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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정민 Feb 08. 2020

20대 남자와 82년생 김지영 사이,
"과도기" (1)

책 '20대 남자'/책 영화 '82년생 김지영'

 *정확하게 글을 쓰고자 했던 나의 문체가 오히려 독자들에게는 숨막히게 느껴졌나보다. 지난 토크콘서트에서 만났던 팬분들은 나에게 좀 더 쉽게 글을 써주길 바라셨다. 읽는 사람에게 맞추는 것이 작가의 배려라고 생각한다. 읽는 이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한 필자의 부족을 너그러이 이해해주길 바라고, 이미 넉넉히 이해하고 계신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본 글은 두 책(혹은 영화)을 봤다는 전제 하에 썼다.




1. 

책 '20대 남자'는 반페미니즘의 성향을 가진 20대 남자들에 대한 연구 보고이고, 책을 기반삼아 최근 영화로까지 개봉한 '82년생 김지영'은 여자로서 한국사회에서 겪어야 했던 부조리에 관한 내용이다. 책 '20대 남자'는 조사에 의한 보고이고, '82년생 김지영'은 소설이고 영화이기에(창작물), 전자는 사실이고 후자는 허구적 산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82년생 김지영'은 으레 있을 법한 상황들을를 반영하였기에 허구라고만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결국 최근의 두 콘텐츠는 대립하는 구도를 보였다.  


페미니즘 vs 반페미니즘

 '82년생 김지영'과 '20대 남자'. 나는 이 두 연령의 사이에 있다. 김 빠지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나는 두 입장 모두 이해가 된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 두 집단을 단순히 페미니즘을 지지하고 반대하는 입장으로만 정리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이해하고 싶지 조차 않은 사안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을 할리가 만무하지만 어디 한 번 양쪽의 입장을 되짚어보자.


2.

20대 남자

 책 '20대 남자'는 천관율 <시사인>기자와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분석 전문위원이 208개 문항을 1000명의 20대 남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이다. 대통령 지지율 관련 통계(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보고서 관련)를 보던 중 20대 남자의 지지율이 유독 보수적인 성향을 보여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서 조사를 실시한 것이 시작이 되어, 그 결과로 20대 남자가 보수적인 성향과 더불어 공정에 민감한 성향을 보이자 더 깊은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다. 정확한 수치를 언급하자면 25.9% 비율의 명확한 반페미니즘 성향자가 있었다. 두 저자는 4명중 1명 꼴인 반페미니즘 성향의 20대 남자를 하나의 현상으로 볼 수 있는 유의미한 수치라고 결론내린다. 그리고 반페미니즘 성향의 20대 남자에 대한 수치를 따로 만들어 다른 세대 남자 혹은 같은 세대 남성들과 비교한다. 그리하며 반페미니즘 성향의 25.9%의 20대 남자에 대한 특징과 성향에 대해 말한다.


20대 남자를 대표하는 키워드

1) 반페미니즘(25.9%)

2) 남성 마이너리티 정서

3) 빼앗긴 기회 (기성세대로 부터)

4) 공정을 중시

로 정리할 수 있다.

 

아래는 책의 주요 내용이다. 


p.59

208개에 이르는 광범위한 조사를 한 결과, 우리는 '권력이 남성을 차별한다는 인식'이 현상의 핵심이라고 지목했다. 20대 남자의 인식 세계에서 남성은 약자다. 능력은 남자가 뛰어나지만 권력이 남성을 차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남성 우위 사회에서 여성 우대 정책을 '역차별'로 인식하던 윗세대 남자들과도 결이 다르다. 남성이 약자라는 인식, 남성이 마이너리티라는 정체성이 등장했다. 그래서 역차별이 아니라 그냥 차별이다. 젠더와 권력이 만나는 지점이 핵심이다. 둘 중 하나만 사라져도, 20대 남성 여론의 특수성이 따라서 사라진다.


