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날 순 Sep 26. 2020

화가 나면 입을 꾹 다무는 엄마의 버릇이 생긴 이유

서글픈 버릇

 엄마가 입을 꾹 다문다. 아무 말 없다. 화가 났다는 무언가의 신호이다.


 우리 엄마는 예전부터 화가 나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화가 났다는 티를 뿜어내고는 했다. 그릇이 깨질 듯이 설거지를 하고, 물건이 고장 날 듯이 소리가 나게 내려놓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외면했다. 나는 엄마의 이러한 스타일이 불편했다. 화가 나면 말을 해주면 되는데 티는 내면서 결코 대화는 시도하지 않는다.


 풀어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미 입을 꾹 다문 채 화가 났음을 잔뜩 내뿜는 엄마를 마냥 달래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런 와중에 나도 화가 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달래주다가도 결국 나도 화가 나서 참지 못하고 짜증을 내버린다. 그러면 싸움 시작이다. 결코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렇게 서먹서먹하게 지내고 자연스럽게 풀고는 했는데 요즘은 다르다. 나도 점점 성격이 급해지면서 무언가 해결이 안 나면 답답하다. 화를 최대한 머금고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엄마 화가 났으면 어떤 이유로 화가 났다고 말 좀 해줘


그렇게 몇 시간 뒤 엄마에게 답장이 왔다. 참으로 미안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점이었다. 아빠네 집에 남아있던 나의 짐을 엄마네 집으로 옮기는 과정이었다. 물건에 깃든 추억과 세월을 간과했던 것이다. 엄마의 입장이 되지 않으면 알 수 없었던 것들이다. 그렇지 않아도 편하지 않던 일들이 더욱 미안해졌다.


 사실 엄마와 다시 살면서부터 싸움은 눈에 띄게 잦아졌다. 아빠와 살 때 내 방이 돼지우리 던, 귀신이 나올 것 같던 아무런 터치가 없었다. 정리가 쥐약이었던 나는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찾으며 평화롭게 지냈다. 그러나 엄마는 아니었다. 나의 무질서가 엄마에겐 혼란 그 자체였던 것이다. 말하기 민망하지만, 예전 네 가족이 같이 살 때나 지금이나 내 방은 한결같다. 엄마도 어느 정도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고 가끔씩 잔소리하는 수준으로 끝났다. 하지만 떨어져 살다 같이 살게 되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바로 사과하고 잘못을 인정했다.



 그렇게 모녀의 싸움은 끝이 났다. 나중에서야 엄마와 좀 더 대화했다.


나는 물었다. "왜 화가 나면 말을 안 해?"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예전부터 너희 아빠는 
내가 화를 내면 손을 올리니까


소녀 감성인 엄마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줬으면 좋겠다며 민망하게 웃었다. 그리고서는.. 반박 하거나 같이 화를 내면 손이 올라오던 아빠의 폭력에서 기인된 버릇임을 얼핏 얘기해주었다. 어느 정도 공감 가는 이야기였다. 엄마는 항상 아빠와의 싸움에서 화를 크게 내지 못했고 입에서 중얼거리거나 위에서 언급한 행동들(ex설거지를 깨질 듯이 하는 행위)로 표출했다. 나 역시도 어렸을 적 오빠와 싸우면 오빠의 폭력이 무서워 엄마와 비슷한 행동을 하고는 해서 더 공감이 갔다. 이러한 소극적인 행동들로 밖에 분노를 표출하지 못하는 게 참으로 서글픈 일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더불어 엄마의 우울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는 나의 진로가 걱정되어 엄마를 챙길 여력이 없었다. 엄마와의 카톡에서 몸도 아프고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도 않은 상황에 여러 가지로 복잡한 게 느껴졌다. 이번 엄마와의 다툼으로 엄마를 많이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벌써 60이 넘은 우리 엄마를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살아가야겠다. 서글픈 버릇에 덩달아 서글퍼지는 오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족'이라는 굴레의 비극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