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여자의 결혼 이야기 13
예정일이 일주일 지났다. 내일은 유도 분만일.
시계는 어느덧 새벽 1시를 가리킨다.
오늘도 그 남자는 업체 사람들과 술 한잔 하는 모양이다.
첫째는 친정에 맡겨두고서 혼자 덩그러니 소파에 앉았다.
혹시 몰라서 출산 가방은 진작부터 다 싸서 현관 바로 옆에 두었다.
신호가 오면 바로 가방만 들고나가려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새벽 2시 30분 드디어 그 남자가 집에 왔다.
술이 잔뜩 취해서...
"아직도 안 자고 있었어?"
"왜 이렇게 늦게 와?"
"미안해~ 미안해~ 우리 부인 미안해."
그는 스스로 몸도 못 가누고 소파에 쓰러져 누워버렸다. 그의 냄새나는 양말을 벗겨주었다.
외투도 벗기고 와이셔츠와 바지는 그냥 둔 채로 이불을 덮어주었다.
도대체 왜 남자들은 밥 먹으면서, 차 한잔 마시면서 일 얘기를 하면 안 되는 걸까?
그래.. 그 남자도 술은 어쩔 수 없이 마신다고 했으니 그냥 넘어가 주자.
내가 잔소리한다고 해서 나아질 것도 아니니 나는 그냥 입을 닫았다.
내일이 유도 분만일이라 긴장이 된 건지....
첫째 때는 멋모르고 했지만 이젠 그 과정과 고통을 다 아니깐
더 겁이 나서 그런지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그렇게 선잠이 들었다가 새벽 5시 배가 슬슬 아파왔다.
둘째는 생각보다 빨리 나온다길래 그 남자를 깨웠다.
"오빠 나 배가 좀 아픈 거 같아. 병원에 가야 할 거 같아."
커다란 눈을 다 뜨지도 못하고 그 남자는 입을 열었다.
"아니 부인의 목소리가 아직 멀쩡한걸 보니 좀 더 있어도 될 거 같네요"
그 남자는 술만 마시면 존댓말을 했다.
결국 나는 다시 한번 짐을 점검하고 옷을 챙겨 입고 식탁 의자에 앉았다.
그가 술이 좀 더 깨기를 기다리면서 조금 더 참아보기로 했다.
새벽 6시 다시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나는 도저히 안될 거 같아서 그 남자를 깨웠다.
"아직 멀쩡한 거 같은데요 부인"
내가 너무 잘 참아서 그 남자는 내가 얼마나 아픈지 모르는 것 같았다.
하긴 술도 취했는데 굳이 구구절절 말해도 그 남자는 못 알아듣겠지?
잠시 고민이 되었다.
이대로 그 남자가 운전해서 가면 음주운전인데....
차라리 택시를 타고 갈까? 119를 부를까?
결국 그 남자를 깨워서 차에 타니 벌써 6시 30분
근처 산부인과 병원까지는 25분
차에 타는 순간 통증이 더 심해졌고 똑바로 앉을 수도 없었다.
아이가 점점 밑으로 내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나는 차에서 다리를 들어 올리고 원숭이처럼 자세를 취했다.
"오빠 빨리 가. 아기가 나올 거 같아."
"신호를 지켜야지"
그 남자는 너무나 천하태평했다.
나는 가는 도중에 병원에 전화를 했고, 간호사가 바로 분만준비를 한다고 했다.
결국 나는 차에서 양수가 터지고야 말았다.
"악~~~~~~빨리 가라고!!!!"
내가 아무리 소릴 질러도 그래도 그 남자는 신호를 다 지켜서 운전했다.
병원 지하주차장에 도착하니 6시 55분
주차장에 아직 간호사가 안 보인다.
"빨리 올라가서 간호사분 모시고 휠체어 가지고 와"
신랑이 올라간 사이 나는 콧물 눈물 다 흘리면서 혼자서 동물처럼 소리를 지르면서
죽을힘을 다해 지하주차장 바닥을 기어서 엘리베이터 앞까지 갔다.
느낌이 다 왔다. 힘만 주면 아기가 나올 거 같다.
"어머나 산모님!!!"
간호사가 왔다.
얼른 휠체어에 나를 태우고 우리는 분만실로 올라갔다.
"산모님 힘주시면 절대 안 돼요. 참으세요."
불탄 수박이 똥꼬에 꽉 끼인 느낌이 든 지 벌써 6분째... 나는 죽을힘을 다해 힘을 안 주고 있었다.
분만실 도착하니 7시 3분
침대에 올라가는 순간
으악~~~~~~~~~~~~~~~~~~~~~~~~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응애~응애"
7시 5분 둘째가 바로 태어났다.
"우리 병원에서 분만한 산모 중 단연 1등입니다."
의사 선생님은 회음부를 봉합을 하면서 웃으셨다.
나는 펑펑 울었다.
나는 얼마나 겁이 났나...
차에서 아기가 나올까 봐....
지하주차장에서 혼자서 아기를 낳을까 봐서.....
분만 후 휠체어를 밀어주며 병실로 가는 길에 그 남자가 눈치 없이 입을 열었다.
"네가 분만실에 들어가자마자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어. 부인 진짜 대단하다."
나는 그를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눈을 흘겨서 째려보았다.
부인이 내일 아기 낳으러 가는데 술을 마시고 오는 그 남자를..
병원에 가자고 깨워도 나의 평안한 얼굴을 보고 다시 잠들어 버린 그 남자를..
아기가 곧 나올 거 같은데 교통신호를 따박따박 다 지키던 그 남자를..
진짜 빨리 아기 잘 낳는다고 신기하게 쳐다보던 그 철없는 남자를..
진심으로 한 대 때리고 싶었다.
나는 그날 마음속으로 수십 번 그 남자를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