p.75

20대 남자가 보는 미래 전망이 어두운 것은 사실이다. '나는 나의 부모님 세대보다 더 많은 기회를 얻을 것이다'라는 문장에, 20대 남자의 62.0%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하지만 20대 여자도 60.0%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의 기회를 빼앗고 있는가, 열어주고 있는가'를 물었다. 20대 남자의 59.5%는 '빼앗고 있다'를 골랐다. 20대 여자는 50.7%(응답자 전체 평균은 43.4%)였다. 기회가 닫히고 있다는 두려움이 남자에게서 좀 더 많이 보인다. 하지만 여자도 만만치 않다. 


p.88

남녀 소득 격차가 성차별 때문이라는 주장은 20대 남자로서는 결단코 동의할 수 없는, 공정성을 허물어뜨리느 주장이 된다. '한국에서 여성의 소득이 낮은 이유는 성차별 때문이다'라는 문장에 신념형 20대 남자는 무려 78.3%가 '전혀 동의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별로 동의 안 함' 17.4%와 합치면 무려 95.7%에 이른다. 


p.93

95.7%라는 압도적인 숫자는, 이들 -12점 집단이 보는 '사안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증언한다. 즉, 이 말이야말로 남성 차별의 상징이라고 할 만하다. '성차별을 바로잡겠다는 명분으로 남성을 차별해왔다'는 것이 바로 사안의 본질이다. 이에 견주면, 다른 남자들은 우유부단해 보일 정도로 멀찍이 떨어져 있다. 그 외 20대 남자 집단에서 '동의 안 함' 응답은 합쳐서 55.9%다. 30세 이상 남자에서는 53.2%로, 꽤 높다. 하지만 95.7%에 비할 바는 아니다. 


p.110

'공정을 중시하는 감각'은 20대 남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전 세대/성별에 공통된 속성이라는 사실을 보였다. 그런데 '무엇이 공정인가'를 물으면 상황이 달라진다. 20대 남자는 '차등 보상'을 더 선호했다. 30세 이상 남자는 20대보다는 '공평 보상'쪽으로 더 가서 두 응답이 팽팽했다. 우리의 주요 분석 대상은 아니지만, 30세 이상 남자 중에서도 반페미니즘 정체성 집단은 분명하게 차등 보상을 선호했다(61.3%). 

 이 질문에는 20대 여자도 65.1%가 차등 보상을 선호했다. 30세 이상 여자는 공평 보상으로 쏠렸다(53.5%). 무엇이 공정한지를 판단하는 감각은 성별보다는 세대로 갈린다. 20대는 한팀으로 수행한 프로젝트에서도 개인별 성과 평가를 선호한다. 공동 책임의 원리는 20대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인기가 없다. 


p.116

게임이론과 진화경제학 연구자인 최정규 교수(경북대 경제학과)는 이렇게 설명했다. "경제학의 시조인 애덤 스미스가 18세기부터 강조한 얘기가 있다. 공정성을 판단하는 건 앞뒤맥락을 섬세하게 고려해야하는 작업이다. 역지사지도 해보고, 상대 입장에 서보고,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상상해야 한다. 이게 원래 뇌에 부담이 큰 작업이다. 그래서 다른 과제로 인지 부담을 주면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 부담을 덜려면 섬세함을 덜어내고 일관되게 가혹한 판단을 하면 된다. 




3.

 어떤 일의 원인이 당사자 본인에게 있으면 (내적 귀인이면) 자신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마땅하고 원인이 개인 외의 사회구조적 문제라면 (외적 귀인이면) 법을 비롯한 사회 내의 제도 장치로 도와주어야 한다. 이런 간명하고 알기 쉬운 아이디어로 20대 남성의 사고는 작동한다. 이 생각에는 반페미니즘 정체성 집단의 남자들 뿐만 아니라 보통의 남자들도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기존의 사회권력을 쥐고 있던 기성의 남성들에 비해 기본적으로 상대적인 박탈감과 마이너리티 정체성을 통해 소외감 마저 드러내는 20대가 객관적인 원인을 볼 수 있었을까. 균형있는 시각에 대한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귀인오류의 여지가 있다) 


