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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디 Oct 19. 2023

마구간의 발레 공연

한 여름 밤의 꿈

내가 다닌 학교는 이름에 “Paris”가 붙어있는데, 사실은 파리 중심부에서 차로 40분 정도가 걸리는 파리 근교에 있다. 학교 홈페이지에는 파리까지 차로 20분 걸린다고 소개되어 있지만, 그건 교통 체증이 없는 시간에 파리의 남서쪽 끝에 닿는데 걸리는 시간이었다. 어떻게 가더라도 파리에 가려면 최소 2번은 기차를 타야 하고, 1시간 30분은 쉽게 걸리는 지라 ‘에밀리 인 파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기왕 파리지엔은 물건너 간 김에 나는 남자친구와 함께 주말마다 근교에서 열리는 문화 행사에 찾아가곤 했다. 직접 농산물을 수확할 수 있는 농장, 여전히 손으로 반죽을 하는 제빵 공장 등 오히려 파리가 아닌 탓에 할 수 있는 경험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처음 갔던 공연이 영업이 중단된 승마 학교에서 보았던 ‘한여름 밤의 꿈’ 발레였다.


홍보물에 써진 대로 오후 7시에 맞추어서 도착한 우리는 거의 주최측만큼 일찍 온 축에 속했다. 행사를 담당하는 프랑스인 할아버지는 이런 시골 마을의 행사에 동양인들이 온 것이 신기했는지, 아니면 시간에 맞추어 도착한 우리가 고마웠는지, 우리를 반기며 말을 걸었고 관람은 8시 30분에 시작된다는 것도 말씀해주셨다. 그 곳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식당이나 바는 아무것도 없어서 우리는 선택의 여지없이 경마 학교의 드넓은 숲을 산책했다. 오랫동안 자란 푸른 나무들이 우거진 조용한 숲이었다. 숲 군데 군데에는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샤또와 오두막이 있었는데, 장난기가 발동한 우리는 문고리마다 돌려보며 혹시 열려있는 문이 있을까 찾아다녔다.

다시 공연장 근처로 돌아온 우리는 그 날을 위해 초대된 보라색 푸드 트럭에서 소고기 보분과 맥주를 나누어 먹었다. 어느 새 공연 시작 시간이 가까워 조금 늦게 들어갈 요량으로 천천히 먹고 있는데, 막 도착해서 만났던 할아버지가 공연 시작할 시간이 됐다며 우리를 재촉했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들어가야 행사를 시작할 것처럼 옆에 서서 지키고 계셔서, 결국은 허겁지겁 식사를 마치고 공연장으로 들어가야 했다.


공연이 상영되는 곳은 마치 서커스장을 연상시키는 커다란 몽골 텐트였다. 원래 승마연습장으로 쓰였던 텐트 안 흙바닥에는 하얀 스크린과 나무 의자들이 설치되어 있었고, 여전히 말 구유 냄새가 났다. 발레 공연에 대한 조예가 전혀 없는 나는 엉뚱하게도 발레 동작에 점프가 이렇게 많다는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발 끝으로 서 있는 발레리나들은 우아했지만, 그 아픔이 상상되어서 피겨 스케이팅 대회를 생방송으로 볼 때처럼 마음이 불안했다. 2장이 시작될 무렵부터는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텐트 지붕과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가 파리 국립 오페라단의 연주에 섞여 들었다. 집까지 차를 타고 가는 40분 내내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비가 내려서 화창했던 날씨와 마구간의 발레 공연이 정말 한 여름 밤의 꿈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 때에 비하면 뜸하지만, 요즘도 근교에서 열리는 작은 행사들에 다니곤 한다. 마이스터 고등학교의 직업 실습 문제를 다룬 영화 ‘다음 소희’는 베르사유와 붙어있는 퐁트네르플뢰리 Fontenay-le-Fleury 시에서 운영하는 독립영화관에서 보았다. 자원봉사자들로 운영되는 단관의 작은 영화관에는 팝콘은 없었지만 티켓이 보통 영화관의 절반 가격이었다. 포스터와 계산 업무를 담당하는 아저씨는 내가 한국인인 걸 알고는 여분의 영화 포스터를 선물로 줄 테니, 영화가 끝나고 다시 티켓 창구에 들르라고 하셨다. 부산을 여행한 적이 있다는 아저씨는 영화가 얼마나 한국의 노동 현실과 가까운지 물어보셨다. 영화의 내용이 누군가의 현실을 소재로 하고 있음에도, 나에게조차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 사회의 간극을 온전히 말로 전할 수 없어서 오랜만에 프랑스어를 좀 더 공부해둘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아저씨는 절반으로 꼭 접은 영화 포스터를 나에게 주셨고, 나는 접힌 자국이 선명한 이 포스터를 걸어 둘 곳이 없어서 책장에 고이 보관했다.



해외에 나가보라는 권유를 할 때 흔히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오라’고 말한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은 아마도 더 작은 세상이다. 도시라기보다 마을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프랑스 나의 동네에는 서울 우리 동네 인구의 1/10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 살고 있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 같은 이 심심한 동네와 이 근방의 심심한 동네들은 의외로 매주 미술 전시와 음악 공연, 살사 수업 같은 일들을 벌이는 사람들로 활기를 띤다. 내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 만드는 이벤트들은 엉성하긴 해도 무척이나 따뜻해서, 기차역의 커다란 지역 주민 게시판을 지나칠 때마다 이 달에는 또 어떤 행사들이 있는지를 꼼꼼하게 살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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