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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 순 Nov 26. 2019

이혼가정 자녀의 좋은 점

꼴 보기 싫은 거 안 봐도 돼요(이혼 장려 글은 아닙니다)

아주 지극히 내 상황의 초점에 맞힌 개인적인 이야기다. 이혼가정 자녀의 좋은 점은 무엇보다,

 

부모님의 싸움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부모님은 언제 싸울지 몰랐다. 시한폭탄과도 같은 두 사람의 신경전은 우리에게 되돌아왔다. 내 졸업식이건, 오빠의 생일이건 상관없이 두 사람의 신경전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아빠의 욱하는 성질은 폭력을 불렀고, 한이 많이 맺힌 엄마는 울부짖었다. 어렸을 때를 더듬어 기억해보자면 우리 집의 분위기는 늘 험악했다.


 오빠와 나는 어렸을 적, 두 사람의 싸움과 신경전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죽여 울었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고, 나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서로를 향해 언성을 높이는 부모님의 싸움은 우리에게 불안감을 심어주었다. 둘이 싸우려는 조짐만 보여도 울음이 차올랐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든 순간이었다.


 오빠와 내가 10대 중후반이 돼어서야, 조금씩 말리기 시작했지만 감당하기란 버거웠다. 울먹이던 우리는 이제 짜증을 냈고, 지칠 대로 지친 4 가족은 서로에게 경멸을 쏟아냈다. 각자의 잘못도 서로에게 미루었고, 서로의 잘못을 힐난했다. 항상 우리 집안의 근본적인 문제는 '돈'이었다. 그나마 조용하던 집은 '돈'이라는 말이 거론되는 순간,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 되었다.


 부모님이 싸우지 않는 기간 동안에 우울함은 가셨지만, 근본적인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언제 또 싸울까", "언제 또 큰 소리가 날까."


 부모님은 남보다도 못한 사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둘의 꼴에 진절머리 난 오빠와 나는 '차라리 이혼하지.'라며 소곤거리고는 했다. 막상 이혼했을 때의 슬픔과 충격은 생각보다 컸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은 이혼 후의 삶이 이혼 전보다 훨씬 질 좋은 삶이라는 것에 우리 가족 모두가 인정한다. 특히나, 나는 엄청난 해방감을 느낀다. 적어도, 우리가 집을 비웠을 때 부모님의 싸움이 일어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둘의 싸움에 걱정하고 반응을 살피며 눈치 볼 일은 없어졌다. 지금도 아빠가 집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 한심하다가도 이 모습을 지켜볼 엄마가 없다는 점에서 참 감사하다.


 그 밖에도, 한 부모 가정을 위한 정부차원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고, 내가 갈 수 있는 집이 두 개가 되었다. 짐이 분리되는 불편함은 있지만, 양쪽에게 거짓말을 치며 외박도 가능했다. 이혼한 후, 혼자 사는 엄마의 치안이 걱정되고, 밥 끼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아빠의 건강이 염려되지만 그게 다다. 두 사람의 이혼은 곧 나에게 커다란 선물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이 이따금씩 나에게 서러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러한 서러움은 새로운 다짐으로 변한다. 후에 자식을 낳을 때, 책임지지 못할 형편이라면 아이를 낳지 말아야지. 낳더라도 아이들 앞에서 싸우지 말아야지. 아이가 없기에 쉽게 말하는 거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들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 걸 알기에 앞으로 변하지 않을 내 다짐이다. 지금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 아이들이 내가 편해질 때마다 부모님 얘기를 살짝궁 하는 경우도 있는데, '부모님이 싸울 때마다 무서워요.'라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부모님이 싸울 때마다 짜증 나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다소 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이 자주 싸우시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고, 아이들이 내가 겪었을 상처를 겪었을 것이라 생각해서 마음이 무겁다. 앞으로 부모님이 이혼하시지 않는 이상은 꾸준히 그 둘의 다툼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반대로, 가족이 화목한 경우는 집에 방문하는 순간부터 다르다. 집이 넓고, 좁고, 깨끗하고, 더럽 고의 차이가 아니다. 아이의 표정, 분위기, 마음가짐부터가 다르다. 아이가 시험을 망쳐도 웃을 수 있는 이유는 부모님의 사랑으로부터 출발한다. 성적표로 엄마를 웃게 해 주려는 부담감 자체가 없다.


 지금도 나는 사촌언니한테 아이들 앞에서 싸우지 말라고 얘기를 하고는 한다. 첫째는 말리고, 둘째는 짜증 낸다길래 그러지 말라고 했다. 부모님의 화목이야말로 자녀들을 위한 최고의 교육임을 나는 강조하고 싶다. 화목한 가정에서 나오는 건강한 마인드, 부모님에 대한 신뢰는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4 가족이 모인 가족사진조차 없이 끝난 우리 가족. 화목한 가정과 비교할 수 없지만, 이혼하지 못한 채 불행함을 안고사는 집일 때보다는 더할 나위 없다. 이혼 직후는 당연히 힘들 수 있지만, 엄마 아빠의 불화를 충분히 겪은 자녀라면 시간이 흐른 뒤, 이혼의 해방감을 같이 맛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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