 책 [20대 남자]는 출간되기에 앞서 먼저 시사주간지 <시사in>에 기사로 발행되었다. 기사에 대한 댓글 중 주목할만한 댓글에는 "구시대 남자가 얻은 기득권을 젊은 세대는 경쟁해서 얻어야 하니 상대적으로 불공평하다고 느끼겠지. 구시대 남자들에 비해 의무는 늘고 권리는 줄어들었다고 느끼는 거야." 라는 글도 있었다. 이 의견은 세대론에 기반한 생각이다. 이전 세대에서는 사회 전반적인 부분에서 의례적으로 누려오던 남성의 권리 혹은 권력이 현 세대에서는 '양성평등'의 이름 아래 새로운 저울추로 개편되었음 인식하고 이전 세대와 구분하여 생각한 것이다. 암묵적으로 작용한 세대 계약이 무너지는 모습을 드러내는 단면이다. 대표적인 예가 국민연금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불안한 심리이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57년 고갈 된다(주간경향 기사참고. 출처 표시 아래). 기성세대 남성은 군 복무라는 성차별을 감내했지만, 사회에 진출하면 그걸 이자까지 쳐서 돌려받았다. 사회는 군대원리로 작동했고 군필자는 우대받았다. 바로 이런 외상거래를 이제는 신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럼 20대 여자들은 누구인가?

20대 여자를 이해하기 위한 첫 단추는 정치 참여와 투표 참여(보팅 파워, voting power)로 인한 권력 이동 현상을 경험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20대 남자를 보는 시작점에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율 하락이 있었다면 20대 여자를 보는 시작점에 '정치 참여 확대'라는 단서가 있다. 


이는 기존의 20대 여자의 정치적 성향은 아버지나 가족들의 성향에 다분히 영향을 받는다는 '순응 투표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회 현상이 그렇듯 앞서 산업화를 이루고 민주주의가 정착하며 세대간의 갈등을 겪은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먼저 겪은 현상들이다. 남성보다 여성이 복지정책을 선호하고, 군사비 지출을 선호하지 않으며, 리버럴(liberal) 정당(진보성향 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아울러 20대 여자 집단은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통해 집단의 의사를 실현 시킴으로, 내적 효능감에서 나아가 외적인 효능감을 가지게 된 측면도 있다. 객관적으로 20대 남자 보다 나은 성과를 거둠으로 인해 자신감을 얻고 다시 정치 참여도가 높아지는 선순환 구조를 얻은 것이 여성의 '승자 정체성'을 뒷받침하는 직접적인 근거라고 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로 인해 이전 세대의 여성과는 다른 정체성을 확보하고 적극적 대응을 보이는 집단이 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20대 여성집단 또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정치적으로 보수집단이 되든, 그대로 진보적인 성향이 유지되든 하는 여지가 남아있다. 


하나 더 살펴볼 꼭지가 결혼에 대한 이슈이다. 

'가족을 꾸리는 것은 여성에게 더 유리하다'라는 질문에 강한 정체성의 20대 남자 중 65.2%가 '예'라고 답했다. 그러니까 20대 남성의 4분의 1중 65.2%라는 것이니, 확대 해석은 금물이다. 그런데 중요한 부분은 지금껏 집중해서 얘기한 '반페미니즘 남성 집단'은 강한 자기 표출을 하고 있는 소위 '고관여집단'이라는 것이다. 인터넷 기사를 본 사람 중에 댓글을 다는 사람은 1-2명인데 보는 사람은 8-9명인 것 처럼 소리를 낸다해서 해당 집단 전체의 의견이라고 인식해서는 안 된다.


본 글은 후속 게재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참고문헌]

기사 '불안한 2030 청년이 말하는 '국민연금 개혁'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dept=115&art_id=201910251753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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