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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왼손잡이앤 Mar 11. 2022

둘째를 출산하던 날, 그 남자를 때렸다.

어설픈 여자의 결혼 이야기 13

예정일이 일주일 지났다. 내일은 유도 분만일.

시계는 어느덧 새벽 1시를 가리킨다.

오늘도 그 남자는 업체 사람들과 술 한잔 하는 모양이다.

첫째는 친정에 맡겨두고서 혼자 덩그러니 소파에 앉았다. 


혹시 몰라서 출산 가방은 진작부터 다 싸서 현관 바로 옆에 두었다. 

신호가 오면 바로 가방만 들고나가려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새벽 2시 30분 드디어 그 남자가 집에 왔다.

술이 잔뜩 취해서...

"아직도 안 자고 있었어?"

"왜 이렇게 늦게 와?"

"미안해~ 미안해~ 우리 부인 미안해."

그는 스스로 몸도 못 가누고 소파에 쓰러져 누워버렸다. 그의 냄새나는 양말을 벗겨주었다.

외투도 벗기고 와이셔츠와 바지는 그냥 둔 채로 이불을 덮어주었다.


도대체 왜 남자들은 밥 먹으면서, 차 한잔 마시면서 일 얘기를 하면 안 되는 걸까?

그래.. 그 남자도 술은 어쩔 수 없이 마신다고 했으니 그냥 넘어가 주자.

내가 잔소리한다고 해서 나아질 것도 아니니 나는 그냥 입을 닫았다.


내일이 유도 분만일이라 긴장이 된 건지....

첫째 때는 멋모르고 했지만 이젠 그 과정과 고통을 다 아니깐 

더 겁이 나서 그런지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그렇게 선잠이 들었다가 새벽 5시 배가 슬슬 아파왔다.

둘째는 생각보다 빨리 나온다길래 그 남자를 깨웠다. 

"오빠 나 배가 좀 아픈 거 같아. 병원에 가야 할 거 같아."

커다란 눈을 다 뜨지도 못하고 그 남자는 입을 열었다.

"아니 부인의 목소리가 아직 멀쩡한걸 보니 좀 더 있어도 될 거 같네요"

그 남자는 술만 마시면 존댓말을 했다. 


결국 나는 다시 한번 짐을 점검하고 옷을 챙겨 입고 식탁 의자에 앉았다.

그가 술이 좀 더 깨기를 기다리면서 조금 더 참아보기로 했다.


새벽 6시 다시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나는 도저히 안될 거 같아서 그 남자를 깨웠다.

"아직 멀쩡한 거 같은데요 부인"

내가 너무 잘 참아서 그 남자는 내가 얼마나 아픈지 모르는 것 같았다. 

하긴 술도 취했는데 굳이 구구절절 말해도 그 남자는 못 알아듣겠지?


잠시 고민이 되었다.

이대로 그 남자가 운전해서 가면 음주운전인데....

차라리 택시를 타고 갈까? 119를 부를까?


결국 그 남자를 깨워서 차에 타니 벌써 6시 30분

근처 산부인과 병원까지는 25분

차에 타는 순간 통증이 더 심해졌고 똑바로 앉을 수도 없었다.

아이가 점점 밑으로 내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나는 차에서 다리를 들어 올리고 원숭이처럼 자세를 취했다. 

"오빠 빨리 가. 아기가 나올 거 같아."

"신호를 지켜야지"

그 남자는 너무나 천하태평했다. 


나는 가는 도중에 병원에 전화를 했고, 간호사가 바로 분만준비를 한다고 했다.


결국 나는 차에서 양수가 터지고야 말았다. 

"악~~~~~~빨리 가라고!!!!"

내가 아무리 소릴 질러도 그래도 그 남자는 신호를 다 지켜서 운전했다.

병원 지하주차장에 도착하니 6시 55분



주차장에 아직 간호사가 안 보인다.

"빨리 올라가서 간호사분 모시고 휠체어 가지고 와"

신랑이 올라간 사이 나는 콧물 눈물 다 흘리면서 혼자서 동물처럼 소리를 지르면서 

 죽을힘을 다해 지하주차장 바닥을 기어서 엘리베이터 앞까지 갔다. 

느낌이 다 왔다. 힘만 주면 아기가 나올 거 같다.


"어머나 산모님!!!"

간호사가 왔다. 

얼른 휠체어에 나를 태우고 우리는 분만실로 올라갔다. 

"산모님 힘주시면 절대 안 돼요. 참으세요."


불탄 수박이 똥꼬에 꽉 끼인 느낌이 든 지 벌써 6분째... 나는 죽을힘을 다해 힘을 안 주고 있었다. 

분만실 도착하니 7시 3분

침대에 올라가는 순간

으악~~~~~~~~~~~~~~~~~~~~~~~~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응애~응애"

7시 5분 둘째가 바로 태어났다. 


"우리 병원에서 분만한 산모 중 단연 1등입니다."

의사 선생님은 회음부를 봉합을 하면서 웃으셨다.


나는 펑펑 울었다. 

나는 얼마나 겁이 났나...

차에서 아기가 나올까 봐....

지하주차장에서 혼자서 아기를 낳을까 봐서.....


분만 후 휠체어를 밀어주며 병실로 가는 길에 그 남자가 눈치 없이 입을 열었다. 

"네가 분만실에 들어가자마자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어. 부인 진짜 대단하다."

나는 그를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눈을 흘겨서 째려보았다.


부인이 내일 아기 낳으러 가는데 술을 마시고 오는 그 남자를..

병원에 가자고 깨워도 나의 평안한 얼굴을 보고 다시 잠들어 버린 그 남자를..

아기가 곧 나올 거 같은데 교통신호를 따박따박 다 지키던 그 남자를..

진짜 빨리 아기 잘 낳는다고 신기하게 쳐다보던 그 철없는 남자를..

진심으로 한 대 때리고 싶었다. 


나는 그날 마음속으로 수십 번 그 남자를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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