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여자의 결혼 이야기 12
그 남자는 아이를 참 좋아했다.
결혼하기 전 시댁에 인사드리려 갔을 때 조카들과 잘 놀아주고 기저귀도 잘 갈아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나는 딩크족을 꿈꾸었지만 역시나 인생은 내 맘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와 결혼을 약속하고 집에 인사드리고 나서 덜컥 임신이 되어버린 거다.
그 남자의 간곡한 부탁에 하나만 낳아서 잘 키우자고 약속했다.
한적한 공원이지만 산책하거나 운동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
나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침묵을 깨고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자기 눈이 있으면 내가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안 보여?
누가 오지 않으면 밥 한 끼 편하게 앉아서 못 먹는다고"
나는 너무 어이가 없고 화가 나서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건 내가 갑자기 바빠져서 그런 거야. 내가 많이 도와줄게."
"애를 나 혼자 만들었어? 뭘 도와준다는 거야? 같이하는 거지."
"그럼 그럼 나도 같이해야지"
"아니 그래도 싫어. 또 출산하는 것도 무섭고.. 무엇보다 나는 아기를 별로 안 좋아해."
"아니야. 내가 옆에서 봤는데 너 아기 엄청 좋아해."
"아니라고!!!!"
그는 내가 첫째를 배 위에 올리고 놀아주는 모습, 같이 바닥에 누워서 모빌을 보면서 설명하는 모습 등
언제 찍었는지 나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여주었다.
'내가 이런 표정을 짓고 아이를 보는구나.'
나도 놀랬었다. 조카를 볼 때도 친구의 아이를 봤을 때도 나는 그렇게 아기들이 이뻐지도 귀엽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이뻐서 어쩔 줄 몰라할 때 나는 늘 한발 뒤에 서서 그런 장면들을 보고만 있는 사람이었는데....
내 아이는 그저 신기했다.
신랑을 닮아서 똘똘한 눈도
나를 닮아서 조그마한 입도
그리고 무엇보다 그 작은 아이를 내가 낳았다는 게 그저 너무 신기하고 대견하고 뿌듯했다.
그래서 내가 첫째를 보고 드는 생각은 경이롭다!! 그런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그런 경이로움이 오래가지 못했다.
밤만 되면 이유 없이 울어대는 아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업고 안고 달래가면서 근근이 재우면 30분 뒤 우유 먹일 시간
또 먹이고 재우면 30분 자고 또 일어나고...
그렇게 나는 밤잠을 못 잔 지 거의 4개월이 접어들고 있었다.
거기다가 직장에 복직 한 첫날이었다.
그 남자가 갑자기 뒷좌석에서 어떤 꽃을 꺼냈다.
"항상... 고맙고... 미안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아니.. 혼자는 너무 외롭지 않을까? 네가 그렇게 싫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 남자는 나의 눈물에 당황해서 횡설수설했다.
나는 실컷 울었다. 그 눈물의 의미를 뭐였을까? 서운함? 속상함? 나 혼자만 이렇게 힘든 상황의 부당함?
그게 뭔지 정확히는 몰라도 울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그러고 보니 연애할 때도 프러포즈할 때도 못 받아본 꽃다발이었다.
차에 탔을 때부터 나는 무슨 꽃냄새가 나는 거 같았는데 포인세티아 꽃이라....
처음 보는 새빨간 그 꽃의 아름다움에 나는 잠시 말을 아꼈다.
"이 꽃말이 포인세티아인데 축복이라는 뜻이야. 우리를 찾아온 아기에게 딱 맞는 말인 거 같아서...."
그 남자는 간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우리 아파트 청약하는데도 자녀가 많을수록 유리하데."
3일째 내가 아무런 말도 없자 퇴근하자마자 그 남자가 말했다.
신혼집이 전세였던 우리는 주택청약저축통장을 넣고 있었는데 우리가 맘에 드는 곳에 곧 청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으로 서류를 넣을 계획이었다.(결혼 후 3년 안에 자녀가 있으면 1순위)
근데 그 담당자가 3년 안에 신혼부부 중 자녀 있으면 1순위인데 자녀 더 많을수록 유리하다는 소리를 했다는 것이다. 그 아파트의 위치는 친정엄마 집에서 정말 가까운 곳이면서 역세권이라 나는 그곳에 너무 당첨되고 싶었다.
결국 신랑의 바람대로 우리는 둘째를 낳기로 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우리는 새 아파트에 청약 당첨되었다는 통보를 받게 되었다.
그렇게 배 속에 아기 덕분에 우리 집이 생겼다. 진짜 우리 집에 축복이 내린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