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내내 적과의 동침. 그리고 이제는 안 볼 사람들.
"할머니.... 할머니가 떠나셨어...."
몽롱한 정신에 잠이 확 깼다. 수화기 넘어 엄마의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알았어! 얼른 갈게."
산발이 된 머리고 뭐고, 옷을 대충 껴입고서는 병원으로 뛰어갔다. 다행히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병원인지라 금방 도착했다. 병실 앞에 들어서자, 엄마가 할머니의 벌어지는 입을 다물어 준 채 아이처럼 엉엉 울고 있었다.
꽤나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병세가 악화되신 건, 불과 돌아가시기 하루 전이었다. "할머니가 이상해."라고 울면서 엄마한테 전화가 왔었다. 그때도 급작스럽게 병실로 갔었는데, 산소호흡기와 맥박, 혈압을 제고 있는 기계들이 주렁주렁 할머니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날 밤 할머니는 1인실로 옮기셨고, 다음날 돌아가셨다.
설사와 구토를 이틀 내내 반복하시다가, 그 이후에 밥을 잘 잡수셔서 엄마가 참 좋아했는데 주위 어른들 이야기를 돌이켜보니, 돌아가시기 전 속을 비우고 마지막 만찬을 즐기신 게 아닌가 싶더라.
퉁퉁 눈이 부어 울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울음이 울컥 나왔지만, 솔직히 말해서 할머니가 돌아가신 사실이 그렇게 와 닿지는 않았다. 엄마를 외면한 할머니의 모습을 본 '손녀'로서 '외할머니'와의 정과 친분은 없어진 지 오래이며, 그저 '손녀'로서의 도리만 할 뿐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음에도 이런 미움을 지우지 못하는 나 자신이 어리다고 느껴지지만 어쩔 수 없는 나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갓난아이와 다를 바 없었다. 건장하셨던 할머니는 불과 몇 달만에 살이 급격히 빠지며 왜소해지셨다. 점차 말 수도 줄어들고 거동을 못하시더니 어느새 누워서 눈만 껌뻑거리시게 되었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수발을 든 엄마이기에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할 듯싶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날, 삼촌부부에게연락을 했었지만 찾아오지 않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연락을 받고 왔다. 임종은 오직 엄마만 지켰다. '관상은 사이언스', 더욱더 표독스러워진 모습으로 나타난 삼촌이 엄마의 어깨를 툭치고 가더니 할머니를 한참 바라봤다. 나는 생각했다.
이제 시작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에 대한 애도도 잠시, 삼촌이 오면서 본격적인 '계산'문제가 내 머리를 휘감았다. 장례식 비용부터 납골당 비용이 온전히 우리 몫이기 때문에 삼촌이 어떻게 나올지는 뻔한 결과였다. 다행히도 엄마는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괜찮은 장례식장을 알아냈고, 장례식에 관한 모든 선택권이 엄마에게 있기에 삼촌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결과적으로 잘 된 셈이었다. 나서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조용히 자리 지키는 것만 하고 있으려니 얼마나 답답하려나. 허수아비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삼촌은 생각보다 더 몰상식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회사에 갔다가 다시 장례식장으로 찾아왔고, 며느리인 숙모 역시도 그때서야 삼촌과 함께 나타났다. 게다가 상주인 삼촌은 엄마의 손님에게 맞절을 하지 않았다. 엄마 손님은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라했고, 이를 보는 나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까지 저러고 싶나라는 생각이 들려는 찰나, 결국 이모와 마찰이 생겨 큰소리가 났다. 다행히, 말싸움으로만 끝이 났고 이모와 이모부는 그렇게 장례식장을 나가시고 말았다.
3일 내내 적과의 동침은 정말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삼촌은 친한 사람들부터 헬스장 사람들까지 부른 듯했다. 이따금씩 삼촌 무리가 있는 흡연실에서 나오는 욕은 모두 우리 엄마에 대한 욕이었다. 삼촌은 틈만 나면 상스러운 말을 입에 담으며 엄마 험담에 여념이 없었다. 어느새 우리 엄마는 할머니를 판 딸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알 게 뭐람.
진실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걸
3일 내내, 신경이 곤두섰던 건 마지막 날 조의금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큰소리가 날까 노심초사했는데 조용히 넘어갔다. 각자 손님 이름에 따라 정확하게 배분했고, 엄마 옆에서 나는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혹시 모를 상황에 힘이 되어주기 위해서. 다행히 납골당 안치까지 무사히 끝이 났다.
엄마는 할머니의 사진을 챙긴 채 따로 49제를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할머니께서는 뿌려지시길 원했다. 하지만 삼촌은 완강했다. 무조건 납골당을 해야했다. 엄마의 돈을 최대한 뜯어내고 싶었고, 남들에게 드러내고 싶어했다. 납골당은 그저 보여주기 식을 좋아하는 삼촌이 허세, 쇼맨십이기에 엄마는 따로 제사를 지낼 것이라고 했다. 여태껏 할머니 돈으로 떵떵거리던 삼촌은 마지막까지 효자인 척하며 끝까지 할머니를 이용하는 것 같았다.
정말로 끝이 났다. 지긋지긋한 악연은 할머니의 장례식으로 끝이 났다. 한 핏줄이라 더 질겼던 악연, 그 끝을 내기 위해선 부모의 죽음이 필연적이라니 정말 허망하다. 할머니의 염을 지켜보면서, 화장을 지켜보면서, 슬픔보다 허망함이 나를 감쌌다.
'할머니, 5남매 중, 장례식 마지막 날 자리를 지키는 건 딸 1명과 아들 1명이네요. 할머니가 오냐오냐 잘못 키운 아들 한 명과 마지막까지 병시중 다 든 막내딸만요. 큰딸은 막내아들 무서워 도망갔고, 둘째는 인연 끊은 지 오래고, 셋째는 자기 인생 챙기기도 벅찬가 봐요. 할머니, 이제는 정말로 모든 거 내려놓으시고 편히 가세요.'
할머니의 슬픔을 애도하기보다 삼촌과의 신경전에 날을 세울 수밖에 없었던 장례식. 5남매 중 2명만 끝까지 남은 장례식. 다행이라면 추운 겨울이 되기 전 푸른 가을 하늘에 따뜻한 햇살 받으시며 가실 수 있었던 것.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엄마의 할머니 간병.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 치르고 왔다고 하니 아는 어른이 물었다. "호상이셔?"
어렸을 땐, 참 무섭고 냉정한 단어라 생각했는데. 입에 담자니 참으로 못할 노릇 이것만, 뭐라 대신할 말도 없다. 엄마 지인은 '어머님이 효도하고 가셨네'라고까지 표현했다. 할머니의 죽음이 간병의 끝과 더불어 악연의 끝을 의미하기도 했으니.
하지만, 며칠 후 술 한 잔 하며 나온 푸념 섞인 엄마의 말에 나는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정 많은 막내딸. 밤에 술 한 잔 하다가 울컥 울더니 말한다.
"왜 이렇게 외롭지."
외롭다. 외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