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의 인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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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와 역할에 의해서만 관계를 형성해 온 사람을 만나면 조금은 측은한 느낌이 든다. 자신이 가진 지위와 권한에 의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척’을 했을까.
좋은 척, 재밌는 척, 감동한 척
그는 슬슬 감각을 잃는다. 역할을 벗어나 그와 만난 사람들은 척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섭섭하다.
하지만 팩트는 그가 현실 감각이 없다는 것이다. 유머도 삶의 철학도 그가 살던 어디쯤에 매여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기야 그는 일에 전념하느라 아무도 알려줄 수 없었다.
그렇게 늙는다. 나이가 늙는 게 아니라, 생각은 굳어지고 견고해진 기준 안에 갇혀버렸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분류할 카테고리가 그의 기준 안에는 없다. 새 카테고리를 만들면 되는데 안 보면 그만이다 싶어 눈을 가린다.
그렇게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는 자들만을 만나며 더욱 견고한 성을 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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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갖지 못하고 권위와 역할에서 벗어난 삶을 살고 있다. 감사하다. 물론 그래서 불편한 점들도 있지만, 적어도 누군가 내 앞에 ‘척’ 하지는 않는다.
싫으면 연락을 무시할 수 있고,
좋으면 먼 곳까지 찾아온다.
그래서 만나면 마음 놓고 대화할 수 있다.
한 때 인맥이 최고의 재산이라 생각했다. 회사도 다니고 여기저기 모임도 많고 성격도 밝고 외향적이다 보니 걷잡을 수 없이 사람이 늘었다.
어느 날 확인한 카톡 친구는 6600명이었다. ‘ㄱ‘목록이 다 넘어가지 않는 지경이었다.
다행히 사업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고 그 미친 레이스를 멈출 수 있었다. 오롯이 내가 되는 시간을 갖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났다.
가진 건 없지만 나에게 집중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채정민 사용법’을 잘 알게 되었다(이건 정말 정말 기쁜 일이었다!).
관계에 매몰되어 쓸데없는 술자리나 친구 뒤치다꺼리를 하지 않는다. 내가 아플 때 나를 걱정해주는 친구가 있고 내 앞 날을 함께 고민하며 조언해주는 친구가 있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 생각이다. 이 미친 나라는 도무지 경쟁을 멈추지 않고 모든 것이 과열되어 있어, 나를 의식적으로 지키지 않으면 결국 잃고 말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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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성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직도 쌓여가는 중이다. 짐짓하던 역할놀이에 맞춰주는 사람만 입장할 수 있다고 한다.
궁금하면 문 두드려보시길.
난 역할놀이 극혐이라..
아 회사에선 이걸 ‘사회생활’이라 부른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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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회사원 #사회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