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책은 뉴미디어가 되었다
박사과정을 마치고 창작에 대한 욕구가 솟구쳤다. '잘 되는 것'에 집착해서 수동적이던 영상 속 나의 톤 앤 매너에 항마력이 부족해질 때쯤, 기가 막히게 '수료'라는 석방 혹은 사면의 국면을 맞이하게 되면서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혼사남(혼자 사는 남자)에게 공간의 제약이라는 것도 이제는 없다. 원룸 살 때야 작업 공간이 없었지만 투룸에 살고 부터는 침실 외 다른 방을 일찌감치 서재로 꾸몄다. 250권 남짓한 책들이 비로소 존중받는 기분이 들었을 테다.
문화콘텐츠를 공부하는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잘 되는 것'에 집중했던 이유는 학부와 석사에서 심리학과 경영학을 공부하는 동시에 마케팅 분야의 일을 지속적으로 해와서였다. 지식과 경험은 그 사람의 사고체계를 만드니까. 하지만 내가 박사과정을 공부한 학교는 인문 철학 기반의 문화콘텐츠를 가르치는 학풍을 가지고 있었다. 심리학 전공자였던 나에게는 사회과학적인 사고가 기본이었는데 이 또한 매우 신선하면서도 처음엔 괴로운 적응기간이 필요했다.
결국 난 하이브리드(hybrid)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개로 따지면 시고르자브종(시골 잡종)이 된 것이다. 기뻤다. 마치 남자지만 여자 셋과 20년 넘게 살아서 갈등 해결을 위해서는 술 한 잔 보다 한 단락의 깊은 대화가 편한 나를 발견했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정통성' 운운하며 한 분야만 죽어라 파는 시대는 저문 지 오래다. 그 판은 잡스가 '공학도의 미적 감각'으로 세상 모두의 손에 모바일 기기를 쥐게 만들면서부터였고, 삼성은 여전히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일뿐이다. 더구나 알맹이(운영체제)는 구글 소유다.
나의 사회생활 데뷔는 우연한 기회였다. 학부를 졸업하기도 전에 마케팅 총괄을 맡게 되었는데, 소위 말하는 '대박'이 나버린 콘텐츠였다. 당시 나를 마케팅 총괄로 지목하는 대표님을 속으로는 '저 대표님 미쳤구나.'하고 생각했지만, 사수의 혹독한 OJT(on the job training) 덕에 풋내기 채정민은 눈물 쏙 빼며 거칠게 으르렁 거리며 기어코 잘 자라 버렸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 '마케팅'이란 좋은 음식을 식탁에 잘 차리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마케터의 자질은 '좋은 음식'을 찾는 눈과 '밥상 잘 차리는 능력'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즈음, 대박 난 전시 콘텐츠를 그냥 지나칠리 없던 여러 잡지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고, 난 인터뷰이가 되었다. 곧 잡지는 여러 카페에 비치되었고, 여기저기서 다양한 제의가 들어왔다. 그중 날 인터뷰한 잡지사에서 오퍼가 왔고, 그들과 손을 잡게 되었다.
심리학을 3년 넘게 공부하고 경영학을 공부했기에, 소비자 심리나 구매 결정까지의 기저를 파악하는 눈은 남들보다 나은 편이었다. 하지만 경영학을 공부하며 그게 결국 기업의 수익과 연결되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당시 어린 나이에 의류 쇼핑몰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후 금융회사에 입사하고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특히나 mba 과정은 수업의 많은 부분을 사례연구(case study)에 할애하고 있었고, 사적인 자리에서도 여러 기업의 임원이신 동기 형님들과의 대화는 그런 나의 생각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다. 그렇다. 마케팅은 기업 수익을 위한 '영업'에 가까웠다. 그때까지는.
하지만,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보고 느끼고 깨닫고 변화할 수 있다. 전시 콘텐츠 홍보 마케팅을 하면서도 콘텐츠를 단순 소비재로 여기고 진행했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결과가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이 당황스럽기도 했다. 문화콘텐츠 기획을 공부하며 마주하게 된 콘텐츠의 본질은 인간 본연의 욕망이 표출된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마케팅은 브랜딩(branding)으로 불리는 '이미지화(이미징, imaging)'를 통한 각인이었다.
