산모들은 다 누워있었다. 아주 조용하게...
알고 보니 나 빼고 다들 제왕절개를 한 산모들이었다.
그녀들은 모두 진통제를 달고서 잠들어 있었다.
그 옆에는 하나같이 남편들이 간이침대에서 쪼그려 앉아 있거나 누워있었다.
내 침대 바로 왼쪽 편에 있는 부부는 참으로 예뻤다.
나보다 5살이나 어려서 그냥 동생이라고 불렀다.
말투가 굉장히 예쁘던 동생의 남편은 참 다정다감했다.
부인의 식판을 옮길 때 꼭 나의 식판도 같이 가져다주고 치워주었다.
내가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서면 벌떡 일어나서 나의 링거줄을 밀어주었다.
내가 좌욕실 갈 때도 별일 없으면 데려다주었다.
나는 3일째 퇴원을 하게 되었는데 드디어 신랑이 처음으로 병실에 왔다.
"언니... 신랑이 있었구나!! 너무 다행이다."
옆에 친해졌던 동생이 놀래면서 말했다.
"응? 왜? 나 혼자인 줄 알았어?"
나는 웃으면서 물었다.
"응... 그래서 오빠한테 언니 좀 도와주라고 자꾸 부추겼지"
어쩐지 너무 나한테 친절하게 잘해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동생이 오해할만했다.
나는 입원해 있는 3일 내내 혼자였다.
나 혼자서만 덩그러니...
혼자서 잠을 잤다.
혼자서 밥을 먹었다.
혼자서 아기도 보러 갔다.
친정엄마는 첫째를 돌보느라...
시어머님은 조카를 돌보느라...
친구들과 지인들에게는 알리지 않았으니...
다 괜찮았다.
그럴 수 있다고 이해했지만.... 그 남자는?
내가 둘째를 낳은 시기는 바로 연말이 코앞이었다.
출산한 첫째 날은 중국에서 친한 선배가 귀국을 했다네..
출산한 둘째 날은 중요한 모임에 총무라서 빠질 수가 없다네..
어이가 없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둘째와 조리원에서 집으로 오게 되었다.
둘째는 집에 온 이튿날부터 이상했다. 병원에 가니 감기라고 했지만 밤새 기침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쇳소리가 났다. 분명 감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다른 병원에 가니 폐렴이었다. 큰 병원으로 가서 바로 입원을 했다.
아직 신생아여서 인큐베이터 안에서 치료를 해야 된다고 하셨다. 면회는 하루 딱 2번 10분씩
나는 신생아 집중치료실 앞을 떠나지 못하고 하염없이 울었다.
그렇게 나는 일주일을 병원과 집을 왔다 갔다 했는데
첫째도 폐렴에 걸려버려서 같은 병원 소아병동에 입원하게 되었다.
역시나 예민한 첫째는 밤마다 울어댔고 나는 몸조리는 둘째치고 너무 힘이 들었다.
신랑은 계속 바빠서 나는 친정엄마와 교대를 하면서 집중치료실 갔다가 다시 병실에 갔다 왔다 했다.
친정엄마가 오셨길래 잠시 화장실에 갔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참으로 안쓰럽다.
머리를 언제 감았을까? 세수는 언제가 마지막이었을까?
찬바람이 스산한 12월이었다. 첫째를 아기띠로 업고서 재우는 중 창밖을 보았다.
건너편 교회에서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반짝거린다.
소아병동에 첫째와 집중치료실에 있는 둘째와 같이 2015년 연말을 그렇게 보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없었다.
하지만 그건 바쁜 남자의 서막에 불과했다는 걸 그때는 나는 미처 몰랐다.
세상에 나쁜 남자보다 나쁜 건 바쁜 남자라는 선배맘들의 우스갯소리가 진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