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e Petite Histoire
우리 회사가 있는 건물은 저녁 9시와 밤 12시에 전체 소등이 있어. 근래에 큰 회사들에 생긴 제도처럼 불이 꺼지면 모든 직원들이 회사를 나가야 하는 건 아니고, 남아서 일하는 직원이 있다면 다시 불을 키면 돼. 그러니까 그건 사람들이 불을 끄지 않고 떠난 공간의 전기와 전기세를 아끼려는 목적으로 시행되는 셈이지.
내가 소영이와 저녁을 먹으며 작은 앱솔루트 보드카 사진을 너에게 보낸 날이었어. 아무리 늦어져도 대부분 새벽까지 일을 하는 사람이 한 둘은 있었는데, 그 날은 유독 사람들이 다 일찍 퇴근을 해서 혼자만 사무실에 남게 되었어. 대충 정리가 된 게 11시 50분쯤이어서 다 끝마치고 갈까… 조금 고민을 하다가, 12시에 불이 꺼지는 사무실에 혼자 있고 싶지 않아서 서둘러 회사를 나왔어.
그런데 1층 회전문을 나와 택시를 잡으러 걸어가다가 문득 이 큰 건물의 불이 동시에 꺼지는 걸 비디오로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30층이 넘는 건물이라서, 불이 꺼지는 순간이 꽤 멋있을 것 같았거든. 핸드폰 카메라를 켜 건물을 화면에 맞추니 11시 58분이었고 나는 카메라 앵글을 건물에 맞춘 채 다른 것들을 하고 있었지. 11시 59분이 된 걸 확인하고 핸드폰으로 음악을 찾아보고 있는데, 어느 순간 환하던 불빛이 하나 둘 줄어드는 걸 느꼈어. 그건 내 상상처럼 12시 정각에 건물 전체 불이 한꺼번에 꺼지는 게 아니라, 11시 59분 몇 초부터 이 곳 저 곳의 불빛이 순차적으로 사라지는 거였어. 밤의 불빛들이 다 함께 사라지는 광경을 찍고 싶었는데, 불빛들은 예상치 못했던 순간에 사그라지기 시작해 건물은 12시가 채 되기 전에 어둡게 변했어. 힘 없이 조금씩 빛이 빠져나가는 모습에 왠지 울적해졌는데, 그런 감상에 빠질 틈도 없이 다시 사람들이 남은 사무실에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해 이 또한 슬프고 허무하더라.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오면서 몇 해 전 기억이 났어. 2016년 겨울 촛불 집회가 한참일 때였는데, 하루는 오후 8시 정각에 다 같이 들고 있는 촛불을 껐다가 1분 뒤 다시 그 불을 켜는 행사가 있었어. 시간을 카운트다운하고 모두들 촛불을 껐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은 그다지 어두워 지지 않더라고. 길거리의 포장마차들도 같이 불을 꺼주었지만, 건물 간판들이나 고층 빌딩 사무실의 빛이 워낙 강해 촛불을 끄자 세상이 어둠에 빠졌다 하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어.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 뒤 우연히 한 유명 소설가가 그 날의 촛불 집회에 대해 쓴 사설에서 “8시 정각이 되자 불이 완전히 소등되는 모습이 마치 공산당 같았다”는 내용을 보았어. 그 날 불이 꺼지지 않은 호텔 안에는 창 밖의 집회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보였는데, 그 사람들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 날 다른 장소에 있던 사람들과 나 사이의 괴리감, 밤 12시에 찾아오는 어둠을 피하고 싶던 마음과 그게 그렇게 완연한 어둠이 아닌 것에 느낀 슬픔에 대해 생각했어. 너무나 비슷했던 거 치고는 그다지 닮아있는 게 없는 두 날에 대해서 말이야. 그러고 보면 너와 함께 에펠탑의 불이 꺼지는 걸 본 밤도 있었어. 사실 그 날은 꺼지는 “순간”을 본 건지, 아니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불이 꺼져있던 건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아. 그보다 더 뚜렷한 건 자기들의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던 사람들, 돌아다니면서 술을 팔던 아저씨들, 그리고 잔디밭에서 대화를 나누던 관광객들이야.
소영이와 저녁을 먹고 네게 사진을 보낸 날, 나는 주춤주춤 사라지는 빌딩의 빛이 나를 압도했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내가 이 이야기를 하면 너도 나에게 공감해줄 것 같아 이 걸 쓰기 시작했었어. 그런데 이렇게 글을 쓰며 생각을 할수록, 빛이 사라지는 광경이 늘 그렇게 날 우울하게 했던 건 아니라는 걸 느껴. 그날 그날의 나의 기분이 빛과 어둠이 만드는 광경에 투영되어서 어떤 날은 어둠이 슬프게도, 또 아름답게 보이기도 했던 것 같아.
그래서 며칠 전, 빛 때문에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고 너에게 이야기하려 했을 때. 사실 나를 우울하게 했던 건 빛도 어둠도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저 빛 이야기는 왠지 모르게 하루종일 우울했던 그 날에 대한 위로를 받고 싶기 위해 꺼내는 핑계거리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