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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팔이오 Nov 26. 2023

나를 스토킹 하던 학부생

준스토커 채 선생 편

  인근 학교에서 마취통증의학과 실습을 온 학생이 매우 열심히 하던 기억이 난다.  밟은 얼굴로 질문을 계속 해댄다.  뭐가 즐거운지 목소리도 맑다.  게다가 아재개그 (?)에도 마구 웃어준다.  같이 진료에 참여하는 학생 및 대학원생들과도 잘 지냈었다.


  서울시 길고양이 중성화사업에 마취를 하기 위해 갔던 어느 날, 그 익숙한 얼굴의 학생이 그곳에 있었다.  학교에서 배운 마취를 실제 현장에서 확인해보고 싶단다.  그래서 열심히 섞어 쓰는 약제와 원리, 그리고 용량 및 부작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려줬다.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실제 해볼 수 있도록 해줬다.  금방 요령을 습득하더니 스스로 혼자서도 잘했다.  그날의 봉사활동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빨리 끝났다.


  '국경없는 수의사회'의 정기봉사활동에 갔더니 그 학생이 또 와있었다.  고양이에서 확인해 봤으니 개에서도 확인해보고 싶었단다.  그날도 발바닥이 닳도록 움직이면서 마취를 했다.  그 학생은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의 소유자처럼 보였다.


  그런 과정 중에 학술대회가 있어서 대학원생들과 같이 참석했다.  오늘도 그 학생이 저쪽에서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했다.  보다 심도 있는 공부를 하고 싶단다.  '이 학생은 혹시 나를 스토킹 하는 건가?  이 학생의 궁금증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의향을 물어보았다.  


  "OO야, 다음 주에 송도에서 마취 관련 wet lab이 있는데 올래?"

  "어머 교수님, 감사합니다.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요!  꼭 참석하겠습니다."


  그렇게 나의 준스토커가 된 채 선생은 송도에서 대학원생들과 만나 하루 종일 실습을 같이 진행했다.  '마취를 배우고 이렇게 마취를 활용하여 자신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행복해했다.  한 번 담근 발을 빼지 못하는 증상인 듯했다.  그러더니 준스토커 채 선생은 마취통증의학과 대학원에 입학하였다.


  올봄 아침에 차로 출근하는 도중, 후문부터 활짝 핀 벚꽃을 보면서 천천히 운전하고 있는데, 벚꽃이 활짝 핀 그 순환도로 보도에서 채 선생이 사뿐사뿐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냥 걷는 것이 아니라 흥에 겨워 춤을 추듯 사뿐사뿐 템포를 맞추어서 걷고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살짝 지나쳐왔다.  이후 미팅 시간에 물어보니 '아침 벚꽃이 만개한 이런 좋은 곳에서 자신이 공부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해서 그랬던 것 같다'며 웃었다.  


  언제나 웃으며 열성적으로 일하는 준스토커 채 선생.  어쩌면 채 선생은 나를 스토킹 한 것이 아니라 마취통증의학을 스토킹 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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