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날 순 Jun 28. 2020

'가족'이라는 굴레의 비극

아빠를 외면하지 못한 이유

 나는 왜 아빠를 경찰서에 신고하지 못했을까?



 초등학교 1학년 때, 집에만 있기 심심했던 나는 곤히 자고 있던 엄마를 깨워 색종이를 사러가도 되느냐고 물었다. 피곤에 쩔어있던 엄마는 나에게 짜증 섞인 말투로 응대했다. 그 이후 아빠가 왜 일어났고, 왜 싸움이 시작됐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특이하게도 사건의 발단과 아빠가 엄마를 폭행한 장면만 생각난다. 아마도 원인이 나였던 것 같다. 죄책감에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맞으면서 나에게 경찰에 신고하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수화기만 붙잡고 엉엉 울었다.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왜 아빠를 경찰서에 신고하지 못했을까."



 나는 '아빠'의 폭력적이고 무책임하고 불평, 불만이 많은 모습을 정말 싫어했다. (누가 저 모습을 좋아하겠느냐만은) 아빠는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아저씨다. 알코올 중독자도 아니고 도박꾼도 아니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시비를 거는 행패꾼도 아니다. 가끔씩 엄마와 말다툼이 심해지면 폭력을 휘둘렀고, 밖에 나가서 일하는 날보다 집에 있는 날이 더 많았으며, 맛없으면 맛없다고 말하며 음식 사온 보람이 없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반면에 아빠는 한 개인으로서 어르신들에게 예의 바르고, 동물과 아이들을 좋아하며, 내 친구들이 오면 반갑게 맞아주었다. 다양한 시도를 하며 일어서려고 노력했지만 연속된 좌절을 겪은 불쌍한 남자이기도 했다. 가장으로서의 아빠는 분노를 일으키지만, 한 남자로서의 아빠는 연민의 대상이었다. 보고 있으면 화가 나고 짠하기도 한 이 복합적인 감정을 '나의 아빠'인지라 마냥 외면할 수가 없었다. 아빠의 전화가 달갑지 않고, 받아봤자 짜증 섞인 목소리로 응대하지만 내가 오늘도 전화를 받는 이유이다.


 내가 딸이고, 오빠는 아들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내가 무르고 오빠가 단단해서 그런 걸까. 오빠는 아예 아빠를 무시할 때가 있다. 밥 먹었냐는 물음에도, 뭐 하고 있느냐는 물음에도 묵묵부답. 가끔씩 오빠가 아빠를 쳐다볼 때, 경멸의 눈빛은 내가 봐도 민망하다. 아빠는 그 눈빛을 모르는 척 하지만 상처 받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그런 오빠를 뭐라고 할 수 없으며, 그런 아빠를 감싸줄 수가 없다.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라고 강하게 마음먹으며 모르는 척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러나 이렇게 단호한 태도를 취하는 오빠조차도 결정적일 때 아빠를 도와주는 모습을 봤다. 나에게 전화로 "도와줘야 되는 게 맞느냐", "한심하다"며 화를 내면서도 결국은 행하는 오빠의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이런 사람이 아빠라는 사실이 너무 싫지만 또 외면하지 못하는 게 자식이라는 걸, 또 그게 한탄스럽다는 걸 오빠도 느끼고 있었다.


 결국 아빠를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던 이유는 '아빠'라는 이름에서였다. 그리고 그게 지금도 엄마한테 미안했다. 어떻게 해서든 정당화될 수 없는 폭력을 방관한 것 같았다. 학창 시절 내내 부모님의 싸움은 말렸어도, 이혼은 간절히 바랬어도, 아빠의 폭행은 단 한 번도 신고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게 참 미안하고 슬프다. 아빠가 잘못되길 바라지는 않는 이기적인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겠지. 


 가족이 뭐길래 이렇게 우리를 옥죄는지 모르겠다. 가족이 뭐길래 꾹꾹 참으며 사는 걸까. 외면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살갑게 대하지도 못한 채 우리는 그대로 곪아있다. 가끔씩 티브이에서 심각한 가족 사연이 나오면 연을 끊으라는 얘기도 많이 나온다. 남에게는 한 없이 냉정하게 말할 수 있지만 사실 가족끼리 연을 끊는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가족과 연을 끊은 사람들을 보면 용기가 경이롭다. 대단한 거다. 


 이제는 내가 엄마와 살고 오빠도 독립을 하며 아빠 혼자 지낸다. 혼자서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채 외롭게 있을 모습이 상상이 간다. 선뜻 전화하기가 망설여지지만 이내 전화를 한다. 이왕 한 거 다정하게 하면 되는데 몇 마디 섞다가 짜증을 내고 끊어버린다. 가족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이상 '딸'로서 할 도리만 하자. 그냥저냥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매거진의 이전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정말 끝이 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