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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 순 Apr 09. 2021

현금서비스 권하는 아빠

술 권하는 사회도 아닌, 현금서비스를 권하는 아빠라니

"돈 없으면 현금서비스받으면 되잖아"


기가 막힌 저 이야기를 듣게 된 경위를 설명하기 전, 나의 현 상황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최저시급에 가까운 월급을 받으며  돈이라도 벌겠다고 아등바등 버티는 일개 사회 초년생이다. 회사는 나쁘지 않지만 비전이 보이지 않고 자칫하다가  경력이   같아 조바심이 나는 요즘이었다. 영어학원도 다녀보고 회사와 관련된 금융 자격증을  보려고 했지만 목표가 없는 어중이떠중이라 금세 의욕은 사그라들었다. 끝맺음 없는 시도는 오히려 나의 한심 가중시켰고 이제는 무언가  의욕조차 내지 못했다.


사실 이렇게 다급하게 된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었다. 엄마와 아빠에게 소정의 생활비를 주고, 보험비, 통신비, 교통비, 식비 등 다 계산해보자 오히려 모아놓은 돈을 까먹는 마이너스 인생이 되고 말았다. 내가 한 달 중 정확히 쓸 수 있는 돈은 5만 원 남짓이었다. 돈 정리를 하면서 현타가 온 나는 이직을 위한 투자를 해야 할지, 여유분의 시간에 투잡이라도 구해야 할지 고민의 끝을 달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직을 위한 투자로 학원과 자격증을 시도하게 되었고 결국엔 돈과 시간만 더 낭비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설상가상 목돈 나갈 일이 생기게 되었다. 나를 위한 투자이고, 20대 때는 이래도 된다 라고 한껏 자위했다. 나의 돈 씀씀이에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매일 명상과도 같은 자기 암시의 반복이었다. 그러던 중, 아빠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뭐해?"

"나 그냥 있지."

"너 돈 좀 있냐"


짜증이 몰려왔다. 아빠가 평소 나에게 전화를 하는 이유는 모두 당신의 필요에 의해서였다. 보통은 "배고파서"였다. 나와 같이 밥을 먹자거나, 음식을 배달시켜달라는 전화가 대부분이었다. 식비 역시 내가 계산하는 일이 많았다. 당연하게도, 아빠의 전화가 달갑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받아도 짜증이 났고, 의무적인 질문에 대답하기에도 벅찼다. 오죽하면 친구들과 내 전 남자 친구 모두 아빠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알정도였다.


변변치 않은 삶에 친구도 많지 않은 아빠에게 남은 거라곤 측은지심이라 나대로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나의 노력은 일도 모르는지, 아빠는 실망만시켰다


나는 아빠의 돈 이야기에 딱 잘라 대답했다


"돈 없지. 얼마 전에 목돈 나갈 일 있었어."

"XXX만원 정도 없을까?"

"그런 큰돈이 어딨어 내가"

"돈 없으면 현금서비스받으면 되잖아"

(지금 글을 쓰면서도 참 씁쓸하다.)

순간 벙진 나는, 아빠에게 제대로 반박도 못하고 엉뚱한 말만 튀어나왔다.


"아니, 그거 신용 떨어지는 거 아니야?"

"아니야, 돈 갚으면 안 그래, 아빠가 바로 돈 줄 거야!"


지금도 제대로 화내지 못한 게 한스럽다. 그게 딸한테 할 소리냐고 조목조목 따졌어야 했는데.. 만만한 게 나인가 싶어, 일부러 오빠 얘기를 꺼냈다. 오빠한테는 얘기해봤냐는 소리에 아빠는 오빠랑 안 친하다는 이상한 소리만 해댔다. 그렇다. 결국 만만한 게 나였다. 내 목소리가 금세 침울해지자, 그제야 아빠도 아차 싶었던지 미안하다며 말을 돌렸다. 얼마나 급한 돈이어서 나한테 이런 막말을 했는지 몰라도, 아빠의 "현금서비스" 발언은 꽤 타격이 오래갔다. 전화를 끝내면서 화를 내뿜고 오자 엄마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통화내용을 듣더니 엄마가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러면서


그런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아

라고 답했다. 도대체 우리 아빠란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


아빠의 행동보다 화가 나는 건, 이런 사람이 우리 아빠라는 점이다. 어디 가서 쪽팔려서 얘기도 못하니 브런치에 쓰는 거다. 내 삶 살기도 벅찬데 아빠라는 짐이 목을 죄여 오는 느낌이다. 주변에 나와 같이 이혼가정인 친구들도 나 같은 경우는 많지 않았다. 가끔씩 안부전화 오는 정도 일 뿐, 거의 남남처럼 살아갔다. 차라리 그게 맞는 것 같다.


"딸이 보고 싶다"라는 명목 하에 자신의 배고픔과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전화하는 아빠가 이제는 정말 버겁다. 이제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싶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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