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동에 7년을 살았다. 그리고 내일 이사 간다. 혼자 사는 살림에 넘쳐나는 건 옷과 책뿐이다. 다행히 7년의 연남동 생활 중에 세 집을 옮겨 다니며 이사 메이트가 생겼더랬다. 60대 용달 아저씨. 그래서 딱히 내가 뭘 챙겨야 할 건 없다.
연남동에는 카페가 40여 개 정도가 있다. 2년 전쯤 발행된 연남동 잡지에서 37-8개였고, 그 사이에도 내가 확인한 것만 6-7개는 족히 된다. 그리고 대부분이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인사업자 카페이다. 대부분 아름다운 인테리어와 마이너 감성의 익스테리어를 갖추고 있다. 연남동만의 분위기라면 기존의 주택을 해치지 않고 리모델링을 하면서 주변 주택가와 조화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존의 건물을 허물고 새롭게 짓는 경향이 짙다. 그렇게 조화는 깨지기 시작했다.
봉준호 감독은 한 시상식에서 인적이 드문 카페에서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자신의 시나리오에 그 카페 주인 분들의 지분이 존재한다고 농담조로 수상 소감으로 얘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영화가 완성된 후 다시 그 카페를 가보면 없어져 있다고. 그래서 조금은 미안하다고. 연남동 카페의 딜레마는 봉준호 감독의 사라진 카페들과 닮았다. 경의선 철길이 있던 자리에 경의선이 지하로 내려가면서 그 자리에 철도 공원이 생겼다. 일명 '연트럴 파크'. 필자는 연트럴 파크가 생기기 전부터 연남동에 살고 있었다. 당시에는 철도 공사를 하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공사 펜스가 치워지더니 선물처럼 공원이 짜잔 하고 나타났다. 시끄럽던 철길 주변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그래서 동네에 거주하는 분들은 대부분이 3-40년 넘게 터전을 잡고 살고 계신 분들이고 나이도 지긋이 드신 분들이었다. 지금처럼 붐비는 사람 소리보다 철도 지나가는 소리가 더 익숙하신 분들.
카페가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할 때는 참 좋았다. 카페를 운영하시는 분들도 여유가 있었고 사람들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아마도 임대료가 지금처럼 오르지 않았을 터여서 여유가 있었을 거라 짐작한다. 나도 과제를 하거나 책을 보기 위해 카페에 가서 죽치고 있곤 했는데, 눈치 보는 걸 싫어해서 개인사업자 카페를 가면 3시간 정도 지나면 음료를 꼭 추가해서 주문하곤 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니까.
주말만 피하면 연남동 카페는 여유로웠고 마이너의 감성이 살아있었다. 나만 아는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카페를 갔을 때 건너 테이블은 사람이 있지만 내 옆 테이블이 비어있을 때 느끼는 여유로움.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붐벼도 너무 붐빈다. 임대료도 오를 만큼 올라버렸다. 그러니 나처럼 죽치고 테이블에 노트북 올려놓고 글을 쓰거나 책 보는 사람을 반기지 않을 분더러, 너무 많은 사람이 평일에도 오는지라 눈치가 보여서 자리에 앉아 뭔가에 집중을 할 수도 없다.
소위 연남동 카페의 컨셉은 '사진찍고 빨리꺼져'다. 카페의 생명은 홍보 아닌가. 사진 찍기 좋게 대부분 흰 벽을 배경으로 해 놓았다. 조명이며 장식품 등에도 컨셉을 잡아 놓았는데, 대부분은 화이트, 베이지, 노란 조명으로 귀결된다. 처음에는 카페인 듯 아닌 듯했던 자연스러운 느낌들도 건물 외벽에 LED조명을 설치할 만큼 경쟁이 치열해졌다. 밤에는 여기가 이태원인지 연남동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이다. 모두가 예상하다시피 경쟁이 과열되면 특징을 잃어버린다. 경쟁은 암묵적인 룰을 깬다. 이겨야 하니까. 무한 경쟁 사회에서 인간성을 대변하는 양심, 선, 예의 같은 가치들이 훼손되듯 연남동도 그 수순을 밟고 있다. 그래서 이미 건물주들 사이에서 연남동은 끝물이라는 말이 일반이다. 범홍대상권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확실하나, 상권으로 자리를 잡으면 그다음은 불 보듯 뻔한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나의 많은 추억과 연애와 지난 학위를 위한 치열한 공부의 순간들과 쉼이 있던 공간이라 그 상업적 변모가 안타깝고 밉다. 이제 어딜 가나 있는 카페들이 즐비한 곳이 되었다. 처음 카페를 열고 나름의 분위기로 카페를 운영하시던 사장님들도 많이 떠나셨다. 의도치 않게 나도 내일 떠난다. 어느 날부터인가 연남동에 살면서도 연남동 카페에 가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내일 떠나기 전 아쉬운 마음에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다 몰려드는 인파에 테이블을 내어주고는 마시던 커피를 들고 카페를 뛰쳐나왔다. 그것도 화요일 오후 3시에. 주말에는 언급하지 않아도 알만 하다. 방음 설계가 안되어 모든 이의 목소리가 울려대는 하얀 벽의 카페들. 커피는 거기서 거기고 앙버터도 그렇다. 환상을 확실히 깨고 떠난다. 마치 뜨겁게 사랑하고 끝을 봐서 미련 없이 헤어지는 연인 같다.
이사 가는 동네에는 스타벅스가 있다. 그게 되례 맘이 편하다. 안정된 멘탈과 직업을 가진 듬직한 애인 같다. 알 수 없는 항해를 하는 개척자들도 변하지 않는 나침반이 있어 방향을 잃지 않았다. 자유로운 삶을 사는 나도 안정된 부분은 필요했고 그게 카페였던 것 같다. 어찌 보면 평범하지 않은 걸 평범하다 여겼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연남동 카페는 사장님과 커피를 마시며 일상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게 가능했었으니까. 5년 전쯤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