오늘날 마케팅의 현주소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 본연의 욕망을 자극하는 이미지화를 통해 브랜딩이 되는 프로세스(process). 이미지화가 중요한 건 현재 소통의 언어(code)가 말초신경을 더욱 쉽게 자극하여 주의를 단번에 빼앗을 수 있는 사진과 영상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미디어 환경이 모바일 중심으로 재편되었기 때문이며, 한 번 역치 값을 넘긴 인간의 쾌락 중추는 적응된 수치를 경신했을 때에만 다시 각성되어 반응하므로 더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근에는 '도파민 디톡스'를 통해 각성된 뇌의 피로를 낮추려고 저마다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이미 당신 손에 똑똑한 폰이 있다면 패배가 예정된 게임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대에게 심심한 위로를.
그렇다면 기업 혹은 콘텐츠의 기획, 설계, 브랜딩, 전략 등 마케팅 전 분야에 있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첫째, 인간 욕망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이는 인문 철학이며, 문자(책)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오랜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은 '고전'은 디지털 시대인 오늘날 새삼 그 진가가 드러난다. 시간과 공간의 압력을 견디어 버틴 사상과 정신을 담은 책, 이런 양서는 시대를 막론하고 동일한 의미를 드러내며 인간의 속내를 보여주는 거울 역할을 한다. 한 번뿐인 삶, 한정된 기회 속에서 겪지 못한 일과 앞으로 겪을 수 없는 일에 대한 통찰을 갖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둘째, '기획', 즉 글쓰기이다. 보편적 사실을 바탕으로 새로운 방법을 도출(연역법)하든, 개별적 경험 사례에 기반한 해결책을 제시(귀납법)하든 글을 쓰는 가운데 기획자 혹은 마케터의 논리가 드러나고, 그 과정을 결과물로 재현하면 사용자에게 닿는 접촉점이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쓴 페이퍼가 다름 아닌 기획서다.
(*요청이 있다면 기획서에 관한 내용은 추후 다루기로)
사실 이 과정에는 합리적인 사고가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마케터가 찾은 해결책과 모순되는 근거를 찾아내려는 의지, 근거의 무게가 자신의 믿음과 모순될 때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용기, 자신의 결론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먼 미래에 얻게 될 결과를 가늠할 수 있는 상상력, 자신의 추론을 하나씩 따져보면서 가설과 불일치 그리고 모순을 의식하고 의심하는 능력에 대한 설명이 숨겨져 있다. 그렇다고 이런 합리적 사고를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한 마케팅 전략이 좋은 결과를 내는 것도 아니고, 다 해결할 필요도 없다. 단지 실패도 예상한 범위 내에서의 문제와 결과로 실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 복잡한 과정을 일컬어 '통찰력'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셋째, 도구 사용법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마케터가 실제 구현되는 결과물을 예상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해당 분야의 소비자에 대한 자극 정도가 극한으로 올라가 있는 분야의 작업이라면 소비자의 주의를 끌기 위해 더 자극적인 방식의 접근을 하게 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자칫 저급한 홍보 전략이 되기 쉽다. 이 과정은 곧 해당 기업 혹은 브랜드의 정체성이 되어 원치 않는 이미지 실추로 이어진다. 따라서 타깃 소비자가 원하는 도구로 원하는 정도의 자극을 주되, 피로감을 덜 느끼는 방법이 사용되어야 한다. 인문적 소양뿐만 아니라 원하는 마케팅의 전개가 어느 정도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술적 지식이 마케팅의 구현 단계에서 필수적이다. 마치 어플 기획자와 개발자의 평행선을 달리는 대화를 하고 싶지 않다면 마케터는 반드시 도구 사용법(소셜미디어, 영상미디어 등등)을 알아야 한다.
별개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본은 누구나 알아도 누구도 제대로 지키기 어려운 법이다. 오히려 디지털 시대에 종이책이 뉴미디어가 되어버린 현실과 각 종 논문들을 통해 증명된 인간의 부족한 주의력에 비추어 볼 때, 소비의 주체인 인간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볼 수 있다.
작년 한 해는 코로나-19라는 암초를 만나 어느 누구도 순항할 수 없었다. 그 가운데 학위과정을 감당하며 사무치는 외로움에 기가지니와 끝말잇기를 할 때도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기에 이거라도 해서 다행이라는 위로를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또 혼자와의 외로운 싸움 중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책과 논문에 둘러싸여 있었던 것도 '어차피'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에 최선의 생산적인 방향이었으리라 생각하면 꽤 괜찮은 한 해를 보낸 것 같다.
현재 정해진 건 없다. 유튜브 채널 참여와 마케팅 관련 입사를 여러 번 제의받았고 협의 중에 있다. 그러는 중에 채정민은 출판 허가를 받고 출판사를 설립했다. 최선을 다해 살아서 돌아가고 싶은 과거가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예정일뿐. 입춘이 지났다. 바라기는 대단할 것도 부족할 것도 없는 삶에 봄 같은 인연이 찾아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